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신앙 근거
성서조선 第 99 號 (1937年 4月)
김교신
사도행전을 읽은 이는 누구든지 그 중의 2대 인물에 주목하게 된다. 사도행전의 전반에 주역으로 일하는 베드로가 그 한 사람이요, 후반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 ‘달 차지 못한 사도’ 바울이 또 그 한 사람이다. 바울은 제7장과 9장에도 조금씩 나타나지만 제13장 이하의 제1차 전도여행이 끝난 후부터는 기독교가 유럽으로 건너가서 세계적으로 진전되는 제 1인자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환난과 핍박이 더하면 더할수록 그 비범함이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바울의 생애를 헤아리는 자마다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해보아야만 쓸모 있는 인재를 알아 볼 수 있다’는 격언을 다시 한번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 투옥되었던 것(제16장)과 우상을 제조하던 은세공업자들의 소동을 만난 때(제19장)의 광경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포박되어서 재판을 받는 몸으로서 도리어 재판관을 위엄으로 압도하는 광경을 보라.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24:24~25)함은 벨릭스가 비명을 지르는 것이요,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26:27~29). 이는 심판받는 법정에서 심판장 아그립바 왕을 삼키려는 바울의 기세이다. 실로 글자 그대로 ‘기개세(氣蓋世)’의 쾌장부를 우리는 바울에게서 발견한다.
죄인의 몸으로 로마행 범선을 타고 폭풍과 파선의 위기를 당한 때의 바울은 또한 군계 중의유일한 학의 존재였다. 안정할 수 없는 때에 저는 안정하였고 희망을 가질 수 없는 때에 저는 홀로 희망을 가졌었다. 그 유래가 어떠한가? 그 원천이 어디인가? 물론 저의 천품이 매우 뛰어났던 것도 원인일 수 있으나 바울 자신으로부터 들어보자면 자기 생애의 모든 변혁과 원동력은 죽은 후에 부활한 예수를 만나본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사도행전 제26장은 자기 전생애의 축소판이자 재판을 받을 때에 한 변명인데 “해보다 더 밝은 빛”을 보았다는 것과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 그 요점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는(빌립보 3:10~11)것이 바울 평생의 신앙의 중심 축이다. 이 신앙, 이 희망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질주하였다’.
이해할 수 있거나 없거나 사실을 사실로 인식하여야 한다. 만물이 갱생하는 부활절을 맞아 우리는 다시 한 번 원시적 신앙을 회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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