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회개가 빠진 마술사 시몬의 신앙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된 마술사 시몬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사마리아 성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는 굉장한 마술사였다. 시몬의 마술을 보고 놀라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또 자기도 많은 사람들에게 자칭 큰 사람이라고 일컬었으며, 보는 사람들도 모두 ‘야, 정말 이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크신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면서 그를 청종하고 따랐던 것이다. 그때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났는데, 핍박으로 인하여 사도들을 제외한 모든 성도들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을 수 없어서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 흩어진 사람들 가운데 빌립은, 시몬이 마술을 행하고 있었던 사마리아 성에 도달했다. 사마리아 성에 오자마자 빌립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했고, 그가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동안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셔서 많은 표적들을 허락하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낫게 되어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
그때 사마리아 성에는 두 가지 놀라운 일이 있었는데, 하나는 시몬의 마술로 인하여 일어난 일이었고, 또 하나는 빌립이 증거하는 복음으로 인하여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였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이 복음을 전함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보기 전까지는 시몬의 마술을 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빌립이 복음을 전함으로 나타나는 진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을 때, 그들은 더 이상 시몬을 청종하지 않았으며, 빌립을 따라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이제 문제는 시몬이었다. 사마리아 성 사람들이 전부 자기를 따라 주었는데, 빌립이 온 후로부터 자연히 인기를 잃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빌립이 증거하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게 되니까, 시몬도 어쩔 수 없이 ‘나도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몬이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세례까지 받았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이 전적으로 악하다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 인정하는 참된 회개가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을 때에 ‘회개해야 된다.’고 해서 자기가 범한 죄를 낱낱이 자백한다. 그러나 참된 회개는 ‘내가 이런저런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심령 자체가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이사야 55장 6절, 7절에서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라고 되어 있다. 물론, 우리 각 사람은 지금까지 죄악된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죄를 짓고 난 뒤에 ‘하나님, 내가 이런저런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하고 앵무새처럼 자기 죄를 낱낱이 고백하는 그것이 참된 회개가 아니다. 진정한 회개는, 근본적으로 내 육신은 죄악덩어리이고 육신의 생각은 죄악뿐이기 때문에, 우리의 잘못된 부분을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버리는 것이다. 내 생각 자체가 무너져야 하고, 내 자신의 모든 것이 버려져야 한다.
그런데 시몬은 자기 자신의 생각을 버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자기를 위하는 마음, 자기를 주장하는 마음이 버려지지 않은 채, 자신이 살아 있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으니까 그가 믿는 하나님은 그의 육신의 유익을 위한 존재밖에 되지 않았다. 만일 시몬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었다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내가 지금까지 행한 일들은 눈속임이었고 마술이었지, 그것은 정말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는 고백이 있어야 했다. 자기 자신이 행한 것은 전부 사람들의 눈을 속인 것이었으므로 그 자체가 악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야만 했는데도, 시몬은 자기 자신이 전혀 부인되지 않은 그대로 하나님을 믿었다.
오늘 이 시대 사람들에게도 신앙 생활을 하기 어려운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교회도 많이 있고 말씀을 들을 기회도 많아서 예수 믿는 모양을 내기는 너무너무 쉽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믿음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했듯이, 내 생각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내 생각을 버리고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내 자신이 부인되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 말씀을 깨닫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런 사람은 시몬과 같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후 예루살렘 교회는 사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 성으로 보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함으로 사람들이 성령받는 것을 보고, 시몬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했는데, 그때 베드로는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했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했다. 시몬은 그때까지도 자기 생각 속에 머물러 있었다. 옛날 마술을 할 때의 그 마음이 전혀 깨뜨려지지 않은 가운데 그 마음을 그대로 두고 거기에다 하나님을 믿으려 했던 것이었다. 베드로는 시몬을 향해 계속 말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악독이 가득하고 불의에 매인 그 가운데서 시몬은 하나님을 믿으려 했고, 성령을 받아들이려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을 우리 마음 속에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가 착한 일을 하거나 다른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무너져 내려야 하는 것이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구약 레위기 1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양이나 소를 불태워 드리는 번제에 관한 규례가 나온다. 하나님은 양이나 소가 살라지는 그 냄새를 흠향하셨다. 하나님은 왜 제물을 불사르는 그 냄새를 좋아하시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 육신이 제거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육신의 생각, 육신의 의지나 주관이라는 고깃덩어리가 불타 재가 되어 없어질 때, 하나님은 가장 만족해 하신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 육체와 계속 싸움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왕이 되시고 우리를 주관하는 주가 되기를 원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성령을 우리 속에 왕으로 모셔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육신의 생각이 완전히 부인되어야 한다.
