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플라토니즘을 수용한 기독교
2장
플라토니즘을 수용한 기독교1)
그 어떤 고대 철학도 플라토니즘 만큼 기독교 신학을 그 유래와 발전과정에서 강하게 각인시키지 못했다. 이 경우에 플라톤 사상이 기독교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하다. 이것은 오히려 생산적 수용2)과 동화의 경과에 관한 문제다. 이 경과는 기독교에 대한 플라톤 사상의 특수한 “영향사”(Wirkungsgeschichte)를 구성한다. 이렇게 이해된 기독교의 플라토니즘은 그렇지만 “고대 교회의 역사에, 최소한 그리스 교회의 역사에서 같은 의미로” 그 특징을 드러낸다고 보는 것이 정당하다.3) 기독교의 플라토니즘에서는 “다만 그리스 세계의 기독교화와 그리스적인 진리의 기독교적인 이해”가 핵심문제이다. 플라톤 사상은 특별한 방식으로 기독교가 그리스 정신을, 특별히 그리스 철학을 획득하는 일에 적합했다. 그러나 역으로 2세기 이후로 발전된 플라톤-르네상스는 아마도 “핵심적으로 기독교의 선포가 없이는 생각해볼 수 없었을 것이다.”4)
그렇다면 플라토니즘과 기독교 사이의 내적인 친화력이 있었다는 말인가? 이것은 물론 사태의 한 측면일 뿐이다. 하인리히 되리는 후기 고대의 플라토니즘을 바로 기독교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었다. 즉 그 시대가 초월로 지향하는 일종의 다른 형식으로 말이다.5) 되리는 교부들이 플라톤의 가르침을 진리에 대한 최종적 준거가 아니라 단지 진리에 대한 안내일 뿐이라고 간주했다는 사실을 바르게 지적하고 있다. 이 경우에 교부들은 분명히 호교론적이며 선교론적인 동기에서 움직였다. 그렇다고 해서 플라톤 사상이 역으로 성서와 기독교 교리를 해석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플라토니즘은 독특한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그 형식은 플로티노스와 그의 제자인 포르피리오스 같은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대로 이교도적인 플라토니즘에 의해서 아주 명백하게 구별되었는데, 플라톤의 작품에 따라오는 권위를 평가하는 데서도 역시 구별되었다. 물론 플라토니즘은 일반적으로 “누구나가 일치하는 권위나 이미 통일된 체제가 아니라...., 오히려 일종의 정신적 흐름이다.”6) 기독교 내부나 외부에서 실로 다양한 형태로 주조되었다. 이 경우에 플라톤의 가르침에 대한 이런 저런 입장이 스스로 중심에 나서곤 하였다. 이런 일은 플라톤이 죽은 직후에 그의 학파 내에서 발생한 첫 “분열”로 나타났다.7) 소크라테스의 근원적인 질문의 비판적 순간을 결정적인 것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스토아적인 체제 형성과 달리 회의론에 빠졌을 때였다.
플라톤 학파의 역사에서는 서로 다른 세 가지 중요한 국면이 전개되었다.8) 첫째 국면은 플라톤이 기원전 385년에 헤카데모스의 숲속에 세운 소위 “아카데미”다. 이것은 아폴로와 뮤즈를 섬기는 종교적 동맹 형식이었다. 창설자가 죽은지(기원전 348년) 일 세기가 지난 다음에 이 학파는 회의론에 빠져들었다. 즉 기원전 3세기 아르케실라오스가 활동할 때였다. 기원전 86년에 로마에 의해서 아덴이 침략당하고 아카데미 건물이 파괴되자 이 학파의 연속성이 단절되었다. 그러나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아스카론의 안티오코스에 의해서 “신 아카데미”로 갱신되었다. 이 학파는 회의론적 국면에 반대하여 플라톤의 초기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스토아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유래하는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아덴에서 안티오코스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기원전 79년 소아시아를 여행 중이었던 키케로도 있었다.
