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성경 상식

'요한의 세례'와 '예수의 세례'

은바리라이프 2008. 8. 22. 16:43

'요한의 세례'와 '예수의 세례'

    사도행전 18:24-7에 보면 다소 이상한 신자들이 나온다. "예수에 관한 것"을 열심히 가르치기까지 하지만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던 아볼로(18:25)와 '제자'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역시 '요한의 세례'만 받아 성령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던 에베소 사람들이다(19:2-3). 초대교회의 이런 신자들을 우리가 어떻게 분류하고 해석해야 할까?

   아볼로는 당시 이집트의 대표적인 학문의 도시이며 유대인 인구가 상당했던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이었고 그 출신지의 인물답게,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로 평가되었다(18:24). 분명히 아볼로는 신자였고 구약에 입각해 예수에 대해 가르칠 만큼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으나 무엇인가 결여된 점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들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이 점을 간파했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주었다고 했다(18:26). 그러나 사도행전이 그 내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하지 않아 우리로서는 본문에 입각한 추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28절을 잘 살펴보면 답이 보인다. 처음에는 아볼로가 '요한의 세례'만 알면서 예수에 대해 가르치다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 배운 후 아가야에 가서는 성경을 풀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증거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아볼로가 처음에는, 윤리적 회개를 가르친 요한의 세례와 그 뒤를 이었던 부활 이전 예수의 각종 교훈 및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언자적·종말론적 기대만을 알고 그것을 구약의 가르침과 연계해 설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아볼로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이어지는 대속(代贖)의 사역과 그에 입각한 '기독론'의 구원관을 몰랐을 수 있다. 즉 예수가 대속적 죽음을 통해 인류 구원의 그리스도가 된다는 진리의 차원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것을 눈치챈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그에게 이러한 복음의 핵심적 요소를 풀어 가르쳐 주었고 이후 그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선포할 수 있었다.

   아볼로와 비슷했던 에베소의 제자들에 대해서는(19:1)? 누가는 바울이 이들을 만나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동시에 당시 고린도에 있었던 아볼로를 언급한다. 이 "어떤 제자들"도 앞 단락(18:24-28)에서 무엇인가 부족한 점이 있었던 아볼로의 상태와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들이 바로 아볼로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들일 수도 있다(18:25). 그들도 아볼로와 마찬가지로 "요한의 세례"만 알았다(19:3). 바울이 이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자 성령이 임하고 방언과 예언의 현상이 나타났다(19:5-6).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가가 '요한의 세례'와 '예수의 세례'를 어떻게 차별화시키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눅 3:16). 예수의 세례는 성령의 세례로 이해되고 있다. 이 점은 사도행전의 앞부분에서 베드로의 선포에서도 강조된 내용이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예수의 세례는 성령과 연결된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를 담고 있으나 성령과 연결되지 않는다.

   아볼로나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의 이야기를 감안할 때, 당시 초기 복음이 전파되는 중에 대속(代贖)적 기독론에 대한 이해가 없고 성령의 역사를 알지 못하던 노선의 제자 그룹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울과 바울의 동역자들은 에베소에서 이런 노선의 불충분한 기독교인들을 만나 문제를 해결해주고 그들을 온전한 그리스도인들로 만드는 사역을 했다. 요즘에도 이런 조건이 적용되는 신자들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