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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문에서 '사주에 미친 교인들' 글을 읽고...

은바리라이프 2009. 1. 2. 12:48

간증문에서 '사주에 미친 교인들' 글을 읽고...
글쓴이 : 관리자 (221.♡.29.166) 날짜 : 07-10-18 11:27 조회 : 268 추천 : 0
> 방금 간증게시판에서 '사주에 미친 교인들' 글을 읽고 왔어요.
> 전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주님을 믿는 거듭난 신자지만
> 예전에는 주님도 성령님도 머리로만 알고 생각없이 교회 출석만 하던 교인이였거든요..
> 근데 주님을 믿는 지금까지도.. 한가지 그림자 처럼 드리워져서 절 괴롭히는게 하나 있어요..
> 다름이 아니라..예전에 교회 그냥 출석만 하던 시절에 제가 재미로 점 같은걸 본 적 있었거든요.
> 사주집 가서 본건 아니고..집에서 심심풀이로 한건데
> 과거와 현재를 정확히 맞추더군요 (물론 사단의 장난인걸 지금은 압니다..)
> 그런데 미래에 제가..
>
>  "부모님께서 말년에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것이므로 당신에게 의지하며 살 것이다"  라는 점이 나왔어요.
>
> 그때 저희 아버지께서 대기업 간부셔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을때라
> 말도 안된다고.. 그냥 웃고 넘겼거든요.
> 그런데 몇년 전 갑자기 회사에 사표내시고 목회자 길로 들어서셨어요..
> 그래서 지금은..성도도 몇명 없는 자그마한 개척교회 목사님이세요...
> 그래서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렵습니다.. 생활비가 모자라서 빚을 내가면서 ..
>
> 한달 한달이 기적처럼 넘어가요...
> 지금도 어머니께서는 '예전에만 해도 이런 고생 할줄은 상상도 못했다' 고 습관처럼 말씀하세요..
> 그러시면서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니 이것이야 말로 은혜다' 라고 고백하시지만요..
> 그런데 전 늘 예전에 봤던 그 점 (그것도 제 인생에서 본 유일한? 잘 모르겠어요. 유일하게 기억에 남네요..)이 자꾸만 떠오르는데..
> 정말 찝찝하네요.. 지금 현실로 봐선 진짜로 그 점대로 되는것 같고...
> 주님을 믿는자로서 이런 생각 가지면 안되겠지만... 그런 생각이 간혹 저를 그림자처럼 불쑥 나타나서 괴롭힙니다..
> 저희 부모님은 정말... 끝까지.. 이렇게 경제적으로 힘들게 쪼달리시며 사시게 될까요?...
> 사단은 정말 ..미래에 대해 점칠 능력이 전혀 없는거 맞죠?..
> 그럼 우연일까요... 솔직히 괴롭습니다...
>

좋은 말씀으로 답변을 주셨군요.
목회자 가정이기 때문에 조금 다른 측면에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 말씀올렸습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사주 관상 혹은 점을 치는 문제.
우리 주변에는 사주 관상 혹은 점을 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즘은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점을 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아마 기도하는 분위기가 많이 식어서 그렇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이들의 배후에는 사단이 있다는 사실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단이 어떤 이론적인 배경을 가지고 공격을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1)숙명과 예정.
사단의 공격을 보면 숙명설을 가지고 공격합니다.
물론 방법이 있다고 꼬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주 혹은 관상, 점을 치면서 듣는 소리들은 정해진 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운명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숙명적 생각은 마치 기차가 철길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
기차는 깔려 있는 레일대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삶이란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속에 있기 때문에 다릅니다.
숙명을 기차철길에 비유한다면 예정은 큰 대로를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한된 범위(사람의 삶으로서는 불편함이 없음)이지만 대로를 자유롭게 운전하면서 가는 것과 같습니다.
1차선으로 갈 수도 있고 2차선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도로라는 제한된 범위(하나님의 주권의 범위)이기는 하지만 자유스럽게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이와 같습니다.
이것이 예정과 숙명의 차이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과 같이 개인에게 정해진 길은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생각은 사단적인 지식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물리쳐야 하는 지식이고 생각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절대로 그와 같이 정해져 있거나 정해진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문제는 2번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문제가 되는 때.
사람이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갖 가지 경험을 하면서 살게 됩니다.
어려울 때도 있고 어렵지 않을 때도 있고.
건강할 때도 있고 아플 때도 있고.
근심 걱정이 많은 때도 있고 편안할 때도 있고등등...
문제는 이와 같은 어려운 때를 당할 때에 발생하게 됩니다.
그 때에 사단이 박아 놓은 못(잘못된 지식이나 불길한 말등)이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불길한 생각이 들고 불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사단이 공격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때를 노리고 있다가 공격하는 것이지요.