두 번째의 국면은 플라톤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에 기초를 둔 학습제도인데, 이는 아덴에 연고를 둔 아카데미의 학습 전통과 구별하기 위해서 “중간 플라토니즘”이라고 일컬어졌다. 이것은 플로티노스가 소위 신플라토니즘을 시작하기 전, 초기의 황제 시절에 이루어졌다.9) 이 중간 플라토니즘에 대해서는 이미 플푸타르코스가 누구보다도 기원 2세기 서머나에서 가르쳤던 알비노스가 언급했다고 보았다. 알비노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 그 어떤 상충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이 양 철학자 사이의 관계를 판단하는 것인데, 이 판단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여러 관점에서 분명히 플라톤으로부터 독립적인 제자로 파악했으며, 또한 후기 고대에서 만연했던 정서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결국 고대 플라토니즘의 발전에서 세 번째 국면에 돌입한 신플라토니즘은 기원후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암모니우스 사카스에 의해서, 특히 그의 제자로서 244년에 로마에서 자신의 학교를 세운 플로티노스에 의해서 기초가 닦였다. 플로티노스의 작품들은 그의 후계자인 포르피리오스에 의해서 간행되었다. 이상을 이성(Nus)에 포함시켜서 최고 원리로서의 일자(das Eine)를 이것과 구별하는 플로티노스의 가르침은 그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410년 이래로 아덴으로 옮겨갔다. 그곳에서 5세기 까지 플라톤의 가르침을 기독교와는 상반되게 해석하는 전승이 이어졌다. 플라토니즘의 마지막 중요한 대표자는 프로클로스(Proklos, 485년 졸)였다. 플라톤학파는 529년 유스티니안 황제에 의해서 문을 닫았다.
이제 앞으로는 이 주제를 수용한 기독교의 입장에서 플라톤 철학을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 언급되어야만 한 실제적 사안들이 심사숙고되어야만 할 문제들이지만 여기서는 플라톤의 사상과 그 발전의 근원에 대해서 질문하지는 않겠다. 여기서 다루어져야 할 관점은 오히려 플라톤 철학의 어떤 주제들이 도대체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그것에 가까이 가도록 기초를 놓았는가에 대한 질문이어야만 한다. 즉 첫 번째로 의미심장하게 플라토니즘적인 신론이라 할 세 주제 묶음을 다루고자 한다. 말하자면 플라톤의 시각에서만이 아니라 고대 플라토니즘에서 이 주제가 매우 복잡하게 연관된 역사적 영향 안에서 보고자 한다. 두 번째로는 기독교 신학에서 유별나게 중요하게 부각된 생명 사상이 다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생명 사상은 하나님과의 동화를 말하는데, 영혼(Seele)에 대한 플라톤의 학설에서 전제된 것들과 더불어서 언급될 것이다. 세 번째로는 기독교 신학이 어떤 점에서 플라톤 사상에 결정적으로 자극을 받게되었는가 하는 질문인데, 이것은 결국 인식론과 은총론의 연관에 대한 언급을 가리킨다.
이 모든 세 가지 주제 묶음에서 플라톤 사상과 기독교 사상의 접촉점만이 아니라 그 대립도 한결같이 언급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주제 묶음에 속한 인간론적 기초 부분에서 그렇다. 플라토니즘의 기독교적 수용 과정이 처음부터 얼마나 긴장감 넘치게 수행되었는지에 대해서 지적될 것이다. 플라톤 학설이 기독교에서 변형되었다는 결과는 이 장의 네 번째 절에서 다루어질 것이며, 그 다음으로 다섯 번째 절에서 플라톤의 사상적 동기가 기독교 중세기와 근대 사상에 작용한 폭넓은 역사를 검토함으로써 이 장을 마감할 것이다.
1. 하나님에 대한 사상과 플라톤의 원리론
왜 초기 기독교 사상은 2세기 이래로 고대 철학의 다른 학파 보다는 이 플라토니즘에 훨씬 접근했을까? 이 질문에 대답은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플라톤 철학이 기독교 신학에 매혹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같은 헬라니즘적인 유대인에게도 역시 매혹적이었는데, 우선적으로 가시적인 세계와 상이한, “영적인” 한 하나님이라는 사상에서 출발한다. 이 하나님은 당연히 이 가시적인 세상의 원주인을 말한다. 2세기 헬라-로마 교양세계에서 여전히 지배적인 철학 방향인 스토아학파는 하나님을 질료적 세계에 내재하는, 또한 그 세계에 영혼을 불어넣는 로고스로 생각했다. 스토아 철학은 하나님의 섭리를 가르쳤다. 그러나 이런 섭리에 대한 표상은 그들 스토아 학자들이 세계를 초월한 신성을, 그 세상과 완전히 자유롭게 대립해 있는 신성을, 또한 그 신성을 통한 세상의 창조를 결코 알고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운명 사상과 깊숙히 연결되어 있었다. 이와 달리 에피큐로스 학파는 섭리 사상이나 운명 사상과 논란을 벌임으로써 신들은 완전히 자신들의 환희를 즐길 뿐이지 세계와 인간을 염려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플라톤주의자들은 영원하고 영적인 본질로서의 하나님을 질료적 세계와 구별했다. 이들은 스토아학파에 의해서 발전된 섭리 사상을 영적이며 세상 초월적인 하나님 사상과 묶었다. 이를 통해서 여러 면에서 창조자 하나님이라는 성서적 표상에 근사한 하나님 이해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창조 사상을 플라톤 철학에서 재발견할 수 있었다. 플라톤이 쓴 티마이오스와의 대화편(編)은 플라톤의 의미에서 “신화적인”, 또한 시적인 형태를 갖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이야기는 형태를 갖추지 못한 재료로 가시적인 코스모스를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즉 데미우르고스에 의해서, 신적인 세계 창조자에 의해서 원소로 채워진 공간이 만들어졌다고 말이다. 이런 이야기는 기독교나 유대교 사상가들을 중세기까지 계속해서 깜짝 놀랄 정도로 성서의 창조 이야기를 기억나게 함으로써 플라톤 사상과 성서 사상 사이에 있는 차이와 대립이 간과될 수 있었다.10)
