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성극(대본)

도마의 증언

은바리라이프 2008. 3. 3. 12:16
도마의 증언


등장인물들 :

도마
도마의 아내
예수
유다
베드로
루시퍼(악마)
헤롯
빌라도
가야바
가야바의 동료 제사장들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나사로의 여동생)
막달라 마리아



이 희곡은 요한복음을 텍스트로 삼아 그 내용과 사건을 중심으로 썼다. 이 작품의 어떤 장면들은 픽션으로 재구성 되었는데, 제 6장의 빌라도와 헤롯과 가야바 3인의 식사 장면이나, 제 7장 도마의 집에 초대받은 사람들 가운데 빌라도가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장면들이 물리적 공간으로서는 사실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심리적 공간으로서의 연극 무대에서는 사용 가능한 일이며, 극적인 강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하기 바란다. 이 희곡을 공연하는 데 있어서 무대 장치나 의상은 특별히 만들 필요는 없다. 예를 들면 빌라도의 복장이 굳이 로마인의 옷이어야 할 필요가 없이 권위를 상징하는 간단한 장식을 붙이는 정도면 된다. 서막의 슬라이드들은 관객들의 뇌리속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현대의 사건들과 가급적 우리의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상황들로 구성되는 것이 효과적이다.

서막


(십자가 위에 한 사람이 달려 있는 모습이 어둠 가운데에서 희미하게 보인다. 루시퍼의 음성이 들려온다)


루시퍼 : 아, 쓸데없는 짓일세. 인간의 목숨이 천하보다도 귀한 것이라 말한 게 누구였지? 바로 자네 아닌가? 그런데 지금 자넨 그 귀한 목숨을 버리려 하고 있군. 사람이 온 우주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청년 : (십자가 위의 인물, 고뇌한다)

루시퍼 :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자, 내려오시게 어서. 그따위 십자가에설랑 내려서란 말일세.

(청년, 천천히 십자가에서 내려선다. 황야의 바람소리 내려선 청년, 여기저기 지친 듯이 헤맨다)

청년 : 무엇이 나를 이 세상에 보냈을까?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세상은 왜 내 앞에 이렇게 끝없이 펼쳐져 있는가? 아, 이 끝없는 질문. 갈고리 같다. 끈적이는 역청 같다. 문둥이의 이지러진 손같다.

(이제까지 바닥에 꼼짝 않고 엎드려 있던 사람들이 서서히 그를 향해 손을 뻗으며 구원을 청한다. 벽에는 각종 슬라이드가 비춰진다. 감독관의 매에 맞아 피를 흘리는 노예, 황금으로 장식한 거대한 바퀴에 허리가 깔린 어린 병사, 그의 툭 불거진 두 눈알등....)

어린병사 : 난 전쟁이 싫어! 정말 싫어!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마을에 아름다운 처녀가 있어요. 난 그녀와 약혼을 할 작정이었어요. 그런데.. 그런데.. 허리가 부러졌어요. 난 이제 그만입니다. 고향에 돌아가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으리으리한 어느 저택 대문에 기대선 거지. 그의 다리에 돋아난 종기, 으르렁 거리는 개의 이빨, 배가 고파 우는 아이의 커다란 입, 아이를 안은 여인의 비틀려 말라빠진 젖꼭지, 짙은 화장을 한 매음녀, 털복숭이 남자의 털난 가슴, 슈르레알리즘의 여러 그림들)

매음녀 : 여보세요, 당신은 날 위해 무엇을 해주실 수 있나요? 나를 사랑할 수 있나요?

거지 : 빵 가진게 있거든 한쪽만 보태줍쇼.

여인 : 어린애가 굶어 죽어갑니다.

(손, 손, 손의 슬라이드, 숱한 돌무덤. 산같이 쌓인 빵이 덧비친다)

루시퍼 : 주저할 것 없다. 지금 당장 빵을 만들게. (돌을 지어 청년에게 내민다) 이 돌로써 빵을 만들어라! 그래서 저 뚫어진 인간들의 입을 메꾸어 주라! 그러면 다른 모든 구멍들도 메꾸어진다. 전쟁도, 매음녀도, 거지도, 모두 사라진다. 빵 있는 곳에 희망이, 사랑이, 자유가 있다. 주저하지 말라니까! 자넬 부르는 이 가련한 사람들을 외면하겠는가?

청년 : 외면할 용기는 없네, 이들을 그러나 이들에게 거짓 빵을 줄 용기도 나에겐 없네.

루시퍼 : 무슨 소릴! 돌로 만들었어도 빵은 빵이야. 왜 그것이 거짓 빵인가?

청년 : 그것으론 마음을 만들 수 없어. 돌을 먹는 마음, 돌처럼 굳어지는 마음으로 사람은 살 수가 없어.

루시퍼 : 그렇다면 무엇인가? 자네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건 도대체 무엇인가?

청년 : 그것은.. 사랑이네.

루시퍼 : (청년을 데리고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 계단 위로 올라서서) 보게, 저 아래를. 사람들이 보이지? 모두들 기다리고 있네.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겠나?

유다 : (관객석에서 벌떡 일어나) 보라 메시아가 오셨다.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아가 오셨다!

군중들 : 메시아! 메시아!

루시퍼 : 맞았어, 저 가롯 유다가 말을 잘하고 있군. 그들은 억울하게 상처입은 백성들이라네. 터무니 없이 억눌리고, 자유를 빼앗기고, 소중한 인권마저 유린당하였네. 자, 이젠 무엇을 더 주저하려는가? 자네가 저들을 사랑한다면 뛰어 내리게. 당장 뛰어 내려!

유다 : (흥분된 어조로) 네, 우린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당신에게 용기가 있다면, 그 위에서 아래로 띄어 내리십시오. 그럼 당신은 우리들의 정치적 지도자,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는 겁니다. (관객들에게 선동하듯이 손을 휘두르며) 뭣들해, 이 멍청한 인간들아, 가슴을 펴라! 손을 쳐들라! 메시아를 맞이하라!

군중들 : 메시아! 메시아!

유다 : 이스라엘아, 손을 쳐들라! 가슴을 펴라! 우리들의 왕이 내려 오신다.

루시퍼 : 간단히, 간단히 해결될 길은 아직 열려 있네. 뛰어 내리게 어서 십자가에서 뛰어내려!

