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바울

멜리데에서의 바울(행 28:1-10)

은바리라이프 2008. 8. 22. 07:23

멜리데에서의 바울(행 28:1-10)

성경본문:
사도행전 28:1-10
작 성 자:
kimw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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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데에서의 바울(행 28:1-10)

1866년, 우리 나라에 복음이 처음으로 들어 올 때의 일입니다. 토마스(Thomas, Robert Jermain 1840-1866)라는 이름을 가진 선교사 한 분이 대동강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겠다고 작은 배를 타고 들어 왔을 때 우리들의 조상들은 그 선교사를 어떻게 대접을 했었는지 기억하십니까?


머나먼 이국 만리 길을 와서 새 생명의 복음의 소식을 전해 주겠다고 찾아온 토마스 선교사 우리들의 조상들은 비참하게 살해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의 조상들은 불과 140여년 전인데도 그렇게 무지했었는데 이 멜레데의 토인들은 말만 야만인이지 2000년 전에 벌써 복음을 가진 자를 영접할 줄 알았습니다.


‘멜리데’는 오늘날의 말타(Malta)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이 섬은 시실리 남쪽 약 98Km, 아프리카 북동쪽 약 320Km 지점에 위치한 섬으로, 전체 길이가 약 29Km 되고 너비가 15Km 정도 되는 작은 섬입니다. 물론 이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행 27:26)한 바울의 예언은 성취되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멜리데란 이름은 페니키아의 선원들이 붙인 이름으로 ‘피난처’란 뜻입니다. 지중해를 항해하다가 풍랑을 만날 때 피난처가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이름 그대로 바울 일행은 해와 달도 보이지 않고 큰 풍랑의 위협이 있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로 인하여 피난처를 찾았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피난처이신 하나님은 시련과 고통을 받는 당신의 자녀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는 분입니다. 이제 좀 더 깊이 살펴봅시다.


첫째, 바울은 곤경에 처해서도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사도 바울만큼 예수 믿는 일 때문에 곤경을 만난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사도인 표적이 어디서 환대를 받거나 높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매맞고 굶고 고난 당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고후 11:23-28). 여기서 바울이 당한 곤경을 다 열거 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만 살펴보면서 사도 바울이 그때 그때마다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를 봅시다.


먼저 1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 전하는 일로 인하여 무수한 매를 맞게됩니다. 옷을 벗기고 매로 때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캄캄한 옥에다 가두어 버렸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 보신 분이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를 심하게 맞을 때도 그 아픔이 대단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상처의 아픔은 쑤시듯이 온 몸을 마구 찔러 옵니다.


아마도 사도 바울이 매를 맞은 때는 밝을 때였을 것입니다. 이제 시간이 지나 한 밤이 되었습니다. 그 맞은 상처로 인한 아픔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억울한 생각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시간에 캄캄한 밤에 실라와 함께 찬송을 불렀습니다.


또, 18장에 보면 많은 유대인들이 바울을 훼방하고 대적 할 때도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힘있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유라굴로 풍랑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풍랑으로 인하여 죽을 상이 되었을 때도 사도 바울은 침착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리어 기도를 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절망가운데 있을 때 바울은 그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때에도 잊지 않고 전했던 것은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실 것입니다”라고 하나님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아무리 힘들고 배고프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즐거워했고, 아울러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는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 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둘째, 바울은 사람들에게 신으로 추앙 받을 때도 겸손했습니다.


3절 이하에 바울이 나무를 불에 넣을 때 사나운 독사가 뛰쳐나와 사도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그러나 바울은 손을 물고 있는 독사를 불에 떨어 버렸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았던 토인들은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하고 매 순간을 긴장 속에 살피고 있었습니다. 즉 독사가 물었던 자리가 갑자기 부어 오르든지 아니면 갑자기 엎드러져 죽든지 무슨 큰 사건이 발생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바울의 신변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으나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졸지에 바울은 뱀 사건으로 이곳 토인들에게 신으로 높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뱀은 토인들이 알고 있었던 것처럼 아주 사나운 독을 가진 뱀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바울이 아무런 해를 당하지 않았을까요?  바울에게 무슨 신통한 비방이 있었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밀레도에 바울을 통하여 뭔가를 하실 일이 있었기에 바울에게 기적적인 은혜를 베푸신 것뿐입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전도자들의 가는 길에 능력을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기적으로, 때로는 물질로 다양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떤 사람은 자기가 뭐 신이나 된 것처럼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더욱 조심을 해야하고 더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남들이 받지 못하는 그 어떤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될 때 상당한 조심이 필요합니다.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어떤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어떤 복을 받아도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밀레도에서 초자연적인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있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최선을 다하여 힘써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언제고 돕고 계심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언제나 능력으로 바울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위하여 힘쓰는 종들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살아 계심의 역사로 함께 하심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멜리데 섬에 처음 당도했을 때 따뜻하게 불을 피워주면서 영접을 했던 이들이었는데 이제 또 자기 집에까지 모시고 가서 대접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였습니다. 얼마 전 불을 피울 때에도 손수 나무를 장만해 왔던 바울입니다. 지금도 자진해서 환자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잘 모르겠으나 설사가 심한 이 ‘이질병’은 한때 법정 전염병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스스로 찾아가고 환자를 찾아간 것은 한 마디로 예수님으로 말씀과 성령의 은혜로 완전한 무장이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는 늘 봉사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환자를 찾아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손을 얹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의 열과 이질병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멜레데의 제일 높은 보블리오가 사도 바울의 일행을 집으로 영접한 것은 단순한 인정에서였지 그 어떤 대가를 기대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대가로 부친의 병을 고침 받고자 했던 것은 더 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선사하는 결과의 축복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많은 기적의 역사가 바울과 함께 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언제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분임을 볼 수 있습니다.


폭풍 속에서도 하나님은 사도 바울과 함께 하시었습니다. 낯선 멜레데 섬의 토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바울과 함께 하시었습니다. 기적의 역사를 통하여 멜레데에 삼 개월을 머무는 동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었습니다. 그리고 섬을 떠날 때는 후히 대접을 받았습니다.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것을 배에 올렸더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에겐 자신의 사생활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생활이 없었다고 함은 자기 자신을 위해 어떤 일을 한 일이 없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2:20에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젠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의 삶이 전적으로 그리스도만의 삶이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전적으로 사도 바울을 책임져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가는 곳마다 함께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하는 일마다 함께 하시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과 매 순간 순간을 함께 호흡하시고 지켜 주셨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