어거스틴은 그의 주저인 <신국>(神國)에서 플라톤의 하나님 표상이 기독교 신학으로 하여금 이 철학에 대해서 특별히 가깝게 여기게 한 비상한 근거가 있다고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플라톤주의자들에게 대해서 이렇게 언급했다. “... 그들은 하나님을 결코 육체로 보지 않았으며... 뿐만 아니라 급기야는 변화될 수 있는 모든 것은 지고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보았다.” 하나님은 불변이기 때문에 바로 존재하는 분임에 틀림 없다고 말이다.(Ⅷ,6). 이러한 조화 때문에 어거스틴은 이방인의 하나님 인식에 관한 사도 바울의 로마서1:19절 말씀을 특별히 플라톤주의자과 연계시켜야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도록 계시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생성된 것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있는 불가시적인 것을 인식했으며, 또한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바라보았다.”(a.a.O.). 어그스틴은 이렇게 자기의 생각을 확정했다. “플라톤주의자들 만큼 우리에게 친근한 철학자는 그 어디에도 없다.”(Ⅷ,5). 어거스틴이 뒷부분에서 설명한 것처럼 플라톤주의자들은 그 표현에서는 문제가 없지 않았지만 삼위일체를 느꼈다. 또한 은총 사상도 역시 그들에게 낯설지 않다. 그들은 다만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점만을 몰랐다.(Ⅹ,29).
어거스틴은 플라톤주의자들에게 삼위일체에 대한 느낌이 있었다는 것을 신플라토니즘의 기본학설에서 발견했는데, 말하자면 일자, 즉 이성(Nus)과 질료적 세계를 움직이는 세계영혼이 세 단계의 계급을 갖고 있다는 그 사실에서 말이다. 단계적으로 구분된 일자를 기독교의 신론에서 아버지, 아들(로고스), 성령과 세 단계를 유비적으로 보았다는 것은 사실상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고대 교회에서 우선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예수의 관계를 당연하고도 기독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삼위일체론의 발전은11) 플라토니즘의 기본 학설이 걸어온 역사에서 한 분파로 파악될 수 있다.12) 플라톤 자신에게는 사실 신플라토니즘의 기본학설을 발전시키려는 단초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플라톤이 티마이오스에서 설명한 데미우르고스의 형태만을 집착한다면 결국 기독교의 후기 삼위일체론적 신론와 그 어떤 연관성도 인실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데미우르고스는 기독교 신학에서 구약성서의 창조자 하나님과 유비적 관계를 갖기 때문에 유달리 중요했다.
티마이오스의 데미우르고스는 신플라토니즘과 기독교에서 신적인 것이 세 형태로 규정되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플라톤의 데미우르고스를 구약의 제사장 문서에 나오는 창조자 하나님과 구별하는 과정에서 그 물꼬가 트인다. 데미우르고스는 형태화되지 않은 재료를 형태화하기 위해서 그것에 상대해 있는 게 아니라 영원한 원조성자를, 가시적인 코스모스의 전형이라 할 이데아를 바라본다.(Tim 28 c 5-29, 특히 29 a 3). 플라톤이 이미 파이돈(Phaidon)에서 묘사한 대로(78 참조) 이데아와 조성 중에 있는 참된 세계 사이의 대립은 그가 티마이오스에서 데미우르고스를 통해 가시적으로 형태화된 세계를 설명하는 기점이다.(27 d 5-7).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은 근원적으로 아르테(artè), 즉 어떤 사물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질문을 뜻한다. 이 형태는 본질적인 것을, 그리고 “모든 것을 묶고 모으는” 그 원인자를 존재하게 함으로써 사물에 선한 것(das Gute) 것이다.(Phaidon 99 c 5f.). 이러한 “묶음”과 “모음”의 기능은 개인적인 선을 공동의 선과 결합하는 데에 있다.(98 b aff.). 소크라테스는 이 두 요소를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 이런 이유에서 플라톤이 왜 이 선만을 이데아 중의 이데아로, 모든 이데아의 공동 본질로 볼 수 있었는지가 분명해진다. 이 선은 파이돈의 사용 번경을 언급하기 위해서 이데아의 전체 왕국을 “묶고 모은다.”(Staat 508a-509b를 비교할 것).
