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사역의 현장 갈릴리
이주형
우주촌교회 부목, 이스라엘 생활 13년(JUC 졸업 석사.
히브리대학교 수학)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의 중심에 갈릴리가 있다. 나사렛에서 자라나신 예수님은 찌포리 문화권에서 생활하였으며, 세례요한의 투옥 사건 이후에 고향을 떠나 갈릴리 호숫가 가버나움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셨다. 예루살렘에 소재한 탄투르 신학연구소에서 신약학을 강의하는 플래밍 교수에 따르면 친족관계였던 세례요한의 투옥 사건은 예수님의 신변에도 위험을 느끼게 했던 계기가 되는 사건이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역의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보는 것이다.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마 4:12-13).
세례요한의 투옥 이후에 가버나움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 중심지로 선택되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첫 제자들을 부르셨으며 수많은 이적과 표적을 보이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셨으며 이러한 소문은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뿐 아니라 온 수리아까지 펴져 나갔다(마 4:23-25). 예수님에 대한 소문의 땅 갈릴리 현장은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1-2).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대표적인 가르침이다. 이것이 한번에 하신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의 어록들이 집대성된 것인지 단정짓기가 어렵지만, 갈릴리 지역에서의 예수님의 가르침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보여진다.
예수께서 산상수훈을 교훈하신 곳을 팔복산이라고 부른다. 주후 4세기 이후로부터, 오병이어 사건을 기념하는 교회의 맞은편 산언덕에 있는 작은 동굴 주변 지역이 아마도 산상수훈을 가르쳤던 팔복산이었을 것이라는 전승이 전래되어 왔다. 1933년에 프란체스코회 수도회에서 마하라트 아유브(욥의 동굴)라고 불리우는 이 동굴을 발굴하였다. 발굴 당시 4-6세기경에 이르는(비잔틴시대) 모자이크가 발견되었다. 비잔틴 시대의 순례자들은 이 동굴을 에레모스 동굴(Eremos Cave)이라고 불렀다. 1936년에 타브가와 에레모스 동굴이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 이탈리아 수녀회에 의해서 팔복교회가 건축되었다. 교회는 팔각형으로 건설되었다. 팔복의 가르침을 상징한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내려다보는 갈릴리 호수의 전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현장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전망이 좋다.
1967년 6일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영토였던 골란고원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1969년 골란고원과 맞닿아 있는 갈릴리 호수의 동쪽에 대한 새로운 도로공사가 진행되었다. 불도저가 땅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고대 유물들이 발견되었고 도로 건설계획을 수정하며 유적지에 대한 발굴이 진행되었다. 발굴결과 이스라엘 땅에 존재하였던 수도원들 가운데서는 규모가 가장 큰 수도원이 발견되었다. 수도원과 그곳에 있는 교회건물은 5세기 중엽 무렵에 건설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군대귀신 들린 사람을 치유하신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수도원이었음이 확인되었다. 수도원 서쪽 벽에 있었던 기념비적인 출입문 쪽으로 돌로 포장한 도로가 만들어졌고 이 도로는 크루시(Kursi) 마을과 호숫가에 있던 항구로 연결되어 있다. 성벽으로 쌓여진 건축물 한가운데에 커다란 교회가 세워져 있었고 수많은 모자이크들이 원형 그대로 발견되었다. 교회 주변에는 올리브기름을 짜던 틀과 물 저장소 등 생활공간들도 볼 수 있다.
1980년에는 골란고원 언덕 위에 있는 바위산을 조사하였는데 이곳에서도 작은 동굴과 연결된 작지만 대단한 예배실을 발견하였다. 이 동굴은 거라사 지방에서 쫓겨난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을 연상시켜준다. 거라사라는 옛 이름이 아마도 현재의 크루시라는 명칭 속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여지며 호수 주변 동굴들에서 살았던 귀신들린 사람(눅 8:26-33)이 생활했던 무덤지역을 연상케 해준다. 동굴에 장식되어 있는 것들을 근거로 교회 전승은 이 지경을 예수께서 군대귀신 들린 사람과 만났던 곳이었다고 추정한다. 오늘날 이 지역은 이스라엘 국립공원으로 관리되고 있다.