(청년 묵묵히 십자가에 돌아가 고통스럽게 팔을 벌린다. 루시퍼의 악착스런 유혹과 질문이 끝나고, 열광하던 군중들도 침묵속에 물러난다)

청년 : (그의 고뇌는 절정에 이른다) 아버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제 당신이 나를 버릴 시간입니다. 어서 떠나시오. (사이) 아, 목이 마르다! (사이) 차라리 죽겠습니다. 죽여주시오. 무엇 때문에 견디라는 겁니까? (사이) 다 이루어 졌다. 나는 견뎌 냈어. (사이) 부활은 아버지의 뜻에 맡깁니다. (커다랗게 부르짖으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제 1장 도마

(무대 오른쪽에 열 다섯 개의 의자들을 두 줄로 놓은 코러스 박스가 형성된다. 장엄한 음악이 끝나면 코러스 박스에서 도마역을 맡은 남자가 일어선다. 나머지 인물들은 자기 차례가 올때까지 의자 위에 앉아 있다. 도마, 관객석 앞으로 걸어 나온다)

도마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밤은 유달리 더 어두운 것 같군요. 방금 보셨듯이, 오늘 밤 메시아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먼저, 제가 누구인지 그것부터 소개드려야 하겠군요. (가지고 나온 성경책을 펼쳐든다) 저는 도마입니다. 도마. 성경에는 저에 대한 기록이 그다지 많지가 않습니다. (코러스 박스에 있는 등장인물들을 가리킨다) 지금 저기 앉아있는 베드로라든가 요한, 또 가롯유다에 대해선 누구나 다 알 만큼 많이 적혀 있습니다만, (자신을 가리킨다) 저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 한 사람이었고, 군복무의 경험이 있으며, 뭐 그정도거든요. (관객석 앞 줄에 앉아계신 장로님 한 분에게) 그렇지요 김장로님? 말하자면 저는 그저 그렇고 그런-- (웃으며) 보통 평범한 남잡니다. 장로님이나, 또 저기 계신 평신도님이나 전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이거지요. (펼친 성경책을 넘기다가) 그런데 저 자신을 크로즈업 시킨 부분이 있습니다. 좀 부끄러운 내용이긴 합니다만-- (관객석을 둘러본다. 적당한 한 사람에게) 선생님, 잠깐 일어나 주실까요?

한 인물 : (일어서며) 나 말입니까?

도마 : 성경책 가지고 계신가요?

한 인물 : 네, 마침 갖고 있습니다만..

도마 : 그럼 저 자신에 대한 기록 요한복음 20장 24절부터 29절까지를 낭독해 주실까요?

한 인물 : (지적된 곳을 커다란 목소리로 읽는다) 열 두 제자중에 하나로서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보았소"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서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보고 또 내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했습니다.

도마 : 그럼요. 어떻게 믿을수가 있겠습니까? 그 분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한 인물 : 여드레 후에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 도마도 같이 있었습니다. 문이 잡겨 있었는데 예수께서 오셔서 가운데 서시고 "너희에게 평안이 있으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도마를 향하여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펴서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믿는 사람이 되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고 말하니,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있다"

(전자 올갠의 낮고 명상적인 음악이 잠시 계속된다)

도마 : 네 고맙습니다. 오늘밤, 저는 여러분을 저의 추억으로 모셔갑니다. 추억, 그건 으레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고, 그 어떤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추억 속에서도 깊은 절망과 솟구치는 희망이 자리잡고 있는 겁니다. 어느 날, 우리들은 베다니 땅, 나사로의 집을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도마, 제자리걸음을 시작한다. 코러스 박스에 앉아 있던 등장 인물들, 여자들과 죽은 나사로 역을 맡을 남자만을 제외하고 모두 무대 위에 나와서 코러스 박스 쪽을 향해 제자리 걸음을 시작한다. 긴 여행을 나타내는 것이다. 도마는 그들의 뒤, 조금 떨어져서 걷는다. 코러스 박스에 남은 나사로, 의자 위에 죽은 듯 누워있고, 그 주위에 마리아, 마르다, 그리고 동네 여인들이 슬픔에 잠겨있다)

도마 : 그때, 전 좀 뒤쳐져서 걷고 있었습니다. 몸도 지쳤고, 그리고 마음속에 뭔가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앞서 가던 일행 속에서 예수가 뒷걸음으로 도마에게 다가와 말없이 그의 곁에서 발걸음을 맞춘다. 한동안 그들은 그렇게 걷는다. 무대 뒤 벽에는 하늘과 구름, 나지막한 언덕들로 이루어진 풍경이 슬라이드로 비춰진다)

예수 : 도마?

도마 : 네.

예수 :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지?

도마 :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 : 난 알아, 자네 마음을

도마 : (침묵)

(두 사람은 계속 제자리 걸음을 걷는다)

예수 : 괜찮아, 도마. 자네 마음속에 일어나는 온갖 생각, 사람이라면 응당 할 수 있는 거지.

도마 : 왜 나를 제자로 택하셨습니까? 난 베드로나 요한에 비해서 너무 마음이 약한 것 같습니다.

예수 : 나에겐 베드로도 유다도 다 필요해, 그리고 또 자네도.

도마 : 무슨 말씀인지 자세히 좀--

예수 : 지금은 그때가 아니야, 그러나 그때가 되면-- 유다는 나를 팔아 넘길 거구, 베드로는 날 모른다 부인할 거네. 그래, 도마, 인간이란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지. 내가 자넬 택한 건, 자네 역시 인간의 한 모습을 가졌기 때문이네.

도마 : 아, 저는 결코 모른다거나 배반하진 않겠습니다.

예수 : 그럴 거야, 도마, 그러나 결코 날 안다 나서지도 않을 걸세, 베드로는 안다고 할 용기가 차마 없겠지만, 그래도 그 질문 앞에 곧바로 마주설 거야. 그런데 도마, 그 질문을 적당히 피해 버리는 인간은 많고도 많네. 평생 동안 그렇게 미뤄 나가는 사람들 앞에 나는 내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 줘야 한다네.

도마 : 상처라니요?

예수 : 그래서 나의 부활은 사람에겐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되는거야. 기억해 두게, 도마

(예수, 걸음을 빨리하여 도마 곁을 떠나 앞서가는 일행들에게 합류한다. 도마 방금 끝난 예수와의 대화를 생각하며 묵묵히 뒤쳐져서 걷는다)

제 2장 나사로야, 일어나라

(코러스 박스에 있던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 예수의 일행을 발견하고 맞이하러 나온다)

마르다 : 왜 이제서야 오십니까? 저희 오빠 나사로가 죽은 지 벌써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마리아 : (엎드려 비통하게 흐느끼며) 주님,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저희 오빠가 죽진 않았을 거예요.

(모든 사람들이 자매의 우는 애처로움에 따라 눈물을 흘린다)

예수 : 마리아야, 난 너의 오빠를 사랑했었다.

마리아 : 오빠도 주님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 : 지금 그를 어디에 두었지?

마리아 : (죽어 있는 나사로에게 인도하며) 죽은 지 나흘째, 벌써 냄새가 납니다.

예수 : 마르다, 믿어라. 그럼 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하늘을 우러러 기도를 하고, 작은 소리로) 나사로야, 일어나라!

(나사로, 일어난다. 서로 헤어졌던 형제를 다시 만난 듯이 예수와 그는 뜨겁게 포옹한다. 모든 사람들이 이번에는 기뻐서 눈물을 흘린다)

마르다 : 저희 집에 머물러 주세요.

마리아 : 소원이에요. 그저 며칠만이라도 저희 오빠와 함께 기뻐해 주세요.

마르다 : 마리아, 우린 어서 음식을 만들자!