아르테 사상에 근원을 두고 있는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은 율리우스 슈텐쩰에 의해서 수미일관되게 묘사되었다. 아르테라는 단어가 “그리스에서는 오히려 ‘덕’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리스인들과 플라톤은 모든 본질과 대상의 아르테에 대해서 언급한다.(Ataat Ⅹ, 601 d). 정말 중요한 점은 우리가 칼이나 무기의 ‘쓸모’와 ‘선’에 대해서 말하는 것처럼 한 사물의 상승된 능력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라, 특수한 실행을 ... 수행할 수 있는 유용성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즉 사유될 수 있는 그 유용성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 본질만이 자신의 아르테에 결정적으로 자리한다.”13) 아르테 개념과 연결되어 있는 상승의 순간은 타입을 얻으려고 상승하는 의미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고르기아스 503 e에 에이도스(eidos) 개념이 “아무 강제 없이” 등장한다. “이것을 규정하는 것은 모든 사물의 ‘본질’로 인식하는 것인데, 이것이 ‘선’한 것이다.”14)
우선적으로 아르테에서는 인간의 본질이 중심이다. 즉 폴리스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상관 안에서 공동적 존재로 살아가는 개인의 본질이 말이다. 덕과 대립한 도덕적 악의가 “영혼의 본질을 부정한다면”15)덕은 영혼의 본질을 실현한다.16) 이것은 우선적으로 정의의 총괄이라 할 덕의 문제로서 “자기의 의무와 권한을 다한다”는 뜻이다.(Staat 433 e 12f.). 세 몸체에 뿌리를 둔 인간의 영혼은 세 부분으로 나누이는데 그 한 부분이 덕이다.(Staat 437ff.를 비교할 것). 머리에 속하는 이성은 그 권리를 다함으로써 지혜를 완성하게 된다. 가슴에 해당되는 마음은 용기를 완성하며, 배에서 작용하는 열망은 이와 달리 절제를 완성한다. 폴리스에서 살아가는 세 계급은 -경영자, 군인과 도시의 “고문 및 감독”, 통치자- 한 개인의 세 가지 영적 영역과 상응한다. 이 세 계급은 도시에서 특별한 덕을 갖추고 있다.(441 c ff., 369 b-376 d와 비교할 것). 따라서 인간 본질의 실현은 개인으로, 그리고 정의 개념을 통해서 폴리스의친교 안에서 요약된다.
슈텐쩰의 생각에 따르면 참된 실질에 대한 이데아는 당연히 윤리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며, 그런 틀 안에서는 역시 아무 문제가 없다.17)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을 비판할 때18) 말했던 것처럼 사물의 이데아와 참된 실질 사이에 개재한 “분리”(chorismós) 문제는 우선 이데아 개념의 보편화를 통해서,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에이도스를 보편 개념으로 파악하고, 또한 공동과 보편에 대한 표현으로 파악함으로써 현상 가운데서 다층적으로 생기한다. 당연히 코리스모스의 근원적인 동기는 영원을 시간적으로 변화하는 것과 대별하기 위해서도 모색될만 하다.19)
파이드로스의 大신화에(Phaidr 246 a 3-250 c 6) 보면, 불변의 존재자인 이데아는 신들 스스로 그들의 신성을, 즉 그들의 영원성을 나타낼 수 있는 그 방식으로 그 특색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참된 것을 인식함으로써 신적인 이성이 자라나기 때문이다.(247 c f.). 이런 연관 속에서 신화는 티마이오스에 나오는 데미우르고스에 대한 묘사와 일맥상통한다. 티마이오스에는 이르기를, 코스모스가 창조될 때 “이 모든 세상 만물의 원인자와 아버지”는(Tim 27 c 3f.) “무상하지 않은 것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29 a 3). 이로써 가시적인 사물의 형태(idea)에 대한 이데아(paradeigmata)는 아주 확실하게 생각되었다.(28 a 7 f.). 그리고 데미우르고스는 플라톤 학파 안에서 정당하게 신적인 이성과 일치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플라톤의 사색집 필라보스에 따르면 이성은 “하늘과 땅에 속한 왕이며”(Phil 28 c 7f.), 그리고 “모든 것을 질서 있게 통치한다.”(d 8f., e 3).
