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바울

제2장 바울이 보는 예수 그리스도

은바리라이프 2009. 9. 8. 07:10

  제2장 바울이 보는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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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복음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분을 말함에 있어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예수라는 이름만을 따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혹은 “그리스도 예수”라는 말을 썼던 것은 “예수”라는 이름 안에 포함된 사람의 아들(人子)의 속성과 “그리스도”라는 말 안에 포함된 하나님(神性)의 속성을 따로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둘 중에 하나라도 빠지게 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참 구원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 두 가지 속성을 같이 생각하게 함으로서 그분이 참 구원자이시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을까요?

1.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누구를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만든 자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최초의 사람 아담도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눅3:38). 그리고 하나님의 의해서 창조되어진 천사들의 존재들도 역시 하나님의 아들로 일컬어졌습니다(욥1:6,2:1,38:7).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일컬어졌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made) 분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롬1:3). 바울은 빌레몬서와 데살로니가 후서를 제외하고 그의 모든 서신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갈1:16,4:4,고전1:9,고후1:3,19,롬1:9,8:32,엡1:3,골1:3).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그분의 아들께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기다리는지를 말하기 때문이니 이분은 앞으로 임할 진노로부터 우리를 건져 내신 예수님이시니라(살전1:1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있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갈2:20)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단순히 신분에 관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죄 없으신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계신다는 것과 그로 인하여 죄 가운데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구별된 분으로서 죄를 사하시기에 충분한 분이라는 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신분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해하려고 함으로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모습들을 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그분을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요1:1). 바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할 때마다 그분께서 이루신 사역을 함께 소개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이 죄사함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들을 행함에 있어서 질서를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주시고 행하심에 있어서도 질서있게 이루어지도록 하셨고(대하29:35), 모든 창조와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도 질서대로 이루셨던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 있어서도 질서대로 행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하고 계시며(고전14:40,골2:5), 심지어 질서 없이 행하는 자들에게서 떠나라는 강력한 경고의 말씀도 주심을 볼 수 있습니다(살후3:6). 이것은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하나님 안에서도 분명한 질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전11:3)
모든 것이 그분께 굴복 당할 때에는 아들도 모든 것을 자기 아래 두시는 분께 친히 복종하시리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려 하심이라(고전15:28)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시고, 그분은 하나님의 한 속성을 지니시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질서에 따라서 하나님 아래 자신의 자리를 두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신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그분의 낮아지심은 오직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기 위한 의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질서대로 살아가고 순종에 대한 가르침을 친히 보이시기 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창조로부터 모든 것들의 질서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종하셨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을 창조 하신 분이시다.

창조자 예수 그리스도! 많은 사람들은 이 단어에 익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대부분의 이단 종교에서는 이 구절을 삭제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심지어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말하는 카톨릭에서조차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신앙고백(물론 오늘날 많은 기독교회들이 이것을 받아 암송하고 있기는 하지만)을 통해서 거짓 교리들을 전하는데 애쓰고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라는 암송 내용은 그들이 바울이 소개하고 있는 이 성경 구절을 외면한 고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감추어져 온 이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려 하심이라(엡3:9)
이 아들께서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形像)이시요, 모든 피조물의 처음 나신 분이시니 이는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음이라.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왕좌들이나 통치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노라. 또한 그분께서는 모든 것보다 먼저 계시고 모든 것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골1:15-17)

어떻게 이보다 명확하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그분의 소유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모든 것을 멸할 수 있는 자격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또한 장차 세상을 통치하시기 위해서 내려오실 분이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본래 모든 피조물들을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다.

