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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신약시대 성지) 25. 실로암의 연못 (예루살렘)27. 나사로의 묘(예루살렘)28. 겟세마네 (예루살렘)30. 고통의 지역 1 (예루살렘)31. 고통의 지역 2 (예루살렘)32. 골고다(예루살렘)33. 그리스도의 묘(예루살렘)
예수님의 탄생지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을 지니며, 아랍어로는 '푸줏간'이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된다. 그것은 목축업이 활발했던 것과 양을 잡는 날에 행해지던 잔치 (삼상 25: )에 그 기원이 있다. 또한 '에브라다'와 함께 병용하여 사용 (미 5:2) 되기도 하였고 '에브랏' (창 35:16, 19, 48:7) 으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이곳은 다윗 왕의 고향 (롯, 삼상 16: )이기도 하며,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 부은 곳 (삼상 16:1)이며, 다윗의 우물 (삼하 23:13 ~ 17)이 있던 곳이다. 에브라임 산지에 살고 있던 미가의 개인 제사장 레위 인의 고향 (사 17:7 ~ 13), 사무엘은 왕에게 베들레헴을 하나님께 제사를 올리는 성지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르호보암 왕 때는 이곳에 요새가 쌓아졌고 (대하 11:6), 한때 블레셋에 의해 점령되었고 (삼하 23:14), 예수님의 탄생지로 예언되었고, 그 예언이 성취된 곳 (미 5:2, 눅 2:1 ~ 5, 마 2:1~18, 요 7:41~42) 인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 8 Km 떨어진 곳에 있다. 특히 감람나무가 많은 해발 700여 m 높이의 산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예수님탄생교회 (Church of the Nativity) 주후 135년 로마 황제 하드리안은 제2차 유태인 반란을 진압한 후 기독교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예수님 탄생 동굴 위에 아도니스 신전을 만들어 세워 놓는다. 그 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대제는 이 아도니스 신전을 철거하고 이곳에 예수님 탄생 교회를 건립한다. (주후 325년)이 교회는 주후 529년 비잔틴 제국에 반란을 일으켰던 사마리아 인들에 의하여 크게 손상을 입게 되지만 곧 이어 유스티니안 황제에 의해서 복원된다.(주후 565년) 현재의 건물은 십자군 시대의 예배당 모양을 보존하여 수리한 것이다. 탄생의 동굴은 성탄교회 내부 지하에 있다. 예배당의 모양은 십자가 모양의 건물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십자군 당시 교회를 보수할 때 입구의 높이를 1.2 m 정도로 낮추고 그 폭도 좁게 만들어 놓았다. 머리를 굽히고서야 교회에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약탈자들이 말이나 마차를 타고 교회에 출입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방어적 성격을 지닌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은 자세를 낮추고 들어가서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주후 1100년 성탄절 날 볼드윈 1세는 십자군 시대의 예루살렘 왕으로서 그 즉위식을 이곳에서 가졌다. 주후 386년 제롬은 예수님 탄생교회 바로 옆에 있는 동굴에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였다. 이때 번역한 불게이트(Vulgate) 성경이 지금까지 카톨릭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경이다. 라헬의 무덤 이곳은 '라마'로 언급되기도 하는데 (에레미야 31장 15절), 무슬림, 기독교인, 특히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기념 장소이다. 야곱의 사랑을 받던 라헬의 무덤 (창 35:19, 48:7)은 헤브론 길에서 베들레헴 길로 꺾어지면서 곧바로 보이는 곳에 잘 보존되어 있어서 이곳을 찾는 유대인들을 늘상 보게 된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이나 중요한 절기 때 이곳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을 볼 수 있다. 그들도 죽은 성인이나 조상들을 숭배하는 풍습이 있다. 이 외부 건물 구조물은 1860년에 새로이 지어진 것이다. 이 무덤에 와서 기도하면 번성과 안전한 출산의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이곳에서 기도하기도 한다. 간간이 세파르딤 파에 해당되는 유대인 여성들이 이곳에서 울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사렛은 예수께서 출생 후 잠시 애굽으로 피난 했던 때를 제외하고는 태아에서 부터 유년기를 거쳐 성년이 되기까지 일생을 보낸 고향이다. 나사렛은 에스드라엘론 평원 북쪽, 갈릴리의 언덕에 있는 한 마을이다. 티베리아스에서 31 Km, 하이파에서 39 Km 떨어진 해발 375 m 정도의 산으로 둘러 쌓여 있다. 아랍인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이 마을 동쪽 산너머에는 새로이 조성되어온 유대인 도시가 있다. 