마리아 : 네, 언니.

(자매들, 코러스 박스 뒤로 돌아간다)

나사로 : 아, 오랜만이군요, 여러분. 베드로, 요한, 유다, 그리고 도마(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막달라 마리아를 발견하고) 막달라 마리아! 모두 이렇게 와 주셨군요. 이 기쁨, 무어라 해야 할지! 오, 아무튼 저희 집에 머물러 기쁨을 같이하여 주십시오. 마르다, 우선 여기 뭐 마실 것 좀 줘!

마르다 : (코러스 박스 뒤에서) 조금 기다리세요, 오빠!

나사로 : 아예 굉장한 잔치를 차릴 모양이구나?

마르다, 마리아 : 네, 그럼요!

나사로 : 자, 앉으십시오, 어서요.

(모든 사람들이 코러스 박스의 의자에 앉는다. 막달라 마리아 향유병을 들고 다가온다)

유다 : 목이 마른데, 그저 포도주인가?

막달라 마리아 :(공손히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그의 발을 닦는다)

유다 : 뭐야? 값비싼 향유 아닌가? (마리아 꾸짖으며) 왜 그 향유를 팔지 않구?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면 더 좋지 않겠어?

예수 : 그녀가 하는 대로 놔두게. 나의 죽는 날을 위하여 이렇게 하는거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자네들과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자네들과 함께 있는 건 아니야.

베드로 : 죽는 날이라니오? 아, 방금 나사로를 살려 내질 않으셨습니까?

제자들 : 그럼요, 절대로 돌아가실 리 없습니다.

유다 : 그것 참, 향유만 아깝게 됐어.

예수 : (잠시 침묵, 향유를 발라 자기발을 씻어 주는 막달라 마리아를 바라보며) 막달라 마리아야! 좋은 향기다. 고맙구나, 향기가 온 집안에 그윽하고 거친 땅을 걸어온 내가 너의 위안을 받는다. (제자들에게) 난, 나의 생명을 버려야 해. 그건 내가 다시 그 생명을 얻으려는 거야. 아무도 내게서 내 목숨을 빼앗지는 못해. 내가 스스로 원해서, 내 생명을 얻고자 버리는 거야. 아 그렇지만 그건-- 그때가 되면 -- 마리아야, 좋은 향기다. 네가 나를 위로하는 구나.

유다 : 도마, 저것 봐 가난한 사람들이 친구라는 분이 저 호사스런 향유를 아주 즐기고 있어.

도마 : 글세.

유다 : 글쎄가 다 뭔가? 요즈음 저분은 감상적이 되셨어. 그게 탈이야. (불만스럽게) 마음이 약해지셨어.

제 3장 예루살렘으로

(도마, 관객석 앞으로 온다)

도마 : 유다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분은 요즘 감상적이 되셨어, 마음이 약해지셨어. 글쎄요, 아무튼 나사로의 집에서 그런일이 있는 후--

군중들 : 호산나! 호산나!

도마 : 호산나? (추억에 잠기며) 아, 저 소리를 들으니까. 제 추억 가운데 예루살렘이 떠오르는군요. 예루살렘, 전 평생 그 그리운 곳을 잊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잠깐, 여러분을 예루살렘으로 모셔가기 전에 저 부지런한 자매들을 잠시 만나 봐야겠군요. (코러스 박스 쪽을 향해) 마르다! 마리아!

마르다, 마리아 : (바쁜 일에 쫓기듯이 종종 걸음으로 나오며) 부르셨어요?

도마 : 바쁠텐데, 저어--

마르다 : 아, 알겠어요. 오늘은 몇사람이나 다녀갔는지 물으시려는 거죠?

도마 : 그래요, 마르다.

마르다 : 유다님께 여쭤보세요. 그분은 문 옆에 지켜서서 사람들 수효만 계산하구 있답니다.

도마 : 정말 굉장해. 모두들 오빠를 보러 몰려오는 거겠지요.

마르다 : 그렇지만 오빠를 보구나서는 모두들 주님을 믿어요.

도마 :(웃으며) 마리아, 당신네 오빤 일약 유명해졌소.

마리아 : 전 왠지 좀 두려워요.

마르다 : 얘, 넌 어서 차를 끓여. 난 모자라는 잔을 더 빌려와야겠다.

(마르다와 마리아, 서둘러서 돌아간다. 유다, 득의만면한 얼굴로 다가온다)

유다 : 만사는 잘 되어 가고 있네.

도마 : 사람들 말인가?

유다 : 바로 그거야, 도마. 그리고, 오늘 드디어 우리들은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었네.

도마 : 예루살렘으로?

유다 : 그렇다니까! 우린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거야. 이것 봐, 도마. 내가 이때를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아는가?

도마 : 예루살렘이야 어디 한두 번 갔던 곳인가?

유다 : 하지만 이번 경우엔 달라. 기회를, 기회를 잡은 거네. 자 가세!

도마 : 이리하여 우리들은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군중들 : 호산나! 호산나!

유다 :(열광적으로) 호산나!

(무대, 예수와 제자들의 예루살렘 입성이 무용과 마임으로 펼쳐진다. 호산나를 외치는 군중들의 환성이 고조된다)

제 4장 대제사장 가야바

(가야바와 그의 동료들이 등장한다)

가야바 : 그러니까, 민중들이 선동당했다고?

동료들 : 그렇습니다. 대제사장님.

가야바 : 무슨 증거라도 있는가?

동료 1 : 계획적 음모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런 사태가 벌어질리 없습니다.

동료 2 : 저도 동감입니다. 마침 저는 그때 예루살렘의 성문을 지나가던 중이었지요. 그런데 그때, 어떤 사내가 끄덕끄덕 나귀를 타구 오더군요.

가야바 : 나귀를 탄? 여보게, 그런 사람은 --

동료 2 : 물론 그런 사람이야 숱하게 많지요.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릅니다. 그 사내가 성문 안으로 들어오니까 모여 있던 민중들이 호산나를 외쳐대질 않겠습니까?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말입니다. 아주 열광하는 거예요. 그 꼴을 보구 저는 질겁을 했습니다.

동료 1 : 가야바 대제사장님, 지금 이 예루살렘은 발칵 뒤집혀 있는 겁니다. 메시아가 나타났다구요.

가야바 : 메시아?

동료들 : 그렇습니다. 대제사장님.

가야바 : 이스라엘은 바람이 너무 심한 곳이다. 민중들이 제각기 입을 벌리고 떠들기 시작하면, 그 뚫어진 구멍으로부터 거센 바람이 불어 나오지. 그리고 그 바람은 이 가지 많은 이스라엘을 쉴 사이 없이 괴롭힌다. 더구나 그런 터무니 없는 소문이란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걷잡지 못할 폭풍으로 변한다. 가지를 부러뜨리고, 뿌리를 뽑으며, 마침내는 그 근본적인 터전마저도 파헤쳐 버린다.

동료들 : 심각한 사태입니다.