왜 바울은 예수님께서 육신의 모습을 입고 오셨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설명하려는 것입니까?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보다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육신의 모습을 지니고 오시지 않으셨다면 피 흘리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사실을 믿지 않는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사람들의 것과는 그 근본적인 성분부터 다르다고 말합니다. 마치 외계인의 피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피, 즉 보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피가 사람들의 것들과 다르다면 그분의 피는 우리들의 죄를 사하는데 아무런 효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능히 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시나니 곧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또 죄로 인하여 육신 안에 죄를 정죄하셨느니라(롬8:3)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스스로 무명(無名)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빌2:6-8)

물론 예수님의 피가 보통 사람들의 피와 같다고 말하는 것도 틀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으신 분으로 성경은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요일3:5). 이 말은 곧 예수님의 피가 깨끗함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피는 성분에 있어서 사람들의 것과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만일 사람들과 다른 피를 지니시고도 죄를 사하실 수 있으시다면 굳이 사람들과 같은 육신의 모양으로 오실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상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이들은 아직도 예수님께서 영으로 세상에 오셨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명백히 부정하는 것이며,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요일4:2,3). 예수님께서 완전한 육체로 오셨다는 사실은 구속의 사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부분을 성경의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5.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지식을 제공한다.

세상에서 완전한 지식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또한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그 해답은 당연합니다. 그것은 그것을 만든 이에게 묻는다면 매우 간단한 것입니다. 한 폭의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그것을 그린 자에게 설명을 들으면 됩니다. 한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곡을 이해하려면 그 곡을 만든 작곡자에게 물으면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권의 소설을 이해하는 데는 작가에게 물으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대하여 알고 싶다면 이 세상을 지으신 분에게 물으면 됩니다. 무슨 다른 설명이 필요합니까?

이는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기 때문이니라(고후4:6)
그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2:3)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세상에 대한 모든 지혜와 지식이 들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라도 그분이 없이는 만들어 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골1:15-17). 그분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일 세상에 대한 지혜와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박사나 교수를 찾아가야 옳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묻는 것입니다. 그분의 다른 이름은 말씀입니다(요1:1-3). 그렇습니다! 우리의 손에 들린 말씀은 곧 모든 지혜와 지식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보다 바른 지혜와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성경을 펼쳐 드십시오. 그러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것들이 우리의 눈 앞에서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께 나아간다.

아담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게 되는 순간 사람들은 가망이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의지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에게 다가와야만 했고,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어떠한 이야기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순종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불순종의 결과는 결국 그들을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후로 이러한 모습은 변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는 그분을 통하여 우리 둘이 한 성령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게 되었음이라(엡2:18)
이는 너희가 다시 두려움에 이르는 속박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음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힘입어, 아바, 아버지, 라 부르짖느니라(롬8:15)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사람들이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백성의 관계라는 것은 언제나 버려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이민을 가면 다른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는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분에 있어서도 특별한 관계에 놓이게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가령 한 나라의 백성으로서 출세를 해서 고위 공직자가 되었더라도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는 통치자 앞에서 영원히 그의 명령을 따르는 자로서 존재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신분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그의 신분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든지 자신들의 원하는 것을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아버지로 모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분의 신분 아래 보호받게 된 것입니다. 누구로 인하여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능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아멘.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화해함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도 없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보실 수 없으실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 화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도다(롬5:1)
또 십자가로 그 원수 되게 하는 것을 멸하사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려 하심이라(엡2:16)

7.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 값을 치르신 분이시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굳이 죄에 대한 값을 치루셔야만 하는 것입니까?” 물론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이유로 사람들이 모두 죄인인 까닭에 죽는 모습을 보고 계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사람이 죽어야만 하느냐구요? 그것은 성경에 죄의 삯이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롬6:23). 이 사망에서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면 그에 대한 값을 치루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 값은 누군가 그 사람을 대신해서 죽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 일을 하셨습니까?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하게 답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음이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으니 너희는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7:23)

그렇습니다! 주께서 값을 치루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한 분만의 사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 하나님,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계획 속에서 진행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순종으로 완성되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하여 대속(代贖)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엡1:7)
이 아들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하여 대속(代贖)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골1:14)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화해 헌물로 제시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으로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사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려 하심이요(롬3:25)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대속(代贖)하셨으니 이는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는 다 저주받은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하신 분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주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속전으로 드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에 대하여 순종하셨고, 결국 피를 흘리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심으로서 사람들의 모든 죄 문제를 처리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완전하신 계획 속에서 완전하게 처리된 것입니다.

8.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이시다.