이로써 신플라토니즘의 세 원리 중에 중간이라 할 신적인 이성(Nus)은 플라톤의 고유한 학설로 소급되어서 이데아와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이 원리의 세 번째 항목이라 할 영혼(seele)이 이에 상응해서 거론된다.20) 이 경우에 우선적으로 “세계 영혼”을 생각해야만 한다. 이 세계영혼은 -티마이오스가 제시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상존하는” 하나님이 “되어가는 하나님”(Tim 34 a 4f.), 즉 코스모스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34 b 3 f.). 그러나 그 세계영혼 자체가 가장 오래된 피조물이며(34 c 4f.), 가시적인 코스모스를 통치하는 게 틀림없다.(c5). 세계 영혼에 대한 플라톤의 표상은 플라톤이 코스모스를 전적으로 영혼이 담긴 생물로 생각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Tim 37 c d). 이것은 다시금 모든 육체적 운동이 그 근원인 영혼을 향하고 있다는 플라톤의 생각과 연관되어 있다.(Phaidr 245 d f., Gesetze 891 c-899 d를 비교할 것). 왜냐하면 모든 육체적 운동은 그 운동된 육체와 구별된 근원을 갖고 있지만 영혼만이 스스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스로 움직이는 영혼은 모든 육체적 운동의 근원이다. 또한 모든 코스모스의 운동에는 영혼의 원리가 요청된다는 사실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것은 한 측면에서는 세계영혼의 형태에서 표상되었으며, 다른 한 측면에서는 하늘의 육체에 영혼을 불어넣어 그 운동을 불러내는 영혼의 전적인 형식에서 표상되었다. 이는 곧 천체의 영혼이거나 신들로서 표상되었다는 뜻이다.(Gesetze 899 b). 이 경우에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는 세계 영혼만이 아니라 그 이외의 신들도 역시(Tim 40 a, 41 a f.) 데미우루고스에 의해서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Phaidr 245 d f., Gesetze 896 a) 이것이 시작 없이 활동한다. 이처럼 바로 이 점에서 플라톤주의자들의 해석이 다양하게 나누였다. 가장 타당한 해결책은 누스와 연결된, 시작이 없는 영혼을 질료와 연결되어 있는 영혼과 구별하는 견해였다.(Gesetze 897 b ff.). 이 영혼도 역시 신적인 것과 신적인 근원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만물의 세 원리론이 등장했다. 즉 누스, 이데아, 영혼이다. 이것은 신플라토니즘의 등장에 앞서 플라론 학설의 전승을 특색화 했다.
플로티누스는 이 세 구조 중에서 한 가지를 대체했다. 그는 일자, 누스, 영혼를 -이런 순서에 따라서- 가시적인 코스모스의 신적인 근원이라고 보았다. 이 경우에 이데아는 더 이상 고유한 요소를 등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누수의 표상과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인식하는 자와 인식되는 대상은 불가불리 서로 속해 있는 상관개념이다. 이에 대해서 이제 구분 없는 일자가 제일 근원인 누수를 극복한다. 이 누수의 영역은 인식하는 자와 인식되는 대상 사이의 차이점을 통해서 특징이 나타난다. 플라토 학설이 플라톤에게 소급되어 계속 형성되어 나갈 수 있을가?
플라톤은 그의 마지막 시기에 -어쩌면 이미 자기가 가르치고 있을 때였는지도 모르지만- 자기의 학설을 세계 유래에 대한 소위 수학 이론을 통해서 간단명료하게 요약해보려고 하였다.21) 제일 근원은 단일성이다. 이 단일성으로부터 곱셈을 통해서 모든 수가 형성된다.(Phl14 c ff.). 수는 이데아와 상응한다. 이 경우에 모든 수는 “많음”이나 “적음”을 통해서 그 나머지와 구별된다. 각각의 수는 곧 본질적이다. 왜냐하면 수는 더 많거나 더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구체적인 수는 “많음”과 “적음”의 불분명한 배경에서, 즉 “불분명한 이중성”(aóristos dyas)에서 등장한다. 후자는 형태를 이루지 못한 재료에 상당한다. 이 재료에서 티마이오스의 데미우르고스는 모든 것에 형태를 주었다. 그러나 각기의 모든 수가 일(一)의 배수만이 아니라 오히려 수를 단일화 시킴으로써 모든 것을 출현하게 하는 단일성은 일자(一者)인 선에 해당한다. Staat(508 a ff.)에 의하면 이 선은 이데아 중의 이데아다.22)
이제 일자가 선과 동일하듯이 누스와도 역시 동일한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플라톤 학파 안에서 이미 일찍부터 상이한 생각들이 있었다. 아카데미의 제 2세대 지도자라 할 크세노크라테스(기원저 314년 졸) 같은 이의 생각이 벌써 그랬다. 그는 더 나아가서 이데아를 투스에 상관 없이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했을 뿐만 아니라 신적인 누스 자체 안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했다.23) 이런 견해는 후에 알비노스에 의해서 갱신되었으며,24) 그 다음에 플로티노스에 의해서 계승되었다. 이것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이 융해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일보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비판한, 그 유별난 이데아의 실존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인해서 해결되었으며, 또한 다른 한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식을 누스인 신성이라고 간주했는데, 이 인식이 순수한 자기 인식에서(Met 1074 b 33-35) 벗어나서 사물에 구체적으로 실현된 에이데(eidé)의 원상(原象)인 이데아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플로티노스는 누스와 이데아의 상호 관계성에 포함된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의 이중성으로 인해서 일자를 누스의 영역에서 구분했다.25) 사실 일자는 자기의 이데아를 인심함으로 자기 자신을 인식하며, 또한 거기서 자기와 하나가 됨으로써 누스 안에 현재 한다. 그러나 누스는 일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누스는 인식하는 자와 인식되는 자 사이의 형식적인 차이를 자기 안에 갖고 있기 때문에 일자가 아니다. 물론 이 차이는 자기 외부에서 자기의 다른 점을 갖고 외부를 지향하는 영혼의 단계에서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영혼이 상이한 것을 수집하는(Logos) 것으로만 이 누스의 단일성을 자기 안에서 실현하게 된다.26) 이에 따라서 상이한 것들이 서로 나누는 것과 더불어 단일성으로 모으는 것의 형태인 시간27)은 영혼에 속하게 된다.