가야바 : 음-

동료 1 : 민중이란 왜 이다지도 어리석을까요? 그저 나귀 탄 자에게 감히 호산나를 외쳐 주고 메시아라 믿는다니-

동료들 : 이건 분명히 선동 탓입니다. 가야바님.

가야바 : 어리석은 것들, 철없이 사고란 사고는 다 저질러 놓고서 그 뒷치닥거린 몽땅 우리에게 떠넘기는 그런 무책임한 짓만을 되풀이한다. 오 피곤해. 누구, 내 의자 좀-

(동료들, 코러스 박스에서 가야바의 의자를 가져다 놓는다)

가야바 : (앉으며, 미친 듯이) 아, 언제까지인가? 언제나 이 뒷치닥거리가 끝날 것인가? 이제껏 민중이 저질러 놓은 사고만 해도, 난 녹초가 되어 죽을 지경이네.

동료들 :(한숨을 쉬며 저희들 역시 마찬가집니다.

동료 1 : 로마의 반응이 어떨는지. 그게 걱정이군요.

가야바 : 로마?

동료 2 : 네, 사태가 이쯤되면, 로마가 우리에게 맡긴 자치권을 재고하게 될것입니다.

가야바 :(침묵,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다)

동료 1 : 그렇습니다. 민중이 우릴 버리고, 그 메시아란 터무니 없는자를 믿고 따른다면, 로마인들의 태도가 분명히 달라질 겁니다.

동료 1 : 그들 속셈이야 뻔한 것 아닙니까? 정복한 국가에서 누가 제일 인기가 있는 자냐? 그것만 따지거든요. 그런자와 손을 잡아야 민중을 다스리게 하고, 로마의 속국으로 붙잡아 둘 수 있으니까요.

동료 2 :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끝장입니다.

동료들 : 장례식 준비나 해둘까요, 대제사장님?

동료 2 : 우리 모두가 들어갈 만한 구덩이도 파야겠군.

동료 1 : 비석도 세워야겠죠.

동료들 : 이스라엘은 통곡합니다.

가야바 :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그만, 그만해! 한사람이 민중을 위해 죽어서 민중 전체가 망하지 않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다!

동료들 : 그렇습니다.

가야바 : 하나는 전체를 위해서 즉 개인은 민중을 위해 희생될 수 있으며, 희생 되어야 하며, 희생되지 않으면 안 된다.

동료들 : 옳은 말씀이십니다!

가야바 : 즉시 그를 체포하라! 우리가 전체를 택하고 하나를 버릴때에, 그 하나는 버려졌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죄가 된다.

(동료 3이 들어온다. 가야바의 귀에 무엇인가 은밀하게 소근거린다)

가야바 : 나를 만나겠다구!

동료 3 : 유다라고, 그를 따라다니던 제자지요.

가야바 : 운이 좋군. 적절한 때, 하수인이 제발로 걸어 들어왔군.

동료 3 : 불러 오죠, 유다! 가롯 유다!

유다 : (들어온다)

가야바 : 자넨가?

유다 : 네, 대제사장님.

가야바 : (의아롭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며) 왜? 어째서?

유다 : (내뱉듯이) 그가 민중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가야바 : (잠시 침묵) 알 수 없군. 오히려 그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데?

유다 : 난 3년 동안 우리 민중을 위하여 그를 따라 다녔습니다. 전체를 영도할 지도자가 될거라구요. 그런데 그의 목적이 그런 전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 난 심한 배신감을 아니 느낄 수 없었습니다.

가야바 : 그럼 그의 목적이 뭐였단 말인가?

유다 : 글쎄요. 아무튼 민중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민중이었다면, 예루살렘의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하자 했더니 왜 그가 거절하였겠습니까?

가야바 : 그게 사실인가?

유다 : 그렇습니다.

가야바 : (침묵, 그는 당혹한 충격을 받고 의자에 앉는다)

유다 : 그러므로 그가 이미 전체를 배반한 이상, 나도 그를 버리기로 한 거지요.

동료 3 : 얼마 받겠나, 유다?

유다 : (얼떨떨한 채) 한 인간의 값, 요즘 그게 얼마지요??

동료 1 : 노예 한 명의 값이 요새 은전 삼십 냥이다. 좋은가?

유다 : 네 좋습니다.

동료들 : (유다에게 돈을 내준다)

유다 : 그럼 갑시다. 내가 볼에 입맞추는 사람이 바로 그인 줄 아시오.

(동료들과 유다 나간다)

가야바 : (몸을 의자 깊숙이 기대며) 아, 피곤하군, 피곤해- 하나의 바람이 불고 가면, 또 하나의 바람이 불어온다. 이스라엘은 바람이 너무 심한 곳이야. 그러니 이런 풍토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차피 피곤한 노릇이지. (무엇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그런데, 이번에는 어떤 바람인가? 모순이다. 엄청난 모순이 불어닥친다. 민중이 목적이 아니라는 자를, 민중을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체포한다? 저 유다라는 자는 어떤가? 민중을 위해서 그를 배반했다 한다. 그렇다면 대제사장 가야바, 너는 무엇 때문에 그를 심판하려는가? 너도 민중 때문인가? (잠시 침묵) 천만에 가야바. 그러나 그걸 밝혀서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건가? 마음 쓸 것 없네, 어차피 그는 지나갈 바람이야. 무엇 때문에 그걸 모순이니 뭐니 해서 다시 건드려야 하는가? (눈을 감는다) 하긴 그렇군. 가야바, 눈을 감게. 의자에 편히 기대고, 그리곤 잠이 들게. 그것이 자넬 위해서도, 또 민중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일이겠네. 아, 피곤하군, 피곤해. (그는 잠이 든다. 코고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제 5장 최후의 만찬

(예수의 제자들이 무대에 나온다. 식탁과 의자들을 준비한다. 예수 등장, 한 손에는 빵이 놓인 쟁반과 다른 한 손에는 포도주가 담긴 병을 들었다. 그들은 예수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나눠 앉는다)

예수 : (빵을 떼어 들고) 이건 여러분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입니다. (잔에 포도주를 따라 들고) 그리고 이 잔은 내가 여러분들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입니다. 앞으로 이를 행하여 내 말을 기억해 주십시오. 서로 사랑합시다. 내가 여러분들을 사랑하는 것 같이, 여러분들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내 몸을 드시오. 내 피를 드시오.

제자들 : (빵과 포도주를 받는다)

예수 : (빵을 포도주에 적셔 유다에게 주며) 유다-

유다 : 네?

예수 : 가서 자네가 할 일을 하게.

유다 : (빵을 받고 멈칫하다가 결연히 밖으로 나간다)

예수 : 조금 있으면, 자네들은 날 보지 못해. 그러나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다시 보게 될 거네.

베드로 : 어디라도 가시려는 겁니까?

예수 : 내가 가는 곳, 그곳엔 아무도 올 수가 없네.

베드로 : 따라갈 수가 없다니요? 난 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

예수 : 베드로. 하지만 자넨 닭이 울기 전 세 번이나 날 모른다 할 거네.