고라신은 벳세다와 가버나움과 함께 예수님의 저주를 받은 마을 중 하나였다(눅 10:13). 지금까지 발견된 마을 가운데서 고라신은 가장 잘 보존된 대표적인 비잔틴 시대 마을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오늘날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갈릴리 지역에 있었던 유대인 마을의 대표적 건물은 회당이다. 현재 고라신에서 발견된 회당은 4세기경의 회당으로 가장 아름다운 대표적 건축물이다. 현무암(basalt)으로 지어진 구조물 곳곳에 정교한 문양들이 다양하게 조각되어 있다. 회당의 동쪽 부분에는 주거지역이 발굴되어 일부가 복원되어 있다. 복원된 건물을 통해서 미쉬나와 탈무드에 기록된 유대인들의 생활상을 재현해 볼 수도 있고, 신약성서에 묘사된 갈릴리 유대인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연상할 수 있는 구조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예를 들면 가버나움에서 중풍병자를 고쳐 주신 일 같은 것이다.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 17:1-2). 예수께서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게 된(눅 8:29) 이 사건을 예수님의 변모사건이라 한다. 이 일은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 되어진 일이다. 이 산이 헬몬산이라는 견해도 있고 다볼산이라는 견해도 있다.
다볼산은 스불론, 잇사갈, 아셋 지파의 경계가 맞닿는 곳이다(수 19장). 또한 드보라 여선지자가 바락과 함께 가나안과 싸워 승리한 곳(삿 4:6)이기도 하다. 4세기 이후로부터 바실리카들과 교회들이 다볼산 정상에 세워졌다. 이 교회들은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을 기념하는 것들이다. 오늘날에는 두 개의 교회가 다볼산 정상에 있다. 하나는 프란체스코회 수도회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정교회 교회이다. 두 교회가 자리한 주변 지역에 고대의 교회들, 요새들, 성벽들의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다볼산은 이스르엘 골짜기와 갈릴리 지역에 대한 전망이 아주 좋다. 이곳에 올라가면 다 보이기 때문에 ‘다 볼 산’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하며 능청을 떨어보기도 하는 곳이다.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경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에게 물으셨다(마 16장).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스라엘에 가이사의 칭호를 붙여서 명명된 도시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지중해 해변에 있었던 가이사랴(행 10:1)이고 다른 하나는 가이사랴 빌립보(마 16:13)이다. 가이사랴는 유대, 사마리아 지역의 행정수도였으며, 가이사랴 빌립보는 헤롯 빌립의 영토였던 드라고닛 지방의 행정수도였다. 갈릴리 지방의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는 티베리야로 행정수도를 옮겼다.
헤롯 안티파스의 관할구에서 헤롯 빌립의 관할구였던 가이사랴 빌립보 지경으로의 여행은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가장 수수께끼로 남는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세례요한의 투옥으로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으로 옮기셨던 예수께서, 세례요한의 참수형으로 이제는 아주 안티파스의 영역에서 벗어나 빌립의 영역으로 안전지대를 찾아 이동한 것은 아닐까? 추앙받던 선지자이며 친족이었던 세례요한의 투옥과 참수 사이의 시기가 얼마였는지 알기 어렵지만, 분명 이 두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갈릴리 사역과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것이다. 혹자는 교회의 리더십이 베드로에게 넘겨지는 전환점이라고 이해하기도 하지만 예수께서는 가이사랴 빌립보 지경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향한 ‘어린 양’의 행보를 딛고 계셨음은 분명해 보인다.
갈릴리 지역은 예수님의 호흡소리와 숨결이 느껴지는 땅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문이 동서남북으로 전해졌던 곳이며 메시야 운동의 본산지다. 정치적 격변기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으로 백성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땅, 그곳으로부터 구원의 생수가 온 천하에 전파되었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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