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이 힙합을 입다 랩 뮤지컬 <래퍼스 파라다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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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익대학교 앞 한 클럽, 지하에 위치한 이 클럽이 래퍼들의 비트에 맞춰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심장을 흥분케 하는 래퍼들의 비트는 절로 어깨춤을 추게 하고 박수를 치게 한다. 10여명의 래퍼들이 무대를 오가며 펼치는 짜릿한 공연. 그러나 이 공연의 주인공은 힙합을 추는 댄서와 래퍼가 아니다. 국내 최초로 선보여지고 있는 랩 뮤지컬, 래퍼스 파라다이스다. 래퍼스 파라다이스는 90년대 미국을 주름잡았던 전설의 래퍼, 투팍(2Pac)과 더 노토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의 이야기를 소재로 선택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시절, 인종차별을 뛰어넘어 최고의 래퍼로 인정받은 투팍과 더 노토리어스 비아이지. 그러나 이들은 랩에 대한 열정과 우정, 사랑과 배신을 겪으며 서로를 공격하게 되고 결국 96년에는 투팍이, 97년에는 더 노토리어스 비아이지가 총격으로 사망하게 된다. 최고의 래퍼지만 비극적인 운명의 래퍼이기도 한 두 사나이의 이야기를 래퍼스 파라다이스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뮤지컬로 다뤄지는 두 래퍼의 이야기 래퍼스 파라다이스. 이번 공연의 책임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김학묵씨는 랩과 뮤지컬의 만남을 시도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젊은 두 힙합 거장의 인생사가 매우 드라마틱해서 하게 되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꾸밀 수 있고 음악도 음악이지만 인생사가 마치 하나의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여서 좋은 뮤지컬이 나올 것 같았다. 뮤지컬이나 무대공연에 있어서는 다뤄본 적 없는 소재인데 그들이 미국인임에도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그 삶을 다룬 뮤지컬이 나오게 되었다."
배경과 형식
랩 뮤지컬이다보니 기존 뮤지컬과 달리 콘서트 형식을 빌렸다. 진행하는 사회자가 있고 화려한 공연이 이어진다. 뮤지컬답게 탄탄한 스토리도 빠지지 않는다. 래퍼스 파라다이스는 투팍과 더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의 이야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퍼프대디가 공연의 문을 연다. 공연의 흐름을 잡아나가는 퍼프대디는 스토리를 말해주기도 하지만 관객들이 해야 할 역할도 제시해준다. 함께 박수치고 소리지르고 함께 춤을 추며 공연을 즐기자고 권한다. 처음에는 약간 건방진 듯한 퍼프대디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공연의 분위기를 파악한 관객들은 쉽게 적응하고 이내 환호를 보낸다. 힙합 마니아가 아니어도 랩을 쉽게 이해하지 못해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연. 이것이 바로 래퍼스 파라다이스다. 김학묵씨는 대사 자체가 랩형식이고 랩과 힙합이 가미된 콘서트 형식이라는 것이 관객과 배우가 함께 공감하고 교류할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스트레스를 맘껏 날릴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래퍼스 파라다이스를 찾아온 관객층은 다양하다. 헐렁한 힙합차림을 한 20대부터 양복차림에 서류가방을 들고 자리를 잡은 샐러리맨과 정장차림에 하이힐을 신고 핸드백을 들고 자리한 여성도 보인다. 서로 연령층은 다르지만 래퍼스 파라다이스가 이끄는대로 하나가 되어 함께 호흡한다.
다양한 장르실험
최근 국내 창작 뮤지컬계의 동향을 보면 비보이뮤지컬, 랩뮤지컬, 게임뮤지컬 등 이색뮤지컬로 다양한 장르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서 뮤지컬 평론가이자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원종원교수는 바람직한 움직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뮤지컬은 수필과 같다. 다양한 형식적 도전이 이뤄지는 장르다. 3월에 창작뮤지컬이 많이 나왔다. 이들의 특징은 과거와 달리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메소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도를 통해서 우리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그런 면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장르와의 결합을 시도하면서 뮤지컬 배우의 갖춰야 할 자격요건도 한층 더 까다로워졌다. 단순히 춤과 노래를 잘하는 배우가 아닌 독특한 그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이다. 퍼프대디 역을 맡은 최현원씨는 "문화코드가 많이 변하는 것 같다. 뮤지컬 배우를 뽑는 오디션도 이전에는 재즈, 발레 등을 봤지만 요즘은 비보이같은 특별한 기량을 본다. 애니메이션 만화 영화를 소재로 한 실험 뮤지컬이 나오는데 이 역시 반가운 현상이다. 관객층도 넓어지고 표현방법도 넓어지고 대중에게 다가가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랩뮤지컬을 보는 관객들의 반응도 하나같이 신선하다는 입장이다. 힙합 춤이 다소 현란하고 랩이 생소해도 스토리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열광하게 된다는 것이다. 랩에 관심이 없었다는 여성관객은 "보통 다른 뮤지컬에서는 앉아서 봤는데 직접 서서 그들과 환호하고 박수치면서 즐기는 관객과 배우가 같이 한다는 사실이 즐겁고 새롭게 느껴졌다. 힙합에 별로 관심없었고 랩이라 빨라서 못 알아들을 거라 생각했는데 직접 랩 뮤지컬 보니까 차츰 알아듣게 됐고 새롭고 신선했다."