우리는 침례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침례요한은 지금 예수님을 어린 양과 비교하여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잡았던 어린 양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역시 그 어린 양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예언 된 메시아를 증명하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한 것입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들인즉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이는 우리의 유월절(逾越節) 어린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물이 되셨음이라(고전5:7)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짐승을 드리도록 했습니다. 이는 비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당된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것은 아벨, 노아, 아브라함 등 구약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생명을 대신할 피가 필요했기 때문에 흠 없는 짐승을 드림으로서 그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었던 것입니다. 유월절 사건은 그 대표적인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빠져 나올 필요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그들에게 약속된 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빠져나오는데 있어서 최종적인 방법은 바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면하기 위해서 어린 양의 피가 필요했고, 그 피를 문에 바랐습니다. 이 사건은 결국 그들이 이집트에서 빠져나올 수 잇도록 만들어 주었고, 그들은 홍해를 건너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수 있었던 어린 양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 사람들을 죽음에서 건져내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희생물이 되셨고, 이미 성경을 통하여 예언되어진 분이라는 점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9.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우리도 다시 살게 될 것이다.

바울이 선언하고 있는 복음에는 세 가지의 요소를 포함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에 관한 것입니다(고전15:1-3). 그 가운데 부활은 장차 있게 될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같이 우리도 장차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셨듯이 우리도 일으키실 것입니다(고전6:14).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으로 일으키셨듯이 우리도 그분과 함께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고후13:4).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처소에 계시듯이(엡1:20), 우리도 또한 주님과 더불어 하늘에 처소에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넘겨지셨으며 우리의 칭의(稱義)를 위하여 다시 일으켜지셨느니라(롬4:25)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심을 받은 것같이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롬6:4)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이 동일한 부활을 경험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 후레 그리스도인들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다시 살아 난 그들이 결혼을 하게 될 것과 하나님에 대하여 열매을 맺게 될 것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게 되었으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다른 이 곧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킴을 받으신 이와 결혼하게 하려 하심이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하심이라(롬7:4)

결혼의 의미가 무엇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함께 머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으며, 또한 모든 일들에 있어서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상상을 해 보십시오. 우리가 장차 주님과 더불어 하늘의 일들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 한다고 하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고, 또한 그분의 처소에 거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0.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완전한 대제사장이시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제사장을 지성소로 보내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만일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피를 가지고 들어갔을 때에는 즉사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곳을 들어가기 위해서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또한 짐승의 피를 준비함에 있어서도 완전한 것을 가지고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자신을 온전하게 준비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사이를 화해하게 하는 일을 했던 자였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과 화해시킬 수 있겠는가? 바울은 그 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역활은 바로 구약의 대제사장들이 했던 바로 그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모든 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일을 하고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니라(롬8:27)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시요, 참으로 다시 일어나신 분도 그리스도시니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느니라(롬8:34)

대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그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짐승의 피를 들고 하나님과의 화해를 시켰듯이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의 죄 문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해결을 위해 중보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참 대제사장이시고, 또한 언제나 우리의 편에 서서 하나님께 말씀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11.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완전한 재판관이시다.

이 땅에 환난이 오기 전에 휴거된 그리스도인들을 누가 심판하는가? 변개된 성경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명백하게도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일어나사 다시 살아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무시하느냐? 이는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설 것임이니(롬14:9,10)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날 것임이라. 이로써 각 사람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서 행한 것들을 받으리라(고후5:10)

물론 이 심판이 믿는 자들을 구분하여 지옥으로 보내는 심판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번 구원받은 자들은 결코 지옥으로 가는 일은 없습니다. 이 심판은 멸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자기의 행한 것에 따라” 받는다는 말씀을 보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비록 구원을 얻은 자라고 할지라도 동일한 상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행한대로 상을 주실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행한 것이 없다면 그는 주 앞에서나 모든 구원받은 형제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주님으로부터 왕관(면류관)을 얻게 된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영광스러운 순간을 맞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매우 공평하시며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의 모든 모습들을 알고 계시며, 장차 우리에게 좋은 상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게 될 날을 기대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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