도마 :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 그 길이라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예수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일세.

제 6장 또 다른 만찬의 식탁

(유다, 말없이 다가와 예수의 볼이 입을 맞춘다. 모든 동작이 중지된다.. 무대 벽에는 행진하는 군중의 모습, 분노한 사람들의 표정, 움켜쥔 주먹들, 아라비아 숫자들의 슬라이드가 어지럽게 투영된다. 식탁은 텅 비어 있다. 빵이 담긴 쟁반과 포도주 잔들은 그대로 놓여 있다. 잠시 후, 총독 빌라도가 들어와 식탁의 오른쪽 끝 의자에 앉는다. 그는 음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이맛살을 찌뿌리고 빵 조각을 뜯어 입 안에 넣고서는 억지로 삼켜 본다)

빌라도 : 요즈음엔 통 식욕이 없어. (고소장을 식탁 위에 펼쳐 놓고 손가락으로 톡톡치며) 고소장, 더구나 이런 것이 성가시게 구는 날엔 밥맛이 싹 가셔지거든. (고소장을 들여다보며 띄엄띄엄 읽는다) 빌라도 총독 각하, 각하께 고소하는 이 사람은 중대한 범죄자로서- (식탁 위의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고 찔끔 마시며) 입맛 쓰군, 아무도 없나, 이 식탁을 치워라!

(헤롯 안디바 분봉왕이 들어온다. 비만증 환자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몸이다)

빌라도 : 아니 헤롯왕이 아니십니까?

헤롯 : 식사 시간에 좀 늦었소. (식탁 왼쪽 끝자리에 앉는다. 탐욕스럽게 음식을 바라보더니 닥치는 대로 끌어당겨 먹고 마시며) 그런데, 이상해. 난 먹어도 먹어도 늘 배가 고프니- 정말, 배가 고파 죽겠소.

빌라도 : 그것 참 부럽습니다.

헤롯 : 별걸 다 부러워하는구려, 총독. 살만 잔뜩 찌고 배는 고프고, 이 고충을 누가 알겠소?

빌라도 : (자기 몫의 음식을 지겹게 바라보며) 내 고충은 또 누가 알겠습니까? 차라리 이걸 치워 버리라 해야겠군요. (밖을 향해 하인을 부른다) 여봐, 거기 아무도 없는가? (가야바의 동료들, 여전히 깊은 잠이 든 가야바를 앉은 의자 채 떠메고 등장한다)

동료들 : 부르셨습니까, 총독각하?

빌라도 : 자네들은 뭔가?

동료들 : (가야바를 식탁 중앙 쪽에 놓는다)

빌라도 : 누군가, 또?

동료들 : (축 늘어진 가야바의 잠든 얼굴을 들어 보이며) 가야바 대제사장이십니다. 각하의 식탁 위에, 그 위에 놓인 고소장을 제출하신 분이시지요.

헤롯 : 주무시질 않나, 식사도 않구?

동료들 : 네, 약간 피로하신 탓입니다.

헤롯 : 유행이야. 요즈음엔 누구나 다 약간 피곤들해. 안 그렇소, 총독?

빌라도 : 뭐 그런 것 같습니다. (고소장에 눈을 돌리며) 방금 이 고소장을 읽어 보았네.

가야바 : (깊은 잠에서 손을 번쩍 쳐들고, 잠꼬대로 악을 쓰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군중들 : (함성) 예수를 십자가에! 예수를 십자가에! 예수를 십자가에!

(식탁에 앉아 있던 빌라도와 헤롯은 깜짝 놀라 일어섰다가 다시 앉는다)

빌라도 : 무슨 소린가?

헤롯 : (시큰둥하게)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는 소리겠지!

빌라도 : 아무튼 예수를 데려오게.

(가야바의 동료들, 예수를 난폭하게 끌고 들어온다)

빌라도 : 식탁이 엉망이라 안됐군. 앉게.

예수 : (서 있는다)

빌라도 : 자네에 대한 고소장이 제출되어 있는데-

동료들 : 단순한 고소장이 아닙니다, 그건.

동료 3 : 총독 각하, 저희 율법에 의하여 이미 이 사람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형 판결권이 저희에겐 없으므로 총독께 그 재가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빌라도 : (이맛살을 찌뿌리고, 불쾌한 듯이) 그러니까 그저 요식 행위인가?

동료들 : 아, 그런 건 아닙니다만-

빌라도 : (예수에게) 그런데 바로 자넨가, "가이사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는 사람이?

예수 : (침묵)

빌라도 : 나 역시 공평하고 싶다. 자네들의 율법에 대해서는 난 상관 않겠네. 그러나 이 사람에 대해서는 나는 로마의 법률에 의해서 재판하겠다.

( 고소장을 가야바의 동료들에게 던져주며) 자, 자네들의 목소리로 이 사람을 고발하게.

동료들 : (고소장을 낭독한다)

첫째,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반대한 죄.
둘째, 국가 전복을 위한 민중 선동죄.
셋째, 스스로 자신을 왕이라고 주장한 죄.

빌라도 : 결국 정치적인 야심을 가진 혁명가란 소린데, 첫째 항목은 아까 자네가 했다는 유명한 말이 있으니까 명백한 날조라 할 수 있겠고- 어떤가, 자네 의견은? 둘째 항목, 자넨 민중을 선동했는가?

예수 : 나에겐 선동할 민중이 없소. 나는 그 누구도 민중으로 대해 본 기억이 없소. 나의 관심은 인간의 구원이오. 민중이라는 것을 선동하여 그 것을 이룰 수 있다고는 결코 생각할 수 조차 없소.

빌라도 : 수천 명이 몰려들면, 그 무리로부터 도망했다는, 우리 백부장들의 보고도 틀림없는 사실이군. 그런데 국가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길 했다면서?

예수 :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소. 내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지켜냈을 거이오.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빌라도 : 그런 국가라면 그걸 어디 국가라고 할 수 있나? 국가라면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싫든 좋든 전쟁터에 나가 국가의 이름으로 피를 흘릴정도는 되어야지. 이나저나 민중을 선동도 안 했다. 국가도 없겠다. 그러면 왕일 수도 없겠군. 그렇다면 아무런 죄도 저지른 것이 못되는데, 무고한 사람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로마법의 기본 정신이고 보면 나로서는 이 사람을 놓아 보낼 수밖에 없다.

가야바 : (또 다시 잠꼬대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군중들 : 예수를 십자가에 예수를 십자가에! 예수를 십자가에!

헤롯 : 되게 보채는군. 얼마나 굶주렸으면 저 지랄들일까?

빌라도 : 듣는가, 자네는? 모두가 자네를 죽이라 한다. 무슨 변명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예수 : (침묵)

빌라도 : 변명하라, 변명을-

예수 : (침묵)

빌라도 : 답답하군, 자네가 침묵하면 내가 어떻게 도와 줄 수도 없쟎는가?

예수 : (잔에 포도주를 따라 빌라도에게 내민다)

빌라도 : 난 식욕이 없네.