코스모스를 완전히 지배하는 스토아적인 로고스와 세계영혼에 대한 플라토니즘적 표상의 연결은 로고스를 이데아의 총괄개념을 생각한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에게서 이미 나타난다. 이런 사상은 2세기의 호교론자들 이래로 기독교 신학자들에 의해서 요한복음의 로고스 개념을(요한복음1:1-14) 예수와 아버지의 관계에 대한 특징으로 해석하기 위해서 전수되고 보다 넓게 확장되었다. 초월적인 하나님의 이성으로부터 로고스의 출현은(잠언8;22절 이하에서 볼 수 있는대로 하나님의 지혜와 상응하여) 로고스 기독론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이 기독론은 예수를 아버지와 일치시키지 않고도 그를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기독론적인 사유를 가능하게 했다. 이 경우 기독교 교부신학에서 로고스는 스토아학파의 우주론과는 달리 세계를 초월하는 능력이 되었다. 로고스는 플라톤의 세계영혼과 구별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에 어울린다. 비록 하나님의 영이 로고스처럼 창조로부터 피조물과 함께 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말이다. 기독교 삼위일체론에 해당되는 바는 그것이 일자, 누스, 세계영혼이라는 플라톤의 세 원리처럼 가시적인 세계로 넘어가는 단계를 이루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자유롭고 창조적인 근원으로 유한한 사물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다른 한편으로 그 유래와 과정에서 유한한 사물로 이루어진 이 세계는 영혼의 한 “경우”에 따라오는 결과를28) 근원적인 일자가 아니라 창조적인 실행으로부터 받아낸다. 그리고 그것은 근원으로부터 독립적인 현존에서 볼 때 선하다.
이 차이점들은 신플라토니즘의 사상과 기독교 신학 사이의 다른 점과 연관되어 있는데, 베르너 바이어발테스에 따르면 이런 특징은 근본적인 것이다. 플로티노스에게는 “자신을 계시하는 하나님이며, 근거와 근원이면서 동시에 시초(das Erste)이며 일자로서의 하나님은 생각할 수 없다.”29) 만약 창조자 하나님인 성서의 하나님이 자기를 계시하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숙고하게 된다면 그 연관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창조자로서의 하나님은 피조물을 자기 자신과 친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님 이해에서는 삼위일체론적 인격의 상호적 열림이 서로 간에(그 위격의 관계적 성격을 통해서) 그것에 기초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플로티노스가 생각하는 누스의(그리고 영혼의) 일자는 그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하는 것이지 타자를 찾아 나서지 않는다. 왜냐하면 “존재와 사유의 ‘피안’에 ‘존재하는’ 순수한 일자 개념으로부터..., 다원과 운동을 필요로 하게 될지도 모르는 모든 다름이 제거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타자를 향해 방향을 잡는 것이 말이다.30) 이에 따라서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적 사유는 단일성과 다원성의 관계에서, 또한 단일성에 대한 사상에서 플로티노스를 뛰어넘어 극복해 나갔다.31) 무엇보다도 서구 기독교 신학에서 플라톤의 누스 개념은 이를 위해서 일종의 단초를 제공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영으로 언급하는 요한복음의 말씀(요한복음4:24)에 토대를 둔 것이다.32)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이 자의식에서 자신을 대상화한다는 사상에 기점을 제공한다.33) 헤겔과 쉘링에게 까지 영향을 끼쳤고, 또한 그들을 뛰어넘어 서구 기독교의 사변적 신론을 각인한 이 논증은 확실히 플로티노스의 입장을 배경으로 해서 중간 플라토니즘의 신론에 빠져들었는데, 이 신론은 신적인 누스를 시초로 생각했으며, 이로써 누스가 이미 자의식에 포함된 다원 때문에 첫 일자일 수 없다는, 더구나 이것을 전제해야한다는 플라티노스의 이의를 자극했다. 플로티노스와의 논쟁에서 결정적인 문제는 이와 달리 이러한 것으로서의 일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단초들은 디오니시오스 아레오파기타에게서 발견되며, 그 후에는 요하네스 에리우게나에게서, 그리고 특히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에게서 발견된다.34) 그 배경에는 일자 사상을 중심으로 한 고유한 변증법이 놓여 있는데, 이 사상은 플라톤이 파르메니데스와의 대화에서 발전시켰던 것이다. 