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등장하는 참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통하여서 참과 거짓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그리고 형식에 매인 이스라엘의 절기가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하게 됨을 아모스의 환상을 통해서 보여 주고 있다. 형식에 매이지 않고 진정한 '야곱의 집'에 속한 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그 야곱의 집이 '범죄한 나라'와 어떻게 다른지를 먼저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 참선지자(암7장)
아모스와 아마샤 사이에 참과 거짓에 관하여 논쟁이 벌어졌다. 환상을 보고 그것에 관하여 예언한 아모스와, 이에 대해 자신의 위치를 보전하여 아모스를 제거하려는 직업적인 제사장 아마샤는 둘다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웠다. 아마샤는 왕에게 아모스의 거짓됨을 주장했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참선지자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참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잘못된 것을 지적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에게 환상을 보여 주었는데, 그 내용은 이스라엘이 받을 재앙이었다. 이것을 알게 된 아모스는 모세처럼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한다(민12:13). 참선지자는 이런 모습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향해서는 과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한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는 자기의 몸을 살리고자 백성이 듣기 싫어하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마7:15; 마24:11). 아마샤는 왕에게 아모스가 말한 것 중 저주 내용만을 보고한다(삼상22:9). 그러나 참선지자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회개할 것을 선포하였다.
2) 하나님 편에 섬
오늘날 많은 목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수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중에는 삯꾼 목자와 같은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도 있다(벧후2:1). 단지 이 땅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도구로 사용한다(요일4:1). 그러나 참된 목자는 듣기 싫어하는 말도 그들에게 들려주어 회개할 것은 회개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이다. 우리는 사람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할 것이다.
2. 여름실과(암8장)
여름 실과는 그 열매가 무르익었음을 말한다.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무르익었음을 아모스의 환상을 통해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는 노래가 애곡으로 바뀌게 되었고, 시체가 너무 많아 관습대로 매장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면 이렇게 심판이 무르익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어떤 죄악이 이토록 강력한 심판을 선포하게 만들었는가?
1) 형식에 매인 하나님의 절기
먼저 그들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돌아보지 않았다(암8:4).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부 상조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신16:14) 약육강식의 무서운 이기적인 사회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기의 의미를 버렸다. 그들은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안식일과 월삭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의 절기보다는 상업 활동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이었다. 물질적 이익을 하나님의 명령보다 더 소중히 여긴 이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무르익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상거래도 정직히 행하는 것이 아니라 저울을 속여서 이익을 많이 남기려는 악덕업자들이 성행했다(미6:11).
2) 주일의 모습
오늘날 주일이면 많은 교인들이 아침 일찍 1부 예배를 드리고 야외로 나들이를 가거나, 심지어 장사를 핑계로 주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주일은 말 그대로 '주님의 날'인데, 그 날을 나의 날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3. 망하는 자와 흥하는 자(암9장)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통해서 마지막 환상을 보여 주셨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 죽게 되는 모습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칼을 피하여 세상 어느 곳에 갈지라도 하나님은 그곳에서 그들을 멸하리라고 강경하게 말씀하신다. 그러면 이런 멸망을 얻을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그리고 온전히 멸함을 받지 이니 할 자가 있다고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되는데, 무너진 다윗 성을 일으켜 그들을 보호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면 이처럼 흉하게 될 자들은 누구인가?
1) 범죄한 나라와 야곱의 집
암9:8에 범죄한 나라와 야곱의 집이 동시에 나온다. 이들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범죄한 나라는 망하는 자의 위치에 서있고, 야곱의 집은 흥하는 자의 위치에 선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이 하나님의 말씀이 내려진 것이다. 결국 이 범죄한 나라는 이스라엘인 것이다. 그러면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은 다르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축복하실 때 진정한 축복의 대상은 혈육이 아니라 믿음을 가진 자였음을 알 수 있다.
2) 심판을 면하는 길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혈육이기에 구원얻은 자들이라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착각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할 수 있음을 세례 요한을 통해 선포하셨다(마3:9). 오늘날에도 부모가 목회자요, 아내가 철저한 신앙인이라는 등의 이유를 내세우면서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참성도로 여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참선지자는 하나님 편에 서서 백성의 잘못된 것을 지적한다. 그러나 요즘 많은 목회자들은 진리를 외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그런 말을 싫어한다고 하여 증거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편에 선 것이 아니고 사람의 편에 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 속에서 예배는 형식에 치우치게 된다. 오늘날 성도들은 주일 예배 한 번만 참석하면 신앙인의 도리를 다하는 양 생각하기 일쑤이다. 이것은 범죄한 나라에 속한 것이지 야곱의 집에 속한 것이 될 수 없다. 망하는 자의 위치가 아니라 흥하는 자의 위치에 서기 위해서, 말씀을 선포하는 자는 필요한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편에서 선포해야 할 것이요, 말씀을 받는 백성 도한 겸허히 질책을 받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