예수 : (여전히 술잔을 내민 채 들고 있다)

빌라도 : 식욕이 없다니까! 저 식욕이 넘쳐나는 헤롯왕에게 자넬 보내겠네.

동료들 : (예수를 식탁 왼쪽의 헤롯에게 데려간다)

헤롯 : 마침내.. (삼킬 듯이 노려보며) 만났구나.

가야바 : (잠꼬대로서)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라!

군중들 : 예수를 십자가에! 예수를 십자가에! 예수를 십자가에!

헤롯 : 또 보채는군, 또 보채. 나 역시 배가 고파. 그러니 네놈들에게 넘겨 줄 게 있다면, 우선 나부터 먹고 보겠네. 아무튼 너를 만나구 싶었다. 너에 대한 소문 일찍부터 듣고 있었지. 그런데 그게 정말인가? 물위를 걷고, 문둥이를 낫게 하며, 심지어 죽은 자를 되살려 놓기까지 했다지? 굉장해. 사실이 그렇다면 굉장한 기적이야. (침을 꿀꺽 삼키며) 자, 아무 기적이나 하나만 보여주게, 자 어서 하나만-

예수 : (침묵)

동료들 :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이 자는 사기꾼입니다. 그가 기적을 베풀다니요?

헤롯 : (보채듯이)응, 어서, 어서-

동료 1 : 나사렛의 목수 아들인 주제에-

동료 2 : 그걸 뻔히 아는데, 자기가 하늘의 아들이라니 참 배짱 하나 좋습니다.

헤롯 : 조용히! 여봐, 네가 가진 재주에 대해서 너무 인색하게 굴지 말게.

동료 2 : 재주라뇨? 아, 누군들 말로는 뭘 못한다 하겠습니까?

동료 1 : 전하, 예루살렘의 성전 있지요? 그 거대한 건물을 허물고는 다시 짓겠다니, 그게 될 법이나 한 소립니까?

동료 : 그것도 단 사흘만예요. 사흘만에 다시 짓겠다는 겁니다.

동료들 (웃는다)

헤롯 : 사흘 만에? 오, 그거 볼 만한 광경이겠군. 어디 당장 그것 좀 해 보일 수 없겠나?

예수 : (침묵)

헤롯 : 내 명령을 거역하는가? 알겠지만, 세례 요한의 목을 쳐서 살로메에게 준 이가 바로 나다. 창백한 내 딸이, 그 쟁반 위에 담긴 목을 보며 춤을 췄었지. 그 날 밤 나는 배가 고파 울었다. (배를 가리키며) 뭔가 이 속에 텅 빈 곳이 생기고, 자꾸만 자꾸만 먹을 것으로 채워 넣어도, 그곳이 메꾸어지질 않는다. 이제 누구든, 그저 단번에 배부를 것을 그 먹을 것을 나에게 주는 자가 있다면 난 그를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겠다. 자, 나에게 먹여다오. 그저 단번에 배부를 음식을, 그럼 내가 너를 믿겠다. 자!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다가든다)

예수 : (침묵)

동료들 : (이 침묵을 조롱하듯 비웃으며) 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우리를 먹이소서!

헤롯 : (그들의 비웃음이 자신의 절망으로 되어 처절하게) 그만, 그만! (예수를 빌라도 쪽으로 떠밀어 버린다) 가라, 가서, 총독에게 일러라. 나로서도 어찌할 수가 없노라고. (그는 빵을 한 움큼 떼어 자기 입에 틀어 넣는다)

빌라도 (다시 자기 앞에 선 예수에게 ) 헤롯 왕, 그 대식가도 자넬 어쩔 수 없다는 건가?

예수 : (침묵)

빌라도 : 그가 자넬 삼키지 못한 것은, 그의 식욕이 절망이기 때문이다. 자넬 삼키면, 그의 목구멍 어딘가에 날카로운 생선의 가시처럼 걸려서, 그가 늘 잊었으면 하는 그 절망이 죽는 날까지 쿡쿡 쑤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인간이란, 내 눈엔 모든 인간들이 자네 앞에서 절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야바를 가리키며) 잠이 든 종교적인 양심, 자네의 죽음을 요구하는 저 성난 군중들, 또 자네를 정치범이라고 주장하는 이 친구들, 이 모두가 어서 자넬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해 버림으로써, 그들 자신의 절망을 잊고 싶어하는 것이다. (신음하듯이) 그렇다면 나 역시 어쩔 수가 없는 것일세. 그들이 절망을 내세우면 나에겐 할 말이 없다. 알겠나, 내 심장을! (미친 듯이 식탁을 주먹으로 치며) 여기 인간이 있다. 나라는, 나, 나, 나라는 인간이 있다. 내가 인간이라는 것이 나를 절망시키고, 마침내 자네를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사이) 그런데 자넨 또 침묵이로군.

예수 : 그러나 지금, 진리에 속한 사람들은 내 음성을 듣고 있소.

빌라도 : 진리? 진리란 무엇인가?

예수 : (침묵)

(군중들의 함성이 들린다)

빌라도 : 쓸데없는 일인 줄은 아네만, 난 저 사람들에게 한 번만 더 호소해 보겠네. (관객들에게) 오늘밤, 이 사람 대신 바라바가 필요하지 않는가?

가야바 :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군중들 : 예수를 십자가에! 예수를 십자가에! 예수를 십자가에!

빌라도 : (고조되는 함성을 듣는다. 사이. 깊은 절망에서 쥐어짜는 목소리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가야바의 동료들, 예수를 무대 밑으로 끌어낸다. 십자가를 어깨에 지위, 교회 복도를 지나 정문으로 나간다. 함성이 멀어져 간다. 침묵. 식탁에는 빌라도, 가야바, 헤롯 셋만이 남는다)

빌라도 : (관객을 향해 그 책임을 미루듯이) 그 죄 없는 사람이 흘리는 피는- 나완 상관이 없어. 너희 인간들이, 그 피의 값을 받을 일이다.

헤롯 : 상관 없다니, 빌라도? 그럼 그대는 인간이 아니요?

빌라도 : (씻어지지 않을 것이 손에 묻은 듯이 자꾸만 손을 부빈다)

가야바 : (여전히 잠꼬대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라!

헤롯 : 여기에도 한 인간이 남아 있었군 꾸준히 잠꼬대를 하면서 -- 아마 저런 끈질긴 잠꼬대는 몇천 년이라도 계속할 거요. 참 묘한 생각이 드오, 총독. 우리 셋 중에서 그나마 좀 행복한 인간이 있다면 그건 저작자일 것 같소. 저런 작자가 어찌 나의 이 끔찍한 배고픔을 짐작할 수나 있겠소? (빵 조각을 떼어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서 집어 넣는다)

제 7장 도마의 집에 초대받은 사람들

(암전, 식탁은그대로 놓여 있으며 도마가 홀로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구부린 허리, 움츠린 어깨, 움직이지 않는 그의 태도, 허탈과 절망에 빠진 모습이다. 도마의 아내가 들어온다. 온순하고 다정스런 여인이다. 그녀는 어지러워진 식탁을 정돈하고, 다시 새 음식을 놓는다)

아내 : 여보, 뭘 좀 잡수시겠어요?