투팍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
래퍼스 파라다이스가 힙합과 랩이 가미됐지만 뮤지컬 팬들까지 흡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투팍과 더 노토리어스 비아이지 두 아티스트 사이에 얽힌 굴곡진 삶이 유난히 드라마틱했기 때문이다. 1971년에 뉴욕에서 태어난 투팍은 건달과 어울려다니며 범죄를 저지르고 적잖은 수감생활을 했지만 볼티모어 예술학교를 다니게 된 것을 계기로 랩을 시작했고 흑인을 대변하는 가사로 빌보드 넘버원까지 차지하게 된다. 투팍이 서부에서 전설적인 갱스터 힙합 아티스트로 명성을 날리고 있을 무렵 동부에서는 노토리어스 비아이지가 활동하고 있었다. 가난을 벗어나고자 마약거래상을 하며 어린시절을 보냈던 비아이지, 그의 유일한 재능인 랩실력이 음반 기획자 퍼프대디의 귀에 꽂혔고 그 때부터 노토리어스 비아이지는 래퍼로 새 인생
을 시작하게 된다. 190cm 키와 140kg 에 육박하는 거구에서 뿜어져나오는 파워넘치는 랩으로 대중들에게 주목받게 된다. 투팍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 이들의 공통점은 랩에 대한 열정일 뿐, 이 둘 사이에는 영원한 라이벌이라는 강한 경쟁의식이 존재하고 있었다. 어긋난 운명의 사나이 투팍과 노토리어스 비아지.
뮤지컬에서는 영원한 라이벌인 두 사람의 보이지 않는 우정을 그리고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96년 9월 투팍이 총격사고를 당하고 그로부터 1년도 채 되지못한 97년 3월 노토리어스 비아지 역시 총격으로 숨지고 만다. 투팍이 사고를 당했을 때 범인으로 오해를 받고 살아야 했던 비아지. 그 역시 누군지도 모르는 총에 맞아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이 둘의 죽음으로 래퍼들은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그 즈음 노토리어스 비아지의 아내이자 가수인 페이스 에반스는 화해의 노래를 부르며 미국 동서부 래퍼들 사이에 평화를 소망한다. 래퍼스 파라다이스라는 제목은 힙합계의 전설적 인물인 투팍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가 죽음을 통해 래퍼들 사이에 파라다이스가 찾아오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래퍼의 죽음 이후에 퍼프대디가 이 둘을 추모하면서 발표한 음반이 바로 I'll missing you이다. 퍼프대디가 발표한 이 노래에 페이스 에반스가 참여하면서 에반스 역시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자유분방한 남편 노토리어스 비아이지를 만나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던 가수 에반스. 남편과 영원한 이별 후에 그녀의 인기가 높아졌다는 것 역시 드라마틱한 요소로 남는다. 래퍼스 파라다이스는 투팍과 노토리어스 비아지와 에반스, 퍼프대디 등 음악을 통해 얽힌 인물들의 스토리를 극적으로 엮어냄으로써 뮤지컬에 랩의 매력을 충분히 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랩과 뮤지컬의 하나됨
랩 뮤지컬을 연습하면서 래퍼와 뮤지컬 배우 사이에서 갈등도 적지 않았지만 공연의 막이 올라가면서 서로에게 많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페이스 에반스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김은영씨는 힙합 뮤지션들의 애드립을 보면 트랜드에 맞고 세련미가 느껴진다고 말한다. 투팍을 맡았던 이재현씨 뮤지컬이란 장르를 처음 접했는데 무대에 대한 개념과 활용방법이 굉장히 치밀하고 세세하여 그런 부분을 머리에 담고 연습으로 몸으로 익히는 과정에서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무대와의 약속과 연기가 어려웠다던 래퍼들, 랩을 소화하기가 힘들었다던 뮤지컬 배우들. 이들은 국내 최초로 공연된 랩 뮤지컬 래퍼스 파라다이스를 통해서 서로의 장점을 존중해주며 하나가 되었다. 이들이 공연을 통해서 관객들이 하나됨을 유도했던 것처럼 랩과 뮤지컬 두 장르도 하나가 되었다. 한시간의 공연이 끝나고 나면 20여분 동안은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된다. 모든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래퍼와 배우들이 유도하는대로 춤을 추고 소리치고 환호한다.국내최초 랩 뮤지컬 래퍼스 파라다이스는 이 새로운 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존 클럽을 전용관으로 꾸몄다. 앞으로는 공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를 클럽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시도중이다. 뮤지컬과 콘서트 클럽, 이 3가지의 즐길거리를 관객에게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배우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소극장에서 주인공의 노래에 맞춰 함께 뛰며 즐기는 공연 래퍼스 파라다이스는 국내 창작뮤지컬을 파티로 만들어내는 묘한 매력을 뿜어내며 한국이 탄생시킨 새로운 트랜드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