성탄절을 전후한 시기에 성탄절을 느끼게 하는 도시의 하나이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 (마 2:22 ~ 23, 요 19:19)으로 불린다. 이집트에서의 피난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곳 (눅 2:39)으로, 예수님은 그의 소년시절 (눅 2:51)을 이곳에서 보내셨다. 초기 그리스도 인들은 '나사렛당' 이라고 불리기도 하였고, 이것은 지금도 아랍어와 히브리어에 그리스도인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의 고고학적 발굴의 결과, 이곳 나사렛에는 오래전에 정착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것과, 초기 로마시대 기간에 번성했던 것을 보여준다. 중기 청동기 문명 시대의 해골과 매장터가 도시 상부에서 발굴되었다. 1962년 가이사랴에서 발굴된 한 파편에는 히브리어로 나사렛이라 기록된 기록물이 등장하였고, 탈무드 시대의 기록물들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빌립이 나다니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 1:45)
▲ 691년 압델 말릭이 세웠다는 바위사원,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곳으로 지금은 회교사원으로 쓰임 황금의 도시, 영원한 도시, 평화의 도시인 예루살렘은 3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역사의 중심에서 아직도 꿋꿋하게 살아 숨쉬는 이스라엘의 수도이다.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눅 21:37)
4개의 봉우리를 가진 조그마한 언덕으로,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해발 약 800 m 정도인 이 감람산은 예루살렘 동쪽, 기드론 계곡 건너편에 있는 산이다. 이 산에는 감람나무(Olive Tree)가 많았기 때문에 감람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예루살렘의 동쪽 성문 중의 하나인 스테반 문 (일명 사자문)에서 성 내부 쪽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이 연못은 예수님 당시에는 성의 북쪽벽 밖 가까운 곳이었고, 성전으로 들어가는 양문 (Sheep Gate, 느 3:1, 요 5:2) 곁에 위치하고 있다. 이 연못은 본래 기원전 2세기 시몬이 대제사장으로 있던 때에 세워진 길이 100 ~110 m, 너비 62 ~ 80 m, 그리고 깊이 7 ~ 8 m, 의 두 개의 쌍둥이 연못으로서 성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과 더불어 종교적, 의학적 치료를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 이곳은 치료의 효과가 있다고 해서 환자들이 늘 집합되는 장소였고, 예수께서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신 장소로서 성스러운 성지로 지켜져 오는 곳이다 (요 5:2 ~9), 히브리어의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 (House of Mercy)이라는 뜻이다. 또 오리겐 (AD 231년)은 두 개의 쌍둥이 연못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연못 가장자리에 4개, 중앙에 한 개의 기둥"을 말하고 있어 사도 요한이 전하고 있는 '다섯 행각'에 관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 연못은 수백년 동안에 흙으로 덮여져 있던 곳이 1888년에 들어서 발굴되었다. 이 연못은 그 길이가 105 m, 폭이 60 m, 그 깊이가 7.5 m가 되는 직사각형 모양에 네 개의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로서, 그 측면은 다섯 개의 회랑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로써 요한복음의 '다섯 개의 행각' (요 5:2)이라는 말이 입증되는 셈이다. 이 연못 중의 하나가 성전에서 희생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양을 깨끗이 씻겨서 들여가던 곳이다. 비잔틴에 의해서 건립되고, 614년에 페르샤에게 파괴된 5세기의 바실리카가 거대하게 남아있고, 십자군 시대의 교회당이 비잔틴 교회 위에 건립되어 있다. 이 교회당의 정면 모습과 정문은 오늘날도 연못의 모습 위에서 방문해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십자군의 전설에 의하면 이곳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부모인 안나와 요아킴이 살던 곳으로 AD 1140년에 발드윈 1세 (Baldwin I) 의 부인에 의해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 안나 교회' (St Anne's Church)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 교회는 마리아의 탄생지가 되는 귀중한 토굴 위에 건립되었다. 1187년 십자군의 패배 후에 살라딘 왕은 이슬람의 신학교로 이 장소를 사용했다. 1865년의 크리미아 전쟁의 결과로 압둘 마지브 술탄은 나폴레옹 3세에게 이 장소를 양도했고, 이 교회는 수리되어 백계 신부 (White Fathers)들에게 넘겨졌다.
