통일왕국 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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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 ● 죄악 된 세상의 현실들과 깊게 관련 맺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오염시킨다. -> 우리는 죄와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 ●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 나쁜 결과들을 낳게 한다. ● 우리는 우상과 부도덕성을 판단해야한다. ● 하나님은 진정한 구원의 요청에 응답하신다. ●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삶을 돌리고 회개할 때 죄의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다. ● 하나님의 긍휼과 인내는 매우 크시다. 1. 사무엘의 출생과 사역 - 마지막 사사이자, 선지자 시대의 개막 사무엘상 (삼상1-3장)은 사사시대의 종말에 대한 기록으로써, 사사기에 나타난 일반 백성들의 타락을 넘어서 하나님의 전에서 사역을 하는 제사장들까지도 타락해 버린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모든 면이 철저하게 타락해 벼린 세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할 권위 있는 선지자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 때 부름 받은 자가 바로 사무엘 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선지자들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선지자 시대의 시작 선지자 시대는 가장 타락한 시대에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필요한 때는 어두움이 짙을 때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곳은 교회가 아니고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사무엘' 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 구하였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무엘 의 출생의 배경을 아는 사람에게는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는 이름입니다. 무자 하였던 여인 한나가 기도로 구하였을 때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한나는 서원한 아들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삼상 1:10-11. 27-28).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되는데. 그것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이스라엘을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 위대한 인물 사무엘을 통하여 구원 사역을 감당케 하셨습니다. 제사장의 타락 시대의 마지막 보루는 성직자이다. 그런데 성직자마저 타락했다는 것은 그 시대가 희망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사무엘 당시의 제사장은 엘리로, 그 에게는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그들은 엘리와 같은 제사장 반열에 있었으나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고,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다 (삼상 2:12-22). 그러나 엘리는 이 아들들의 잘못을 징계치 않았다(삼상 2:23-25). 구약시대에는 제사장들이 특별하게 구별되어 있었지만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모두 제사장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베드로전서 2:9에서 말씀하신 바대로 이 시대의 마지막 보루는 택하심을 받은 우리들 자신이다. 그러나 고집스러운 백성들은 거듭된 경고에도 듣기를 거절하고 왕을 요구 하였습니다. 이제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 사이에 문제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이상은 하나님께 복종하고 화목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사무엘과 같은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히브리 민족의 왕이 되실 것을 바랬었습니다. 그들의 안전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싫어하고 열방 과 같이 되고자 했기(삼상 8:7) 때문입니다. 또한 부수적인 이유가 있다면 사무엘이 늙게 되자 그의 아들들의 부정과 불의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에 사무엘은 왕은 세금을 인상할 것이며, 백성들 징용해 가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삼상 8.10-18). 또한 하나님께 순종하는 왕은 백성들을 이로운 길로 인도하겠지만 불순종하는 왕은 비극적인 결과로 그들을 인도할 수 있음도 말하였습니다. 3. 왕국의 확립과 초대 왕 사울(삼상 8-31 ) 이제 왕국이 확립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로 하여금 베냐민 지파의 사울을 왕으로 뽑으셨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왕이 될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 외적인 면에서(삼상 92, 21): 준수한 소년이었으며 겸손한 사람이었다. ◆ 종교적인 면에서(삼상 19:23-24):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라마나봇에서 예언할 정도로 신실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불순종으로 버림을 받고 몰락하게 됨 사울을 몰락하게 만든 4가지 문제 1) 불신과 불순종(삼상 13장): 2) 자의적 신앙(삼상 15장):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았다. 이유가 하나님께 제사하려 하였다 할지라도 이것은 자의적 신앙이다. 그래서15:22에서"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말을 듣게 되었다. 3) 질투로 인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반항(삼상 18:6-16): 골리앗을 죽이고 기름부음 받은 다윗을 질투하여 죽이려 하였다. 4) 형식적 신앙(삼상 28:3-7): 블레셋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아감 4. 다윗(삼상 15장-삼하 24장) -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부분과 정치적인 부분에서 가장 균형잡힌 왕 다윗은 이새의 여덟 번째 막내아들이요, 양치는 목동이었으며, 보잘 것 없는 외모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 중 하나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찾아갔을 때 다윗은 아예 마음에 두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 유명한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삼상 16:7)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도 오랜 기간을 왕으로 세움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삼상 17-18장)에서 골리앗을 죽이고 난 후에 사울의 질투로 인해 목숨을 건 망명생활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이 기간을 우리는 다윗의 훈련기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울의 박해 아래 피난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다윗은 불안과 두려움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면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 때 그는 아름다운 시편을 많이 기록하였습니다. 