즉 일자는 존재한다. 그러나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말하자면 규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것은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으로부터 구별되어 있다. 플로티노스는 일자가 누스를 통해서 타자에게서 자신을 알아챈다는 사상을 통해 이 양자의 전망을 일자의 개념 안에서 묶었다.35) 물론 티어리와 쿠자누스의 삼위일체론적 사변에서는 일자의 동등성(aequalitas)이 단일성 사상에 있는 구성적인 순간이라 할 타자 안에 있는 자기를 인식함으로써 자기 자신 안에 부가되었다.36) 이런 사상은 기독교 삼위일체론의 형식화된 표현으로, 또한 동시에 신적인 단일성을 좀더 근사하게 규정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즉 삼위일체성은 단일성에만 묶여있는 게 아니라 절대적인 단일성을 규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대한 기독교의 통찰은 단일성 개념 안에 있는 구별된 순간들 사이에서 삼위일체 교의에 상응하는 aequalitas(동등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신플라토니즘의 단계법칙을 벗어나게 되었다. 사실상 이것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들이 아버지와 동질(Homousi)이라는 선언이 있은 다음부터 이미 삼위일체론 교의에 해당되었다. 4세기에 그렇게 오랫동안 논의를 걸쳐서 이런 언설에 도달하게 된 것은 공연히 그런 게 아니다. 신적인 실체의 본질적 단일성이 플라토니즘의 사상적 훈련을 받은 사상가들에게 불가능한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주장은 그 다음 세기에도 역시 삼위일체 하나님의 단일성에 대한 기독교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사유에 의해서 어느 정도 추구되었다. 그 안에 전제된, 그리고 플라토니즘적 파르메니데스가 생각하듯이 일자가 자기의 타자와 단일하다는 논의 안에 전제된 본질과 관계의 단일성은 이와 달리 후대 사람들이 그것을 발견할 수 있도록 위임되었다.
2. 하나님을 닮아가는 생명관념
신론과 또한 그것에 묶여 있는 기독교 신학의 주제들 가운데서 아주 확실한 의미를 획득한 제2 플라톤 사상의 범위는 하나님을 닮아감(Homoiosis Theo)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인간이 살아가는 태도의 목표로 드러났다. “하나님을 닮아감”이라는 표현 양식은 플라톤에게는 다층적으로 나타난다. Politeia 마지막 책에서 이렇게 일컬어지고 있다. “... 정의로워지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그리고 신을 닮아갈 정도로 덕을 실천하는 사람은 신들에 의해서 버려지지 않는다.”(Staat 613 a 4-b 1). 인간은 덕을 실천함으로써 어느 정도나 신을 닮아가는가? 이에 대한 답변은 같은 폴리테이아의 여섯 번째 책에 나온 대로 철학자들의 생활태도에 대한 한 단어에 담겨 있다. “신적인 것들과 조화된 것들(kosmios)을 추구하는 사람은 당연히 조화로운 인간이 되며, 인간에게 가능한 만큼 신적인 상태에 이른다.”(Staat 500 c 9f.). 신들이 그 본성상 불변적이며, 또한 영원한 이데아를 직관함으로써 그 불변성을 “유지하는” 것 처럼,(Phaidr. 247 d 3f.) 인간도 역시 덕을 통해서 항상성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죽어야 할 인간의 숙명 가운데서 악이 여전히 준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 악으로부터 가장 신속하게 달아나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이 길은 가능한 대로 신을 닮는 것이다. 인간이 통찰로써 정의로워지고 경건해질 때 이렇게 신을 닮아가게 된다.”(Theait 176 a 5-b 2).
어거스틴은 이러한 삶의 이상을 만물이 선을 추구한다는 플라톤 사상과 연계시켰다. 그렇다면 플라톤의 학설에 따르면 -그리고 어거스틴에게도 마찬가지이지만- 하나님은 바로 선과 동일시되는 것인지. 플라톤에 따르면, 어거스틴도 그렇지만, 최고의 선은 “신을 인식하고 닮아가려고 애를 쓰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그리고 이런 근거에서만 사람은 행복하다.” 따라서 플라톤은 노골적으로 이렇게 했다는 것이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본성상 비육체적인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De civ. Dei Ⅷ,8).