25. 실로암의 연못 (예루살렘)실로암의 연못 = 에제키아 지하수도 끝에, 티로페온의 계곡에 있는 이 연못의 수조는 장님의 눈을 뜨게한 예수의 기적으로 알려져 있다.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어라 (요 9장)
예수의 갈릴리 선교 본부로서 3년 동안의 공생애 활동의 가장 중요한 중심 도시 가운데 하나다. 복음서의 여러 곳에서 이 도시를 '그의 고향' (his own city), 혹은 '그의 도시'라 부르고 있다. (마 9:1, 막 2:1)
27. 나사로의 묘(예루살렘)
나사로의 묘 = 한 사람의 환자가 있다. 나사로라 하고, 그 자매 말타의 마을 베타니야의 사람이었다. 베타니야는 예루살렘 근처, 25리 정로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라고 요한 전에 기록돼 있다. 오늘날 이 베티니야 마을은 아자리아라고 불리고 있지만, 예수가 행한 많은 기적중에도 가장 유명한 나사로의 소생을 기념해서 여기에 세워진 3개의 소 예배당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현재 회교도가 관리하고 있는 나사로의 묘는 17세기에 전개된 24단의 위험한 계단을 내려간 곳에 있다. 여기에 안치되어 있던 죽었던 자 나사로는 예수의 말에 의해 소생했다.
28. 겟세마네 (예루살렘)겟세마네의 정원은 기독교의 전통에 있어서 가장 영적인 곳이다. 아직 올리브나무가 울창하며,이는 필히 예수가 끌려가던 마지막날 밤을 지켜 보았으리라 믿어진다."Gethsemane"는 히브리어로 "Gat Shemen"즉 올리브 숲이라는 의미이며, 이는 이 지방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마태복음 26장 36절).
29. 슬픔의 길 (슬픔의 길) 라틴어 비아돌로로사 (Via Dolorosa)는 '슬픔의 길'이라는 뜻으로서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기까지의 십자가 수난의 길을 말한다.
제1지점 은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시던 빌라도 법정이다. 제2지점 은 가시관을 씌우고,홍포를 입혀 희롱한 곳이다. 제3지점 은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이다. 제4지점 은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난 곳이며 제5지점 은 구레네 사람 시몬 (Simon of Cyrene)이 십자가를 대신 진 곳이다. 제6지점 은 성베로니카 여인이 물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는 곳이다. 제7지점 은 예수님이 두 번째로 쓰러진 곳이다. 제8지점 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제9지점 은 예수님이 세 번째로 쓰러진 곳으로, 곱틱교회가 서있다. 제10지점 은 예수님의 옷을 벗긴 곳이며,(요 19:23 ~ 24) 제11지점 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곳이며, (눅 23:33) 제12지점 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신 곳이며, (마 27:45~ 51) 제13지점 은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내린 후, (마 27:59) 제14지점에서 그가 자기의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 지냈다.(마 27:60 ~ 61) ※ 제10지점 에서 제14지점까지는 처형의 목적지인 골고다 언덕 위로써 지금의 성묘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안에 있다.