디윗의 장점 1) 다윗의 성품(삼하 1장) - 사울의 가정이 몰락되어 가는 것을 슬퍼하는 다윗의 위에서 그의 아름다운 성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적에 대한 연민의 정과 사랑으로부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2) 하나님 중심(삼하 5-6장) - 다윗은 왕이 된 후 예루살렘을 정치, 종교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사울이 언약궤에 무관심했던 반면, 다윗은 통치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이 부분에 관심을 가졌고,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가져옴으로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3) 다윗과의 언약(삼하 7장) - 다윗은 자신의 궁전을 지은 후 하나님의 궤가 아직 막에 그대로 있는 것을 민망히 여겨 성전을 건축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린 까닭에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상 22:8; 28: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칭찬하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는데 그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이루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삼하 7:8-16). 다윗의 범죄(삼하 1 ) -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아 후궁으로 삼음 징벌을 받는 다윗의 태도 - 전적인 순종 ● 언약궤 앞에서(삼하 15:25-26) 하나님의 처분에 맡김 ● 시므이의 저주 앞에서(삼하 16:11) 저주를 받아들임 다윗의 고난과 하나님의 심판 1) 심판의 예언(삼하 12:10-14): 나단 선지자를 통한 심판의 예언 - 칼이 그 집에서 떠나지 않을 것 - 다른 사람이 그 처들을 범할 것 - 밧세바에게서 난 아들이 죽을 것 2) 다윗이 받은 심판(삼하 12:15-20:26) - 빗세바가 낳은 아들이 죽음(12:15-18) - 딸 다말이 아들 암논에 의해 강간을 당함(13:7-19) - 셋째 아들 압살롬이 장남 암논을 죽이고 왕위를 탐냄(13:28-29) - 압살롬이 왕위를 노리고 반란을 일으킴(15:12-14) - 압살롬이 다윗의 처첩들을 공중 앞에서 강간함(16:21-22) - 압살롬과 다윗의 전쟁으로 압살롬이 죽음(18:14-15) - 다윗의 뼈저린 슬픔 이 기간 동안 다윗은 아름다운 시편을 기록했습니다. 이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다윗의 성품이 드러납니다. 5. 솔로몬(왕상 1 -11 장) - 최고의 영화와 번영을 누렸으나 범죄와 우상 숭배로 왕국 분열의 원인을 제공 솔로몬은 부자로 태어났습니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차를 좋아하는 것처럼, 그는 애굽에서 병거를 구입하였고, 아라비아에서 말을 들여왔습니다. 그의 말을 위한 마구간은 3만개나 있었고, 수영장, 여름 휴양지, 동계궁 등을 짓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스바의 여왕까지도 내방을 하여 솔로몬 궁정의 화려함을 구경 하였습니다(왕상 10장). 아내들은 지위의 상징이었는데 그는 700명의 후비와 300명의 첩이 있었고(왕상 11:3), 그 중에 많은 후비들은 정치적으로 얻은 후비들 이었습니다. 결혼을 통하여 이방국가들과 친화를 유지하였으며, 그의 가족과 궁중 요인들을 먹이기 위하여 하루에 백 마리의 양과 삼십 마리의 소가 필요하였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통치기간 중 이스라엘은 경기가 좋았습니다. 솔로몬 왕국의 명성은 전 세계의 화제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왕국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징용에 지치게 되었고, 관료제도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으며, 수도에 있는 관리들의 교만에 불만을 갖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죽음과 함께 왕국은 쇠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왕국은 남과 북으로 분열되어 영적인 면에서나 정치적인 면에서 일체감을 잃게 되고. 후에는 강대국의 군화에 짓밟히고 맙니다. 1) 솔로몬 성전 건립 솔로몬 왕은 B.C. 957년 모리아 산에서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여 7년 만에 완공했다. 이 성전 건립에만 소요된 감독자가 3,300명, 동원된 인부가 10만 명이었다. 특히 두로 왕 히람 으로부터 일꾼과 건축자재를 받아 건축했는데, 길이가 60 규빗, 너비가 20규빗, 높이가 30규빗에 해당하는 건물이었다 (왕상 5장, 6장. 7 장) (대하 3장, 4장). 솔로몬 성전은 규모나 들인 노력, 아름다움 등에서 당시의 어느 건물보다 훌륭하게 지어졌다. 특히 거대하고 웅장한 기물들이 많았는데 이러한 기물은 두로의 히람 또는 후람아비라고도 불리는 뛰어난 예기릅 가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그는 야긴과 보아스라는 길이가 23규빗(12m)에 이르고 머리에는 백합모양과 수 백 개의 석류로 장식된 거대한 기둥과 직경이 10규빗(5.2m), 높이가 5규빗 (2.6m), 둘레가 30규빗(15m)이나 되는 거대한 '놋바다' 도 만들었다. 또한 지성소 앞에는 금으로 장식된 백향목 제단이 있었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 가 보면 금으로 장식된 두 개의 감람목으로 만튼 거대한 그룹이 있었는데 그들의 높이와 펼친 두 날개의 길이는 모두 10규빗에 이르러 날개과 양쪽 벽에 닿아 있었고 언약궤는 그 두 그룹 사이에 있었다. 2) 솔로몬 성전의 파괴 이렇게 아름다운 성전도 헌납 된지 34넌. 솔로몬의 사망 후 불과 5년째 되던 해부터 성전의 영광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애굽 왕 시삭은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성전의 보물을 무수히 몰수해 갔고(왕상 14:25-26) 다른 많은 사람들은 성전의 성물을 훔쳐가서 바알에게 바쳤다(대하 24:7). 시삭 왕의 약탈 후 수세기에 걸쳐서 신성모독 행위가 계속 되다가 216년 후에 유다 아하스 왕이 성전의 남은 보화를 앗수르 디글렛빌레셀 왕에게 뇌물로 바치고 다른 기물들도 자신 마음대로 처분했다(왕하 16:7-9, 17. 18) (대하 28:24-25). 마지막으로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성진에 남아있던 소수의 보물마저 모두 약 탈한 후 건물에 불을 지르고 만다(대하 36: 18-19) (왕하 24: 13, 25: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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