내 생각이 살아 있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성령을 모셔들인다면, 우리는 우리 육신의 소욕을 위하여 성령을 이용하려 할 것이다. 시몬은 빌립에게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 능력은 그때까지 그가 행하던 마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컸다. 시몬은 그 전에 마술을 행함으로 그랬듯이, 그 능력을 써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자기를 높이고 싶었다. 그것은 진정으로 뉘우치는 마음은 아니다. 정말 자기가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추하고 더러운 죄인임을 깨닫고, 긍휼을 구하는 마음으로 회개하여 성령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악한 생각을 그대로 두고 성령을 모시려고 했던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도둑질을 하거나, 간음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미워하는 등,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죄를 지은 결과는 중요하게 여기지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죄악된 마음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어쩌다가 실수를 했거나 잘못을 저질러서 도둑질하고 간음한 줄 알지, 자기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는 죄인임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냥 실수한 그 부분을 고백하려고 하지, 근본 악을 뉘우치고 자신을 부인하고 버리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버리지 않는 가운데 교회에 나가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다.
놀라운 것은, 그런 사람들 속에는 성령이 임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린 보혈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씻었다.’ 하고 복음을 증거한다. 그러면 복음을 들은 사람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아,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씻었다면 이제부터 죄를 막 지어도 되겠네?’ 하고 비방을 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씻었다면 죄를 막 지어도 된다는 말인가?’
‘이제부터는 도둑질을 하든, 간음을 하든, 마음대로 살아도 괜찮은가?’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그렇게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된다고 가르치는 무리라고 우리를 매도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복음을 듣고 나면 능히 그럴 법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왜? 시몬처럼 자기가 무너지지 않고 그냥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사했다는 사실만 깨닫게 되면 그런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내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씻었으니까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난 천국갈 것 아닌가? 그러니까 내 육체의 소욕을 따라 마음껏 죄를 짓고 즐기자.’ 그런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하나 말씀해 주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신명기 29장 4절에 보면,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그날까지 주지 아니하셨다.
또 이사야 6장 9,10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 예수님께서도 자주 자주 그 말씀을 인용하셨는데, 주님은 마태복음 13장 13절 이하에서,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마 13:13~16) 고 말씀하셨다.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자기들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은 그 상태 속에서, 추하고 악한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내 모든 죄를 사했다.’는 사실을 깨달을까봐 하나님은 염려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깨닫는 마음을 주지 아니하셨고, 보는 눈이나 듣는 귀를 주지 아니하셨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셨다면,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진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다면, ‘아, 내가 죄를 사함받았으니까 이제는 거칠 것이 없다.’ 하는 마음이 들 것이고, 그 마음이 들면 정말 육체의 소욕대로 마음껏 죄를 짓게 될 것인데, 그러면서도 ‘예수님이 이 죄도 다 사해 주셔서 괜찮다.’ 하는 마음으로 진짜 방탕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만일 어느 경찰서장 아들이 ‘아버지가 서장이기 때문에 내가 나쁜 짓을 해도 나를 감옥에 넣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는 담대하게 죄를 짓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우리에게 주지 아니하시고, 우리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 무너져 내려서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와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신 후,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깨닫도록 하신 것이다.
신앙의 기형아가 되어버린 사람들
참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내 모든 죄를 사했다고 하지만, 그들의 마음 가운데 여전히 죄가 앙금처럼 남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들이 자신을 부인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음으로 성령을 모실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닫지 못할 때 바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머리로 말씀을 깨닫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깨닫게 되기를 원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깨달으려 한다면 먼저 우리 마음 속에 성령이 들어와 좌정할 수 있도록 회개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 내가 추하고 더럽고 악뿐인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정말 살인자요, 거짓되고 가증한 죄인임을 인정하고, 내 마음 중심에서 나를 미워하고, 내 생각을 버리고 부인해야 한다. 이제 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삶을 끝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을 내 마음에 모셔들여 예수 그리스도가 내 마음의 주가 되어 그분의 인도를 받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이 옮겨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깨달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사하신 것을 깨달을지라도 그는 성령에 잡힌 바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육체의 소욕을 따라 간음하거나 살인하거나 도둑질하며 살 수 없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부인되지 아니하여 성령이 마음 속에 없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이제 자유롭게 마음껏 죄를 지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성령이 마음에 자리를 잡고 계신 사람들은 육신이 죄를 향해 달려갈지라도 성령이 잡아 주시기 때문에 더 이상 죄에 매이지 않는다. 그들은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사역을 하면서 참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씻었다는 이 복음을 전하기는 너무너무 쉽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깨뜨리기는 정말 쉽지 않은 것이다. 오늘날, 자기 마음이 깨뜨려지지 않은 가운데 복음만 들었기 때문에,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시몬처럼 신앙의 기형아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셨다는 이야기는 하지만 보혈의 공로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 곧 자신이 깨뜨려지고 부인되어야 한다는 설교를 하지 않는 목회자들은 얼마나 많은가? 오늘 이 땅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기 육체의 소욕에 끌려다니면서 예수님의 이름만 팔아먹는 악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가 성령을 마음 속에 모셔들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마치 아름다운 빌딩을 짓기 위해서는 낡은 집을 헐어버려야 하듯이, 우리 마음 속에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우리의 인간적인 세계를 청산하고 무너뜨려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셔들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 여러 곳에서 우리 인간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인간이 스스로 깨닫거나, 보고 듣고 판단하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성령에 의해서 깨닫고, 성령에 의해서 보고, 성령에 의해서 듣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부인되어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씻었다고 해서 방종하거나 육체의 소욕을 따라 죄를 지을 수 없다. 성령의 다스림 속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복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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