도마 : 아니.

아내 : 그래도 뭘 드셔야 기운을 차리시죠.

도마 : (고개를 가로 짓는다)

아내 : 무슨일이 있었나요?

도마 : 무슨일은? 아무일도 없었소.

아내 : 꼭 쫓기는 사람같지 뭐예요.

도마 : 누가 날 쫓아? 천만에! 내가 뭘했기에--

아내 : 여보, 당신은 삼 년 동안 집을 비우셨죠. 그리고 오늘에야 돌아오셨어요.

도마 : (침묵)

아내 : 돌아오시길 기다렸어요.

도마 : 아이들은? 아이들은 잘 있소?

아내 : 다들 건강해요. 거리에서 놀고 있나 보죠? 불러올까요?

도마 : 아니, 나중에 보지. (그는 식탁 앞으로 돌아 앉는다. 관객들에게) 여러분, 제 집입니다. 제 아내구요, 저 쪽 거리에서는 저의 어린 것들이 뛰노는 소리가 낭낭하게 들려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남편이라기보다, 그저 실패한 한 남자로서 돌아온 것입니다.

아내 : (위로하며) 여보, 지나간 삼 년을 너무 가슴 아파하진 마세요. 그건 긴 인생에 비하면 짧은 거예요.

도마 : 나에게 있어서 그건, 내 생애 전부에 해당되는 시간이오. 이제는 내 생애의 목적이 사라졌소. 아, 왜 이렇게 어두워질까? 갑자기 모든 빛이 꺼져 가는 것 같소. 근데 당신, 당신은 지금 뭘하고 있는거요?

아내 : 손님들을 초대했어요.

도마 : 손님들? 아니, 이 어둠 속에?

아내 : 네, 모두 당신이 아실 만한 분들이예요.

도마 : 하지만 여보-

아내 : 그리고 모두 다 자기를 실패한 사람이라 한탄하는 분들이예요. 인생의 빛, 그 환했던 불빛이 꺼지고 어둠 속에서 마치 유령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이죠. (식탁 가운데 촛대를 놓고 불을 켜 장식하며) 여보, 마음에 드세요?

도마 : 마음에 드는 것? 아, 그런 것이 다시금 나에게 있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겠소?

아내 : (잠시 도마의 어깨 위에 손을 얹는다) 당신, 우시는군요. (자기도 눈시울을 닦으며) 어린애처럼 (미소를 짓고 ) 자, 그만 하세요. 손님들이 오실 시간이예요.

(도마의 아내, 코러스 박스 앞에가서 문을 여는 시늉을 한다. 그곳에 앉아 있던 모든 등장인물들이 조용히 일어나 한 사람씩 문으로 들어온다.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베드로, 가야바 [그는 여전히 잠이 들어서 동료들이 의자째 떠메고 들어온다] 빌라도, 헤롯, 그밖에 인물들이 식탁에 앉는다. 도마의 아내,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음식을 나눠준다.)

아내 : 여러분, 와주셔서 고마워요. 이렇게 모이기는 불가능한 일이죠. 그렇지만요, 신분이라든가 직업, 그런 각자의 입장에서 잠시 떠난다면 얼마든지 같은 자리에 모일 수 있다고 봐요. (도마에게) 여보, 당신이 먼저 한 말씀 하시겠어요?

도마 : 난, 나에겐- 모든 것이 사라져 갔소. 그의 가르침도, 그의 희망도 그의 십자가와 함께 죽어 버린 거요.

아내 : (손님들에게) 아시겠지만요, 저의 남편은 그분의 제자였어요. 그러나 이 어둠 속, 깊은 회의에 빠져 괴로워하시는군요. 결국 믿음을 버리고, 오히려 한 때 그를 믿었던 자신을 원망하고 계셔요. (잔에 포도주를 따라 도마 앞에 놓으며) 그러나 여보, 전 알아요. 당신은 꼭 구원받을 거예요. 당신이 집을 떠나 그분과 함께 광야를 헤맨 삼 년 동안 저에겐 이 집이 제 자신의 광야였어요. 절망이 이 식탁과 저 벽과 그리고 저 벽 너머 천진난만한 어린애들까지 온통 차지했었어요. (잔을 부드럽게 남편의 손에 쥐어 주며) 결국은 아무도 그걸 피할 수 없잖아요? 저는 당신 만큼 그분을 알진 못해요. 그저 한두 번 먼발치로, 그것두 짙은 안개와 같은 절망 속에서 바라보았을 뿐이에요. 그러나 저는 그분이 모든 사람들의 구세주임을 믿어요.

빌라도 : 부인, 당신은 훌륭한 여성인 것 같소.

아내 : 감사합니다. 총독님.

빌라도 : 난 총독이 아니오. 그저 한 인간으로서, 부인의 초대에 응했던 거요.

아내 : 아, 저에게 많은걸 기대하진 마세요.

빌라도 : 한 가지 유감스러운건, 방금 부인의 말을 듣고 뭔가 감동을 하면서도, 이성적으로는 그 말을 거부한다는데 문제가 있소. 내가 로마인이기 때문에 그럴까? 로마에서 최고의 학문을 배웠고, 이성을 생활의 신조로 삼고 있소. 그러니 부인, 만일 가능하다면 당신의 그 믿음을 이치에 맞게, 그러니까 이성적으로 설명해 줄 수는 없겠소?

아내 : (막다라 마리아에게 다가서서) 여기, 한 여인이 있습니다. 총독님, 로마의 그 정확한 저울에 이 여인의 마음을 달아본다면, 몇 근이나 될까요?

아내 : 그렇습니다, 각하, 바로 그렇듯이, 그 저울이 측량할 수 없는곳에서 각하께선 그분을 포기하셨지요. 그때, 각하를 만류하고자 찾아갔던 사람이, 이 여인이죠.

막달라 마리아 :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빌라도 : 날 찾아왔었다고?

막달라 마리라 : 네, 총독님. 그러나 뵈올 수가 없었어요. 문지기 병사들이 비천한 저를 가로막고 들여 보내지 않더군요. 그런데 마침 총독님의 부인께서 저의 애태우는 모습을 보시고, 저를 맞아들여 부인이 쓰시는 방으로 데려가셨어요.

빌라도 : 내 아내가 너를?

막달라 마리아 : 네, 가장 비천한 여인과 가장 고귀한 여인이 마주 앉았지요.

빌라도 :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 : 제겐 가장 고귀한 꿈이 있었습니다. 저는 부인께, 제가 가진 그꿈에 대해서 말씀드렸어요.

빌라도 : 무슨 꿈인가?

막달라 마리아 : 부인께선 제 꿈을 이해하셨어요. 그리고는 곧 총독각하께 사람을 보내, 그 꿈을 전하도록 하시더군요.

