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TV 드라마 어떻게 변해가나] 경쾌한 멜로… 체념하던 엄마는 ‘뿔’ 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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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드라마 왕국이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TV에서만 매년 60편이 넘는 드라마가 쏟아진다. 드라마의 소재와 형식은 당대의 문화 트렌드와 대중의 관심사를 반영하고 있다.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정영희 연구원이 2000년대 TV 드라마의 경향을 장르별로 분석했다. 이달말 발간될 예정인 한국언론학회보 발표를 앞두고 있는 정 연구원의 논문 내용을 소개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21세기 한국 드라마는 현실을 떠나 한없이 가벼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순애보 사라진 애정물='겨울연가'(2002)는 드라마의 한류 바람을 일으켰지만 준상이와 유진이 같은 순애보는 요즘 드라마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2003년을 기점으로 비극적인 정서의 멜로 드라마는 물러가고 밝고 경쾌한 로맨틱 코미디가 대세를 이뤘다. 2000년대의 로맨틱 드라마는 '질투'류의 트렌디 드라마와도 달랐다. 10대의 사랑, 동거, 불륜과 같은 반사회적인 소재를 화려하고 감각적인 영상과 결합시켜 다른 시각으로 보게 만들었다. '궁'(2006)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이 입헌군주제 국가라는 파격적인 설정을 내세운 이 드라마는 TV드라마에서 리얼리티에 대한 강박을 완전히 걷어냈다. 만화적인 기법을 차용하고 인터넷 용어를 전면에 등장시켰다. 고전미와 현대적인 화려함이 어우러진 궁궐 내부의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네 멋대로 해라'(2007)는 삼각관계, 결손가정, 난치병 등 지극히 신파적인 설정을 언더그라운드 감성으로 포장해 드라마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았다. 신데렐라극의 인기도 여전했다. '파리의 연인'(2004) '내 이름은 김삼순'(2005) 등은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얻었다. ◇엄마의 힘이 세진 가족극=가부장적 이데올로기로 엄마들을 뿔나게 했던 홈드라마는 2000년대 들어 여성(어머니, 며느리)의 역할을 재조명했다. '며느리 전성시대'(2004) '굳세어라 금순아'(2005)는 가족 안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과 자녀 양육권을 주장하면서 남성 중심의 가족 관계에 문제를 제기했다. 어머니가 가출하는 내용을 담은 '엄마가 뿔났다'(2008)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다문화 가정과 결혼 이민 여성, 이혼과 재혼 문제도 주변 이야기로 배치됐다. ◇판타지로 간 사극=비인기 장르였던 사극은 역사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신화와 판타지, 여성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1990년대까지 사극은 주로 조선시대, 그것도 왕과 그 주변 이야기를 다뤘다. 2000년 '태조 왕건'을 시작으로 고려시대, 삼한시대까지 정통 사극의 소재가 확대됐다. '주몽'(2006) '태왕사신기'(2007)는 고조선과 고구려 시대의 실존 인물을 소재로 했지만 이야기는 신화와 판타지, 심지어 인터넷 게임까지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였다. 여성이 등장한 사극은 화려한 의상, 현대적인 어투, 독특한 소재로 생활사를 재해석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대장금'(2003) '다모'(2003) '황진이'(2006)에서 여성 캐릭터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독립적인 인물이면서 권력 갈등과 화해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심지어 '바람의 화원'(2008)에서는 역사 속 남성이 '남장 여자'로 묘사됐다. ◇시대극 퇴조, 시트콤 유행='TV문학관' '베스트셀러 극장' 같은 문예물은 쇠락했다. '전원일기'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등 농촌 드라마도 TV에서 사라졌다.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 시대극의 퇴조가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1970년대 경제 발전기의 군상을 그린 '죽도록 사랑해'(2003), 기업인의 삶을 다룬 '영웅시대'(2005), 정통 시대극 '제5공화국'(2005)은 모두 낮은 시청률로 고전했다. 반면 '거침없이 하이킥'(2007)은 일일시트콤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면서 각광받았다. 가볍고 경쾌하며 탈일상적인 시트콤의 유행은 2000년대 TV드라마의 감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사실적인 영상을 통해 비현실의 판타지를 즐기는 아이러니에 노출돼 있다. ◇드라마, 왜 가벼워졌나?=가벼움, 현실 외면, 판타지는 드라마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서 나타나는 경향이다. 정 연구원은 "과거에는 드라마가 반공, 애국 등의 메시지를 담아 수용자를 계몽·계도하려고 했기 때문에 심각하고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21세기 미디어 환경에서는 수용자가 시장을 주도하면서 드라마도 화려하고 감각적인 면을 부각시키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제작자의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했던 드라마가 수용자의 감성에 호소해야 하는 상품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사실감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TV는 그 어느 때보다 '리얼'을 추구하고 있다. 유재석이 "리얼 버라이어티"를 외치고, 강호동은 "리얼 야생 버라이어티"라고 소리친다. 'VJ특공대'는 전국 곳곳, 세계 구석구석의 현실을 시시콜콜 보여준다. '리얼 스토리' '리얼토크'가 채널마다 넘쳐난다. 정 연구원은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리얼리티를 경험할 수 있는 TV 장르가 많아졌다"며 "굳이 드라마까지 리얼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고 방송사들이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TV가 말하는 리얼리티는 '욕망의 민얼굴'이다. 드라마가 환상을 좇는 판타지로 나아간 것과 일맥상통한다. "나도 예전에는 진지한 드라마를 좋아했는데, 이젠 '대한민국 변호사'처럼 무거운 문제도 가볍게 다룬 작품이 좋다"는 정 연구원은 "굳이 드라마까지 무겁고 성찰적일 필요가 없다는 게 21세기 수용자들의 생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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