30. 고통의 지역 1 (예루살렘)157.158. 예루살렘 : "채찍질 교회"의 정문 내부는 스테인드 유화로 장식되어 있다.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 하더라.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앞에 와서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요한복음 19장 1-3절) 1920년대에 세워진 이 교회는 십자군들이 세운 곳위에 세워졌으며, 지금은 프란체스코 교회가 운영을 하고 있다. 이 교회는 "빌라도가 예수의 발을 씻는 모습"등이 스테인드글라스에 나타난다. 위의 높은 쪽에는 금테를 두른 모자이크가 있다. 이는 "별에 의해 뚫어진 가시왕관"이라는 그림이다.
에제 호모라는 로마식 아치의 잔재가 있는 곳에 두번째 기착지가 있다. 이도 빌라도가 예수를 군중에게 소개할 때의 음성을 기념한 것이다. 하드리안왕(서기 135년)때 예루살렘의 점령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이 아치는 지금도 훤히 보인다. 왼쪽의 아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오른쪽 아치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이 교회에는 옛 폐허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중에는 로마 아치나 안토니아 요새나 로마시대의 도로 등이 있다. 돌에는 고대 주사위 놀이의 흔적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로마 병사들이 예수의 옷을 놓고 도박한 곳이라고 믿겨진다. 스투루디온의 연못은 B.C. 2세기 때의 저수지로써 하드리안황제에 의해 지붕이 씌워졌다. 160.161. 예루살렘 : 비오 돌로로사의 전경, "시온자매들의 교회"마루에 새겨진 주사위 놀이.
31. 고통의 지역 2 (예루살렘)예루살렘 :콥트수도원의 내부, 입구에 있는 로마양식의 기둥이 예수의 고통의 지역 LX을 나타내주고 있다.
167.예루살렘 :비어 돌로로사, 고통의 지역 VI.그리스 정교회가 십자가를 표시했다.
32. 골고다(예루살렘)골고다의 언덕에는 오늘날, 가파른 계단을 통과 하면 2개의 예배당이 있다. 하나는 로마 카톨릭 교회이고, 또 하나는 그리이스 정교이다. 카톨릭 쪽에는 2개의 처가 있고, 또 그리이스 정교쪽에는 12개의 처(그리스도 종언의 땅)가 있다. 제단 아래 비치는 바위의 일부 은으로 표시된 곳은,십자가가 박혀있던 장소라 한다.
33. 그리스도의 묘(예루살렘)그리스도의 묘의 외관 = 그리스도의 묘 : 예배당이 있는 제단 안에 있다. 이 작은 건조물은 2개 부분으로 나뉘고, 앞의 천사의 예배당 여자들이 그리스도 묘를 방문했을 때 천사가 앉아 있던 바위의 일부가 중앙에 박혀 있다. 그리고 다음의 작은 방이야말로 예수의 묘이고,또 고난의 길의 종점이기도 하다. 약 2m 의 흰대리석 석판은 알리마타야의 요셉 정원에서 발견된 신묘의 원석을 포함하고 있다. 묘위에는 43개의 은제, 램프가 매달려 있고, 로마 교회와 그리이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교회가 각각 13개를 또, 코프트 교회가 4개를 소유하고 있다.마리아의 이콘이 바위를 파낸 중에 숨져지듯이 놓여 있다.
* 참고도서: 성서 고고학 이야기 (김성 교수, 동방 미디어) * 참고 사이트: http://nameofjesus.com.ne.kr/korean/bible_pic.htm http://www.bibleforum.org/1998/32_sp_pjs.htm http://cts.tv/sermon2/cts/lecture/subindex.php?lectureID=1064279486&userID=1062999428 * 관련 동영상 시내산에서 예루살렘까지(1부) 제1편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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