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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각 책의 개론과 본문 해석의 관계성 성경 해석 1단계, 각 책의 개론 바르게 이해하기…안진섭 목사의 알기 쉬운 성경 해석학(3)

은바리라이프 2017. 2. 25. 17:28

1강에서는 성경 연구를 위한 도구들을 소개했고, 2강에서는 성경 연구의 전 과정을 한 본문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습니다. 2강에서 소개해 드린 성경 해석의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본문이 속한 책의 개론 공부하기(3강)
둘째, 본문 관련 역사적 배경 조사하기(4강)
셋째, 본문 문맥 살피기(5강)
넷째, 본문 구조 분석하기(6강)
다섯째, 본문 주요 단어 의미 파악하기(7강)
여섯째, 종합적으로 본문의 핵심 메시지 찾아내기(8강)

이제부터는 각론으로 들어가서 각 단계별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그중에 첫 번째 단계인 성경 각 책의 개론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본문을 해석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 각 책들에 대한 개괄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신/구약 개론이나 각 책의 주석에 있는 서론은 그 책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합니다. 서론에서는 일반적으로 저자, 독자, 연대, 장소, 기록 배경, 기록 목적, 신학적 주제 등을 다룹니다. 각 책에 대한 서론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본문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기록 목적과 신학적 주제 등입니다. 그 책을 기록한 목적과 그 책에 담긴 주요 주제들을 알면 해당 본문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기록 목적과 신학적 주제 등을 알지 못한 채 본문을 해석하면 해석자의 주관에 따라 본문을 해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1. 요한복음 2:1~12

1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12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개역개정)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여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을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요한복음 20:31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에 따르면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고, 둘째는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둘은 상호 관계가 깊습니다. 요한복음을 해석하는 자는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을 염두에 두고 각 본문을 해석해야 합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을 읽다 보면 다양한 설교 포인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리아와 하인들의 순종에 초점을 맞추어 '순종하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때'에 초점을 맞추어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메시지는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을 간과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도 당연히 그 기록 목적에 따라 해석해야 합니다. 이런 기록 목적과 연관을 지어 보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잔칫집은 참된 기쁨과 생명을 상실한 채 형식만 남은 유대교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잔치 집에 오셔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것은 예수님이야말로 이 땅에 참된 기쁨과 생명을 주실 진정한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오직 그를 믿는 자만이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삶은 기쁨이 사라진 잔칫집과 같습니다. 기쁨이 넘쳐야 할 혼인 잔칫집에 기쁨이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 집에 예수님이 가셨을 때, 기쁨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참되고 영원한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보면 결국 모든 말씀이 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할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요한복음은 전체가 다 예수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빼 놓고는 요한복음을 풀어 나갈 수 없습니다. 사실상 요한복음은 1장부터 21장까지 전부 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복음 전도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며, 그를 믿는 자는 생명을 얻는다는 사실, 요한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실을 전합니다. 그 사실만 전하면 지루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보다 더 감격적인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성경 연구자는 반드시 그 책의 기록 목적에 맞게 각 본문을 해석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른 해석입니다. 그렇게 해석하여 계속 예수님에 관한 메시지만 반복된다면 저는 평생이라도 반복하겠습니다.

2. 요한복음 19:1~16

1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2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3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4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5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6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7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8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9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0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12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14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개역개정) 

이 말씀을 읽어 보면 마치 빌라도가 주인공인 것처럼 보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무죄라고 생각하지만 유대인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합니다. 그 과정에서 빌라도는 끊임없이 갈등합니다. 판결을 앞두고 갈등하는 빌라도의 모습은 인간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듭니다. 설교자의 입장에서 이 단락에 나오는 빌라도는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인간적 고뇌를 중심으로 설교한다면 성도들에게 큰 공감을 얻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 본문으로 빌라도의 갈등, 혹은 빌라도의 고민 등의 주제로 설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일차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이 말씀을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에 따라 살펴보는 것입니다. 위에서 밝혔던 것처럼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며 그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단락에서도 그 목적에 부합하는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아무리 읽어 보아도 예수님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간접적으로 예수님을 소개하는 말씀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에는 빌라도와 군인들, 그리고 예수님을 고소하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그 내용들을 잘 살펴보면 예수님을 향한 조롱이 역설적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잘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부릅니다(3절).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했다고 진술합니다(4절).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고소합니다(7절). 유대인들은 또한 예수님이 자신을 왕이라고 했다는 사실을 고발합니다(12절). 빌라도도 또한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합니다(14~15절). 물론 이 모든 내용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정죄하기 위해 한 말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지금 이런 '아이러니 기법'을 사용하여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군인들과 빌라도, 그리고 유대인들의 조롱을 통하여 역설적으로 예수님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단락의 주된 기능입니다. 그런 해석에 따르면 이 말씀은 예수님이 참된 왕이심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외의 다른 인물들은 복음서에서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인물들의 모습을 잘 관찰해 보면 매우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복음서에 나오는 인물들을 독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예수님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인물들을 해석할 때는 언제나 예수님과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 말씀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향한 조롱의 말들을 통하여 예수님이 진정한 왕이심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3. 빌립보서 2:5~11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개역개정)

