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칼럼·논문·서적/기독칼럼

[이성자 칼럼]고난이 유익이라

은바리라이프 2020. 4. 3. 08:03

[이성자 칼럼]고난이 유익이라

기독일보

입력 May 04, 2012 05:03 PM EDT

Print  글자 크기 + -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인터내셔널갈보리교회 이성자 목사

이성자 목사.

이성자 목사.

지난 몇 주간 풀루, 감기 몸살로 좀 고생을 했습니다. 면역이 약해졌는지 회복이 더디었습니다. 지난 3 주간 제가 집에서 사용했던 클리넥스가 7-8 박스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정말 많은 유익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집에서 쉬다보니 하나님과의 충분한 개인적인 교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마치 저의 24시간 전체가 예배드리는 시간처럼 여겨졌고, 우리 집이 예배당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성경 읽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시간들이 지속되다 보니 도처에 주님께서 임재하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바로 제 옆에 주께서 앉아계시는 것 같았고, 기도를 하면 바로 제 앞에서 주님이 서계시는 것 같아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고, 찬양을 하면 천사들이 몰려와 함께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는 것만 같은 기쁨을 누렸습니다. 아름다운 봄날의 자연 모든 것들이 저를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만 같았고, 그리하여 몸은 힘들었지만 제 영은 주님 안에서 희락과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주님과의 친밀함이 회복되다 보니, 보다 더 중요한 것들과 덜 중요한 것들이 선명하게 구별되었습니다. 그동안 늘 사역에 침몰하듯, 그렇게 바삐 지내다보니, 주님보다 때로는 사역에 열중해 있었음을 깨닫고, 반성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지난 몇 주간. 설교외 대부분 사역들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께만 집중하다보니, 그저 영혼 구원에 관한 소원만이 제 안에서 간절해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 외에 다른 것들은 생각하는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질 정도였고, 그저 구원받지 못한 친지들이나 민족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 날은 제 평생 잊지 못한 꿈울 꾸게 되었습니다. 꿈에 참으로 사랑스럽게 생긴 천난난만한 어린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의 엉덩이 발끝 어깨 등에서 작지만 파란 불이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안 뜨겁냐고 아이에게 물으니 안 뜨겁다고 하며 그저 놀이에 열중할 뿐이었습니다. 나는 다급하여, 주변사람들에게 빨리 물을 가져다 이 아이에게 부어달라고. 소리치고 절규하다 깨어났습니다. 꿈을 깨어보니 내 이마에는 아직도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주님께 이 꿈에 대하여 여쭈어보았을 때, 성령님의 조용한 음성이 들리는 듯 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습이다. 이 세상에는 이미 곳곳에서 심판의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제 이 세상은 심판의 불로 멸망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뜨거운지도 못 느끼고, 위험한지도 모르고 그저 곧 타버릴 장난감에 열중하고 있단다. 이를 아는 나의 종들이 성령의 생수를 그들에게 부어 한 명이라도 더 불붙는 세상가운데 죽어가는 이들을 구해내어야 한다. 작은 차이들을 극복하고 다급하게 부르짖어 한 명이라도 더 구원해내는 영혼 구원에 힘을 모아야 한다.” 그 꿈에서 그 아이는 참으로 사랑스러운 아이였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 세상은 그렇게 사랑스러운 당신의 자녀들로 가득한 곳이지요. 오직 누구든지 이 심판의 불에서 멸망치 않으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데, 세상은 예수님을 외면합니다. 다가올 심판의 확실성을 아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면, 이 불 붙어 가는 세상에서 한 명이라도 더 구원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하여 저의 마음과 영은 그동안 더 단순해지고 새로워진 느낌입니디. 우리 교회가 지난 사순절 기간 그리도 간절히 기도했던대로 ‘사랑의 불’이 얼마간 제 심령에서 지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주 안에서는 어떤 고난도 결국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얼마 전에, Prison Fellowship의 척 콜슨이 서거하셨는데, 21세기의 사도 바울이라 불리울 정도로 위대한 삶을 살아가신 분이지요. 그러나 사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한 그 수치와 절망의 수감생활이 없었다면, 그의 위대한 변신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는 견디기 어려운 모멸과 낭패의 시간들 속에서 산산히 부서진 자아를 통하여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이후 죄수들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그처럼 놀라운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주 안에서 그저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