2. 우리의 미래.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에 대하여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확정된 미래.
한 가지는 영원한 구원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듭난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만약 거듭나지 않았다면 해당사항이 없고 영원한 지옥형벌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안에 들어왔는가 들어오지 않았는가 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 구분선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은 확정적입니다.

2)유동성이 있는 미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우리의 미래에 대하여 유동성이 있는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즉 말씀에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참으로 복잡한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포괄적으로 볼 때에는 순종의 삶을 살 때에는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불순종의 삶을 살 때에는 훈련과 징계를 받습니다.
때로는 저주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신28장전체의 말씀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말씀은 성경에 널려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야 하는 참으로 복잡한 부분이 있습니다.

3)순종을 전제한 복된 삶.
순종을 전제로 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복된 삶이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부자가 되는 것일까요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물질적인 복도 복이니까요.
건강한 삶일까요 당연 건강일 수도 있습니다.
물질이 있어도 건강하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이와 같은 것 외에도 사업을 하시는 분은 사업이 잘 되는 것,
직장에 다니는 분은 직장에 잘 다니게 되는 것,
성인일 경우에는 결혼을 잘 하는 것등등 ...

우리 주변에는 복된 삶에 속하는 요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진주를 발견하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진주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의 소유를 모두 팔아 더 귀한 것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하느냐 또는 내가 무엇을 받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만약 사업을 하는 분이 복을 받는다면 물질에 풍성하겠지요.
그러나 목회를 하시는 분이라면 영적으로 풍성해 지며 많은 상급을 쌓겠지요.
기도하는 분이라면 영적인 다양한 은혜와 풍성함을 누리게 되겠지요.
그러므로 내가 받은 것이 무엇이며 심은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세상에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받은 것이 있고 그 받은 것으로 인하여 누리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종을 전제로한 복된 삶이라 하여도 물질적인 복의 개념에만 묶이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물질적인 개념의 부자로만 생각한다면 바울과 같은 사람은 저주 받은 삶을 살았던 사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지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았거든요.
그러나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에 아버님 되시는 분께서 목회를 시작하신 것은 정말 복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경제적인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은 아버님께서 스스로 선택하신 것 아닙니까.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사는 것 보다 더 귀하고 중요한 것이 목회라는 사실을 깨닫고 시작하셨을 테니까 말입니다.
사실 육신의 생명을 넘어선 영원한 영적생명을 돌보는 목회는 세상에 가장 귀한 사역 가운데 한 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깊은 깨달음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복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3. 가치관의 문제.
마지막으로 귀중한 문제를 취급하고자 합니다.