빌라도 : 꿈이라? 그래, 그건 생각나는군. 내가 재판석에 앉아 있는데, 아내가 전갈을 보내왔었지. 날더라 그 외로운 사람에게 상관 말라고. 꿈에 그분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노라고. (음미하듯이, 다시 한 번) 꿈이라-

막달라 마리아 : (일어나서, 도마의 아내에게) 허락해 주신다면, 전 이만-

아내 : 어딜 가려구요,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 그분에게요. 전 가서, 그분 곁에 있겠어요. 비록 어둠 속의 인생을 살고 있지만, 저에겐 꿈이 있어요.

(막달라 마리아 나간다. 잠시 침묵, 나사로가 담담하게 말한다)

나사로 : 저는 나사로입니다.

가야바의 동료들 : 나사로? 자네가?

나사로 : 저를 체포하라 하셨다지요? 그분이 죽음에서 살려낸 저를, 그 생명의 증거를 없애라 하셨다지요?

동료들 : 하지만 이제 그건-

나사로 : 예전에 저는 그저 무심코 살았었죠. 그런데 그분이 제 삶에 새로운 의미를 주신 겁니다. 만나는 사람, 들리는 소리, 만져지는 이 감촉, 아, 이게 모두 반가운 거예요. 제가 다시 살아나서 그런건지, 이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나서 그런 건지, 구별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제 삶의 변화 속에 언제나 그분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동료 1 : 나사로, 자넨 한 번 더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소릴 할 수 있겠지.

나사로 : 글쎄요. 결국은 언젠가 저는 죽습니다. 하지만 저의 삶에 환희를 주신 분, 그 분은 저의 죽음 다음에도 살아 계실 겁니다.

동료 2 : 여보게, 자네가 말하는 그분 자신이, 지금 죽어가고 있다는걸 알고 있나?

나사로 :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 죽음으로 당신들을 다시 한 번 살리고자 하시는 뜻을, 그 뜻을 아시겠습니까?

동료 2 : 모르겠군.

동료 3 : 나도 모르겠어. 그게 무슨 소린가?

마리아 : 그분은 생명이셔요.

마르다 : 영원한 생명이시죠. (둘러보며) 저희들은 한가족이예요.

나사로 : 마르다, 이 식탁에 모여 있는 우리 모두가 한가족이야. 오, 난 그분에게 감사해. 이 가족에게 나눠주시는 그 생명, 그 생명의 기쁨을 나는 알아요. 그래서 이 한 조각의 빵, 이 한 잔의 포도주에서도 난 그 넘쳐나는 기쁨을 느끼는거요.

헤롯 : (한숨을 쉬며) 부럽군. 난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네.

가야바 : (잠꼬대로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헤롯 : (빌라도에게) 저 작자, 이젠 가장 불쌍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소?

빌라도 : (잠시 침묵, 한탄하며) 어둠이 너무 길군. 더구나 꿈이 없는 나에겐.

(잠시 침묵)

유다 : 도마, 괴롭군.

도마 : 왜? 자넨 그래도 자기 뜻대로 해봤지. 그럼 후회할 건 없잖나?

유다 : 후회는 안 해. 그러나 자기 뜻대로 한 인간은 홀로야. 홀로가 돼 버리는 거야! 이상하게 들리마, 도마? (자기의 머리카락을 쥐어 뜯으며) 아, 난 미칠거네!

베드로 : 결국은 몰라. 새벽이 오기 전에 모르는 거야!

도마 : 베드로, 당신마저 그런 맘 약한 소릴 하는 거요?

베드로 : 날 강하다고 생각 말게. (흐느끼며) 난 모른다고 했어. 세 번이나 그 분을 세 번이나- 그러자 닭이, 새벽 닭이 울더군.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도마 망연 자실하여 넋나간 듯이 식탁의 사람들을 바라본다. 침묵, 십자가에 못을 때려 박는 소리가 들려온다. 모든 등장 인물들이 그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각자 제각기 반응을 나타낸다. 헤롯은 마구 음식을 움켜 잡아 입에 틀어 넣고, 빌라도는 자꾸만 손을 비비며, 유다는 자기의 머리카락을 쥐어 뜯는다. 도마의 아내, 일어선다. 발돋움을 하고, 어둠 저쪽을 응시하며 나직하게 말한다)

아내 : 먼저, 오른손이군요.

(못 박는 소리, 끊어졌다가 다시 들린다)

아내 : 왼손이구요.

(다시 소리가 들려 온다)

아내 : 발이예요

(못 박는 소리, 마침내 그친다. 무대는 완전히 어두워진다)

제 8장 부활

(새벽을 알리는 듯이, 부활의 노래가 처음에는 가느다랗게, 그러다가 점점 커지며 들려온다. 무대, 밝아진다. 텅 빈 공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도마. 막달라 마리아, 교회 정문으로부터 달려 나온다)

막달라 마리아 : 그분이 부활하셨어요!

아내 : 그분이?

막달라 마리아 : 네, 제 눈으로 보았어요!

아내 : 어디서? 어디서요?

막달라 마리아 : 무덤 밖에서요. 울다가 그 안을 들여다보니, 계시질 않았어요. 등 뒤에서 그분이 말씀하셨어요. 왜 울고 있느냐구요. 그리고 제 이름을 부르시고 나서, 곧 여기에 오신다고 하셨어요. (도마의 아내 손을 잡아 이끌며) 자, 함께 나가 맞이해요!

(막달라 마리아, 도마의 아내, 교회 정문으로 뛰어나간다. 도마, 관객석 앞으로 나온다)

도마 : 여러분, 이것으로 저의 추억은 끝이 납니다. 그러나 제 생애에 있어서 가장 기쁜 순간,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조금 후엔, 저 문으로부터 부활하신 그분이 오신다는 겁니다. 방금 막달라 마리아가 그 소식을 전해 주고 갔습니다. 전, 사실, 어쩔 줄 모르겠군요. 믿어지질 않아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저는 여러분이 보셨듯이 완전히 절망했었습니다. 온갖 번민과 회의가 마치 저를, 저의 손과 발을 못으로 박고, 옆구리를 창으로 쑤시는 것 같았어요. 그 고통이란! 그런 아픔은, 오직 겪은 자들만이 아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못견디게 아플 때에, 부르짖곤 했습니다. (자기 손과 옆구리를 만지며) 이 눈으로 직접 그분의 손에서 못자국을 보고 이 손가락으로 그분의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이 손을 뻗어 그분의 옆구리 상처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그 분을 믿지 못하겠다구요. (교회 정문 쪽을 가리키며) 그런데 오, 저기 그분이 오십니다! 그분이 오시는 거예요. 봐요! 어둠에서 밝음이! 절망에서 희망이! 죽음에서 부활이! 자, 여러분 그분을 맞이 합시다!


(교회 저문쪽으로부터 모든 등장 인물들이 예수역을 맡았던 청년과 함께 부활의 노래를 부르며 들어와 무대 위로 올라간다. 등장 인물들과 관객들이 전체 합창을 부르는 가운데 연극은 끝이난다)

-막-

출처:www.magoog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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