이 말씀은 '종의 노래' 혹은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말씀의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런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풍부한 신학적 주제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 승귀(높아지심), 영광 등 다양한 신학적 주제들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이 본문을 어떻게 해석하고 설교하는 것이 옳을까요?

이 본문 자체를 해석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빌립보서의 기록 정황과 목적입니다. 빌립보서의 정황과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제 강의안을 참고한 것이지만 다른 개론서를 참고해도 됩니다.

1) 빌립보서의 정황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이 로마에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에바브라디도 편에 헌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로마에 와서 바울을 돌보던 에바브라디도가(2:25) 병이 나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회복되어 바울이 그를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2) 빌립보서의 기록 목적 
➀ 에바브라디도의 천거(2:26~27) -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들이 자신을 돌보도록 보낸 에바브라디도가 임무를 완수했으나 사경을 헤매야 했음을 알리기 위해 편지를 써서 칭찬과 함께 그를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냈습니다.
➁ 바울에게 보낸 빌립보 교인들의 선물에 대한 감사
➂ 바울이 자신의 새로운 환경에 대한 소식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전달하는 것. 
➃ 빌립보 교회의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한 교정
➄ 바울의 방문을 준비하기 위해 보낸 디모데에 대한 칭찬

빌립보서 2:5~11을 연구하는 해석자는 본문을 연구하기 이전에 먼저 이런 기록 정황과 목적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록 목적에 비추어 이 본문을 관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본문은 위에 언급한 여러 목적 가운데 어떤 목적과 관련이 있을까요? 이 본문은 네 번째 목적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빌립보 교회에는 성도들 간에 다툼과 갈등이라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4:2에서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고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바울은 그런 다툼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이 서신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사실에 근거하여 본문을 바라보면 본문의 의도는 예수님을 우리 삶의 모범으로 제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는 이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도 예수님처럼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해석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낮추고 고통을 받으셨으니 우리도 낮은 자리로 가서 고행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고통을 당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핵심 메시지는 예수님의 태도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천국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툼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권면하기 위해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특권을 누리고 사는 것을 추구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전혀 다른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은 특권을 섬김의 수단으로 보셨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공부해서 남 주자"라고 설교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이웃을 섬기는 도구로 쓰자는 외침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도 형제와 자매를 섬기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바로 그런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예수님의 자기 비하'를 우리가 닮아야 할 모범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4. 히브리서 7:1~28

1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4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5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6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8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9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10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11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6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17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8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20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22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23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26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27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28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개역개정) 

이 단락에는 멜기세덱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 멜기세덱은 구약성경에서 창세기 14장과 시편 110편에 단 두 번 등장합니다. 멜기세덱은 매우 신비로운 인물입니다. 구약 역사에서도 창세기에서 단 한 번 등장하고 사라질 정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입니다. 본문 3절에서는 그런 멜기세덱을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고 표현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표현을 오해하여 멜기세덱을 신적인 인물로 여기기도 합니다. 3절에 있는 표현들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3절에 있는 표현들은 멜기세덱에 대해서는 아무 기록이 없다는 뜻입니다. 멜기세덱은 아무 기록도 없이 갑자기 등장하였다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홀연히 사라집니다. 멜기세덱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학자들은 오랫동안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그렇지만 연구할수록 더욱 오리무중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구체적인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설교하려는 사람들은 멜기세덱에 대해 연구하다가 지쳐 버립니다.

