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구원 확신을 가져야 하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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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받으셨습니까?” 우리는 이 질문에 조금도 주저 없이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본다. 때로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운 생각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이 질문에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없어, 매우 난감해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이 질문에 주저하는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헛 믿은 사람이라고 심하게 몰아붙이는 사람들을 보기도 한다. 우리는 과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이제 성도들이 가져야 할 구원에 대한 확신 여부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1. 구원의 근거와 성격 구원은 죄와 죄의 결과들로부터 해방 받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항상 죄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취급한다. 따라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아무렇지 않는 일이나 생각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심각한 죄로 여겨질 때가 많다(시 51:4). 그러므로 죄와 죄의 결과들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때에만 가능해진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을 주시는 과정에서 아무런 조건도 요구하지 않으신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아무런 대가없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 이 선물은 믿음을 통해서 주어진다. 그러나 그 믿음마저도 하나님의 선물이요, 우리가 구원을 위해 제시해야 할 우리 편의 조건이 되지 않는다(엡 2:8).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구원의 효과는 사람이 살아 있을 때나, 이 세상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의 효과는 사람이 죽은 이후에도, 그리고 이 세상이 없어진 이후에도 계속된다. 그래서 구원은 영생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롬 5:21). 구원의 효과는 우리가 그것을 분명하게 의식하는가 또는 하지 못하는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역사는 사람의 그 무엇으로도 무효화시킬 수 없다. 따라서 한번 주어진 구원 은혜는 결코 취소되는 일이 없다(요일 5:18). 2. 확신의 두 유형 1) 객관적 확신 그래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자”고 말씀하셨다(히 10:22,23). 그리고 야고보 사도께서는 확신을 갖지 못한 성도를 향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주의를 주셨다(약 1:6,8). 객관적 확신은 참된 믿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객관적 의미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다 가지고 있다. 성도는 자신의 형편이나 주변의 상황과 관계없이 구원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구원은 과거에 세례나 특별한 영적 은사를 받았는가, 지금 감사와 은혜에 충만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장차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 떠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하는 것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서 나타나는 이와 같은 여러 현상들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열매일 뿐이다. 2) 주관적 확신 사람은 객관적 사실과는 상관없이 그 사람이 가지는 성격이나 받은 교육의 결과에 따라서 지나치게 잘못된 확신을 가질 수도 있고, 남달리 전혀 확신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기독교 밖에서도 잘못된 진리에 대한 대단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 안에서도 참으로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도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주관적 확신의 여부만 가지고 그 사람의 구원을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8장에서 비유로 말씀하셨던 세리는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세리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고 말씀하셨다(눅 18:13,14). 이 비유에 등장한 세리는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 즉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세리가 구원에 대한 주관적 확신까지 가졌을 것이라고 단정할만한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한 바리새인의 집에서 옥합을 깨뜨리고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던 여자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눅 7:50).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 여자 자신을 포함하여 누구든지 그 여자의 구원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에서 그 여자가 주관적인 확신까지 가지고 돌아갔다고 단정할 증거는 찾을 수가 없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는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듣고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제자가 되었다는 말씀을 본다(행 2:38-41). 그 날에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이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 삼천 명 모두가 자신의 구원에 대한 주관적 확신을 동일한 수준으로 가졌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3. 구원과 확신 하지만, 주관적 확신은 구원의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다. 주관적 확신은 구원받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열매이다. 열매는 맺히고 익어가는 정도에서 한 나무 가지 중에서도 서로 개인차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주관적인 확신이 부족하다고 하여 구원받지 못했다고 쉽게 단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믿음은 사람마다, 그리고 시기마다 그 정도가 다양하여서 약하기도 하고 강하기도 하다(히 5:13,14, 롬 4:1920). 믿음은 종종 여러 가지 공격을 받아 약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참 믿음은 마침내 승리를 얻는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참 믿음은 여러 면에서 성장을 하여(히 6:11, 10:22), 우리 믿음의 시작과 마침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충만한 확신에 이르고야 말기 때문이다(히 12:2). 주관적 확신이 구원의 본질적 요소가 아니라는 말을, 주관적인 확신은 없어도 좋다는 의미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지극히 작은 겨자씨라도 새가 깃들일 수 있는 큰 나무로 자라는 것처럼, 믿음도 성장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 깊이와 넓이를 더하여 부족하던 확신을 몰아내고, 어떠한 형편 속에서도 마음속에 자신의 구원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수준에까지 자라야 한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구원은 사람의 조건에 따라 주어지거나, 취소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상태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언약을 근거로 구원에 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각 사람의 주관적인 느낌에는 개인차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주관적 확신만으로 구원 여부를 단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 만일 주관적인 확신이 부족한 사람이 있다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께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구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고 익혀서, 주관적 확신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수준에 이르도록 자라기를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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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2월 03일 교회와신앙의 다른기사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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