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구 3 하나님과의 언약(신27-34장) |
|
1. 율법에 대한 복음서의 가르침 예수의 독특한 어법에서 나타나는 예수의 메시아적 자기 이해에서 복음과 율법과의 관계를 추적해 볼 수 있다. 예수는 자신이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하여 직접적으로 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직접적인 예수의 가르침에 기초하기보다는 '부동성(不同性)의 원리' (principle of dissimilarity)라는 방법을 사용하여 복음과 율법과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방법은 진짜 예수의 가르침이라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유대교와도 다르고, 초대교회의 케리그마와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위의 방법론은 대단히 비현실적인 방법론이다. 왜냐하면 이는 시공(時空)을 벗어난, 비역사적이고 추상적인 예수를 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역사상에 있어서 유사성(類似性, 연속성)과 개별성(個別性, 불연속성)을 지니며 존재하게 된다. 이 점은 예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론을 주장하는 것은 데카르트(Descartes)적인 과학적 방법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사실에서부터 시작하려는 것이 부동성의 원리이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자료를 통하여 역사적 예수의 메시아적 자기 이해를 찾을 수 있다면, 이는 확실하다. 또한 이러한 태도는 신학의 선교적 사명에 있어서도 대단히 유용한 것이다. 우리는 역사 비평학의 그릇된 태도를 외부에서 비판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직접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를 밝혀 주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방법론을 적용하게 될 때 대단히 그 적용범위가 좁아지게 된다. 비록 요한복음의 핵심이 역사적 예수의 메시야적 선포에 있기는 하지만 주로 위의 방법론은 공판복음에 적용된다. 여기서는 '아멘'이라는 용어의 사용이 지니는 의미만을 한정하여 살펴볼 것이다. 유대인은 아멘이라는 단어를 응답의 경우(responsory case)에 사용하였으며, 현재의 기독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이 스스로 중요한 말씀을 선포하실 때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는 유대교나 초대교회에서 그 사용 예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키텔은 그의 신학사전에서 이한 단어만으로도 역사적 예수의 메세야적 자기 이해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복음과 율법과의 관계에서 볼 때, 이 말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랍비들은 자신의 말을 제자나 사람들에게 전할 때 3,4대까지 그 권위를 소급해 올라간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모세와 모세가 전수한 율법의 권위에 귀결되어 랍비들의 가르침이 전승된다는 의미이다. 또한 유대의 선지자들은 "야훼께서 말씀하신다."는 독특한 표현을 사용하기는 하였으나 예수와 같은 독특한 어법은 구사하지 않았다. 즉 예수는 아멘이라는 독특한 표현을 사용함으로 자신의 엄청난 권위를 강조하였다. 이는 모세나 율법의 권위를 뛰어넘는 무엇이었다. 예수는 스스로 자신을 율법에 메이지 않는 존재로 인식한 것이다.
2. 율법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 바울은 복음과 율법과의 관계를 구속사적으로 이해하였다. 바울은 율법은 복음의 예비 단계였고, 구약적 복음의 파괴 세력으로 작용하던 율법이 구원사적이고 종말론적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에 의하여 완전히 제거되었음을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통하여 주장하였다. 죽은 율법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구속력을 지니지 못한다. 이것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묘사하고 있다. 어떤 여자가 율법이라는 남자와 결혼하였는데, 그 남자가 죽임을 당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자는 더 이상 그 남자에게로부터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아니하므로, 다른 남자(복음)에게 시집갈 수 있다는 것이 논지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율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율법은 죽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진 자로서 이미 죽은 율법과 더 이상 아무런 관련이 없다.
3. 율법에 대한 히브리서의 가르침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의 아론의 제사직에 근거하여서 복음과 율법과의 관계를 논한다. 히브리서는 사죄(赦罪)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었던 아론의 제사장직이 실제로 그 기능을 발휘하여 양심을 깨끗하게 하지 못하였다는 점을 논증하고 있다. 율법이 규정하는 짐승의 피 제사는 두 가지 면에서 근본적으로 속죄의 기능을 완전하게 수행하지 못한다. 첫째로 피 제사의 반복으로 인해서이다. 황소와 염소의 피제사는 1년에 1회씩, 또는 수시로 드려졌다. 즉 그것은 사죄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다는 의미인 것이다. 둘째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의 연약함 때문이다. 제사장들은 먼저 자신을 위하여 제사하고 그 다음에 백성을 위하여 제사하는 죄 있는 자들이었다. 죄 있는 자들에 의하여 수행된 피제사가 완전한 속죄의 기능을 수행하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