이제 본문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해석하기 전에 먼저 히브리서의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필자의 신학교 강의안에 따르면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필자는 편의상 본인의 강의안을 사용하지만 다른 개론서나 주석을 참고하셔도 됩니다. 다만 몇 권의 개론서를 비교해 보고 그중에서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참고하면 됩니다). 첫째는 배교의 위험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선포하는 것이고, 둘째는 영적으로 침체된 사람들에게 영적 성숙을 권고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런 히브리서의 핵심 메시지에 기초하여 본문의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7장을 처음부터 읽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본문이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은 먼저 멜기세덱을 간략히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1~3절). 그 다음에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난 사건의 의미를 소개합니다(4~10절). 그 의미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의 선조인 아브라함이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런 논리를 통해 아론의 반차를 따른 레위 계통의 제사장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의 차이를 대조합니다. 그 다음에 히브리서 기자는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을 소개합니다(11~28절).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결국 히브리서 7장은 유대교의 제사장들보다 우월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히브리서의 핵심 메시지 두 가지 가운데 첫 번째 메시지와 연관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설교자들은 굳이 멜기세덱을 연구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멜기세덱은 본문의 핵심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다만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멜기세덱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내용만 이해하고, 집중적으로 영원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들을 연구해야 합니다. 또한 이 본문을 설교할 때는 반드시 7장 전체를 본문으로 삼아야 합니다. 멜기세덱에 대해 소개하는 1~3절만을 본문으로 삼으면 자칫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멜기세덱을 설교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본문을 어느 정도 이해한 후에 그 단락의 핵심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 범위에서 단락을 정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7장은 분명히 멜기세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멜기세덱을 다루는 앞부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기 위한 개념 틀로 이해하고, 그 틀 위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5. 요한계시록 4:1~11

1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5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6.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7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9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10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11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개역개정)

요한계시록 4장은 일곱 교회를 향한 메시지(2~3장) 다음에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지상의 교회들을 대표합니다. 당시 지상의 교회들은 대부분 로마 황제에 의해 핍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핍박받는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에게 각각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에 요한계시록 4장이 등장합니다. 4장의 내용은 요한계시록의 기록자인 사도 요한이 환상 가운데 하늘에 있는 보좌를 보는 내용입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본 하늘 보좌의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하늘에 보좌가 있고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무지개가 보좌에 둘렀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았습니다. 또한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네 생물이 등장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고, 이십사 보좌에 앉은 장로들이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경배하고 찬송하는 것으로 이 본문은 끝납니다.

이 본문의 상세한 의미를 해석하기 전에 먼저 해석자들은 요한계시록의 기록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필자의 요한계시록 강해, <누가 이 세상의 주인인가>에 있는 요한계시록의 기록 배경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어떤 책을 해석하려면 그 책이 기록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가 어떤 상황에서 그 책을 기록했는지, 또한 독자들은 어떤 상황에서 그 책을 받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배경을 잘 이해하면 그 책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는 로마가 세계를 지배할 때였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제국의 백성들에게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황제숭배에 대해 그다지 거부감을 갖지 않았지만 기독교인들은 달랐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유일하신 주님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제국은 로마 황제를 주님으로 고백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기독교인들은 당연히 황제를 주님으로 섬길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성도들은 현실과 타협하여 황제숭배에 참여하였습니다. 또 다른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이 책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로드십(Lordship)에 대한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이 세상의 주인인가? 로마 황제가 이 세상의 주인인가, 아니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인가?" 요한계시록은 바로 그런 말씀으로 우리에게 도전하는 책입니다.(<누가 이 세상의 주인인가>(안진섭, 그리심어소시에이츠) 10쪽)

이제 이런 기록 배경에 근거하여 본문의 핵심 메시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환상 가운데 하늘 보좌를 보았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 계셨고,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었습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는 통치자를 상징합니다. 지금 하늘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 땅은 어떻습니까? 요한계시록 2~3장에 있는 일곱 교회들은 대부분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로마 황제에게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로마 황제가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로마 황제를 왕으로 섬기지 않으면 모진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도 요한은 환상 가운데 하늘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과 달리 하늘에서는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왕으로 존재하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을 상징하는 네 생물과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이십사 장로들이 오직 한 분,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만 경배하며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환상을 통해서 이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오직 하나님만이 이 세상의 왕이시며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요한계시록 4장에 있는 하늘의 성전 환상은 오직 하나님만이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진정한 왕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서 해석의 첫 단계에서 해석자가 할 일은 그 책 전체의 메시지와 어긋나지 않게 본문의 대략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필자가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해석자는 책 전체의 메시지에 근거하여 해당 본문의 메시지를 먼저 대략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본문에 대한 보다 상세하고 깊은 이해는 다음에 다룰 여러 단계들을 거쳐서 도달하면 됩니다. 성경 각 책의 개론과 본문 해석의 관계성에 대한 강의는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책의 개론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여러 개론서들이나 각 책의 주석에 나오는 서론을 보면 됩니다. 필자가 본인의 책이나 강의안을 인용한 것은 필자의 편의상 그렇게 한 것임을 밝혀 둡니다. 다른 개론서나 주석의 서론을 참고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