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방언은 성령의 역사인가?
김경환 목사 / 미국 Bible Baptist Church International
마지막 배교 시대의 표적으로 소위 “방언”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영으로 사로잡혀 알 수 없는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행위를 보면 땅바닥에 뒹굴고, 옷을 찢으며, 정신병자처럼 손을 들고 중얼거리고, 눈물 콧물 흘리며 울고 웃는 역겨운 모습이 분명히 마귀에게 사로잡힌 상태이지 성령의 역사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방언(?)으로 사탄은 모든 종교를 하나로 묶어, 결국 적그리스도를 숭배케 하는 것이다(계 13:8). 1970년 미국의 로마 카톨릭 은사주의자들은 교단 차원의 최초의 은사주의 집회를 열었고 현재는 카톨릭 은사주의 부흥운동 국제회의까지 조직되어 전 카톨릭의 은사주의화를 기도하고 있다. 그들이 여는 성령 세미나를 통하여 일주일 만에 모두 방언을 배워 가지고 나온다. 이 은사주의자들은 “성령 세례”를 받아야만 한다는 거짓 교리를 가르쳐 방언이 성령 세례를 받은 증거라고 말한다. 무지한 사람들은 이 말에 속아 자기가 방언을 못해서 성령을 받지 못한 줄 알고 방언을 하려고 안달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의 사람이 아니니라.”(롬 8:9)고 하셨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거듭났을 때 우리는 성경대로 성령 침례를 받은 것이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한 몸에 지체는 많아도 모두 한 몸인 것처럼...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느니라』(고전 12:12,13). 성경은 은사주의자들이 말하듯이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나 특별한 능력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성령 침례는 에베소서 4장의 “한 침례”이고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잠기는 것”(침례의 뜻), 즉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가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그의 몸과 그의 살과 그의 뼈의 지체임이라』(엡 5:30).
성경은 방언이 하나의 “표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구약에서 유대인들에게 경고한 것을 사도 때에 실행한 것이다. 『율법에 기록되기를 “주가 말하노라. 내가 이 백성에게 다른 방언들과 다른 입술들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말할 것이지만 그들은 그 모든 것으로도 내게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느니라』(고전 14:21). 『그러므로 방언들은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표적이지만...』(고전 14:22). 이 표적은 단순한 기적과는 다르다. 표적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증명하는 도구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표적으로 시작한 민족이었다(출 4장). 그래서 고전 1:22에서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라고 한 이유이다. 이 방언은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이전에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위한 표적으로 쓰였고, 성경이 완성된 후로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고 말씀하신다(롬 10:17). 그래서 바울은 『사랑은 결코 시들지 아니하나 예언들이라도 끝이 올 것이요, 방언들이라도 그치게 될 것이며...』(고전 13:8)라고 말하였고, 예수님도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찾으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줄 표적이 없도다.』(마 12:39)라고 표적을 보기 원하는 사람들을 책망하셨다.
변개된 성경으로는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초대 교회 때 표적의 은사로 준 방언(다른 나라의 언어)의 은사를(행 2:8)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자기 안에 역사하는 영을 분별하지 못하고 따르면 마귀의 영을 따라가는 것이다. 신실하게 믿었던 믿음의 선배들(루터, 웨슬리, 휫필드, 조나단, 캐리, 테일러 등) 중에 방언을 했거나 방언을 구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을 명심하고, 마지막 때 미혹의 영에 속아서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중얼거리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을 진리에 뿌리내리게 하고, 한 혼이라도 더 구령하는 데 귀한 시간을 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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