1)교회를 향한 물질적인 가치관중심의 판단.
그것은 개척교회 혹은 성도수가 몇명 없는 교회는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목회자세계에서도 목사 취급을 받지 못하거나 성도들까지도 우습게 생각하는 풍조가 생겼습니다.
이와 같은 사회 혹은 교계의 따가운 눈치 때문에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 건물짓기 경쟁, 성도 긁어 모으기 전쟁을하고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여 큰 건물 지어 놓으면 사람들이 와서 채우게 되고 헌금하게 되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썩은 생각입니다.
또 성도들도 눈이 어두워서 그와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을 좋게 생각합니다.
성경대로 가르치는 목사는 답답하고 열리지 않은 목사 취급 받기 일쑤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자녀를 학원에 보낼 때에 수백명을 한 교실에 모아놓고 가르치는데 보내겠습니까 아니면 개인교수식으로 한 두명 혹은 4-5명을 모아놓고 철저하게 가르치는 곳에 보내겠습니까?
모르긴 해도 모두 개인 교수식으로 가르치는 데로 보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 현실을 보겠습니다.
개척교회에는 한영혼이 곧 생명입니다.
그러나 대 교회에는 누가 왔다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개척교회에는 처음 전도한 한 사람을 일꾼으로 세워보려고 총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대형교회는 밀려들어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제대로 돌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행정적으로 소속만 하고 있도록 돌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또는 그리스도인의 풍성한 삶으로 제대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교회는 목자가 있으나 성경적인 목자가 없고 양이 있으나 성경적인 양이 없는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를 물질적인 시각으로 보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말씀을 이스라엘에서 하신 것이 다행입니다.
만약 한국에서 하셨으면 돌 맞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두명 목회 하는 사람은 천하에 제일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 받고 있거든요.
한 명의 성도가 있다면 곧 천하를 소유한 것 보다 더 귀한 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돈 몇푼 건물 몇평 따지면 되겠습니까?
돈 몇푼 건물 몇평이 어떻게 천하와 비교 할 수 있습니까?
교회마다 성경을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교회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그런 교회는 외부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많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2)시대적인 잘못된 가치관에서 벗어나야 함.
오천년 가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가 물질적으로 조금 풍성해 지니까 정신이 빠졌어요.
심지어 교회까지도 말입니다.
이와 같은 잘못된 가치관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이와 같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목회자부터 물질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복을 물질적으로만 생각하고 보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담글을 올리신 분도 정말 귀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바랍니다.
그 때에는 아버지께서 얼마나 귀중한 선택을 하셨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롬12:1-2절 말씀을 보면 그 시대를 본 받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시대는 그 시대에 흘러가는 가치관을 말합니다.
지금 한국과 한국교회는 물질만능주의, 민주의의, 개인주의 사고의 늪에 빠져 성경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가치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만약 이와 같은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상담하신 분의 아버님이 돌을 맞을 지도 모릅니다.
왜냐구요?
지금 현재 한국에서 개척을 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즉 물질적으로 풍성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주 혹은 복을 못 받은 목회자로 낙인찍겠습니까?
*아버님께서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아야 성공하였다고 말하겠습니까?
*헌금이 많이 나와서 성역비도 많이 받고 고급 자가용 타고 으시대면서 다니면 우리 아버지는 목회 하면서 복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겠습니까?
*조폭 두목 처럼 목사님이 떳다하면 줄줄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예 예 하고 따라야 복 받은 목사님으로 생각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순교자는 개죽음 당한 사람이겠군요.
바울은 거지 같은 인생을 살았던 전혀 모범이 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언어 환경이 다른 이방 문화권에서 죽을 고생을 하는 선교사들은 바보 멍청이가 되겠네요.

무엇이 더 귀중한 것인지 깨달음이 필요할 것같습니다.
물론 한국교회 전체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감당할 만큼 감당해야 합니다.
바벨탑을 쌓는 것과 같이 우리 이름을 내자 하는 식으로 하지 말고 말입니다.
목자로서 돌보지도 못하면서 수천 수만명 끌어 모아놓고 말입니다.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시1편 말씀에 있습니다.
받은 것을 귀중하게 생각할 줄 알고.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감수할 줄 아는 사람.
묵묵히 믿음으로 걸어가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세상 풍조에 흔들림 없이 천성을 향하여 걸어가는 사람이 아닐까요?

이와 같은 깨달음이 있을 때에 아버님께서 세상 물질과 평안을 버리고 생명 길을 선택하신 귀한 분임을 알게 될 것이고 비록 물질에 어려움이 있어서 활동에 어려움이 있다할지라도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날이 속히 오기를 기원합니다.

사무엘신학원
홍샘목사
http://www.jesus9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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