호모이오시스 테오라는 사상 가운데서 고대 기독교는 인간의 생활태도의 기독교적인 이상만을 재발견한 게 아니었다. 이 이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에서 실현된다고 보았다. 인간이 자기의 삶을 실행할 때 하나님과 일치한다는 것은 늘 거듭해서 호모이오시스 테오라는 전형에 따라서 해석되었다. 이런 해석은 오리게네스, 사모사타의 바울,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에게서 발견된다.37) 예수의 의와 덕은 아주 거대해서 결코 흔들림 없이 선을 획득했으며, 여기서 불변하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 예수의 부활과 부활한 자의 무상하지 않은 생명은 이 사실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호모이오시스 테오라는 사상이 고대교회 신학에서 차지하는 중차대한 의미는 구약 성서의 헬라어판(LXX)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창조되었다는 말씀을(창세기1:26) 인간이 kathʼ eikona kai homoiosin theou(불가타역: secundum imaginem et similitudinem Dei) 창조되었다고 번역했다는 점만 보아도 분명하다. 히브리어 demuth를 헬라어 homoiosis로 번역한 것은 히브리어zelem을 헬라어 eikon으로 번역한 것과 더불어서 성서 번역에서 어쩔 수 없이 가미된 플라톤의 색깔이다. 이것은 곧 플라톤이 생각한 호모이오시스 테오라는 의미에서38) 인간이 신적인 원상의 모사로서만이 아니라 전진적으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으로 규정된다는 의미이다. 이 문제가 이레네우스에게서는 다음과 같이 진술된다.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은 지속성과 영원성을 의미한다. 영원성은 불변성의 명예이다. 이러한 질서, 하모니, 태도를 통해서 창조된 인간은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된다. 아버지가 그것을 원하시고 결정했으며, 아들은 그렇을 움직이게 하고 형성하며, 영은 영양을 주고 키운다. 그래서 인간은 점진적으로 앞으로 전진하며 완성된다. 말하자면 창조되지 않은 이에게 완전히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창조되지 않은 이, 즉 하나님이 곧 완전한 분이다. 그러나 인간은 우선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그런 다음에는 자라고, 강해지고, 배가되며, 회복되고, 영화스러워져서, 결국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직관한다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목적이며 불변성의 근원이다. 이 불변성은 우리를 하나님에게 가까이 이르게 한다.”39)
여기서 인류사적인 진보 전망이 열린다. 바로 이 점에서 플라톤이 말하는 호모이오시스 테오에서는 아직 볼 수 없는 새로운 순간이 이레네우스에게서 발견된다. 왜냐하면 플라톤에게는 이런 양식이 다만 개인과만 연관되기 때문이다. 아마 이레네우스는 인간사에 대한 확대가 호모이오시스 테오라는 사상을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고린도전서15:45 이하)에 대한 바울의 구별화와 차별화에 연결시킨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인간론과 기독교의 연결에서 이레네우스에게 이처럼 중심적으로 작용한 생각은 무엇보다도 인간이 창조될 시초부터 근원이었던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 안에 나타났다는 것이다.(고린도후서 4:4; 골로새서1:15 참조). 이 생각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서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이 번역 때문에 호모이오시스(homoiosis) 개념을 통해서 전진적으로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바울 사상을 이해하는 데 분명히 작용했다. 이는 곧 인류사적인 전망을 획득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레네우스의 역사신학적 착상에서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삶의 경건적 이상으로서도 역시 플라톤의호모시오시스 테오는 고대 교회에서 결코 지나체게 과대 평가되지 않았다. 이것은 특별히 기독교 신비주의에게 해당된다. 니사의 그레고르는 아주 특별하게 인상 깊은 방식으로 찬양집 해설을 설명함으로써, 더구나 모세의 생애에 대한 그의 저서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특히 후자의 저서에서 플라톤의 에로스 사상에 대해 호모이오시스 테오의 기독적 해석의 접근이 이루어졌다. 플라톤은 에로스에서 영혼을 호모이오시스 테오 방향으로 고무시키는 힘을 보았다. 이것은 플라톤이 자기의 심포지움에서, 혹은 더 바람직하게는 파이드로스의 大신화에서 설명하고 있는 바이다. 이 대신화에서는 기억, 에로스, 그리고 참된 존재자들의 영원한 세계를 향한 영혼의 상승이 상호적으로 맺고 있는 연관성이 서술되어 있다. 즉 인간의 영혼은 모든 육체적인 운동보다 훨씬 “오래” 되었으며, 육체적이지 않으며, 그리고 그 영혼은 플라톤이 새의 비상이라는 상을 통해서 기술한 비육체적 가벼움을 늘 유지하면서 신의 세계에 연결된 몸에서 이데아를, 즉 신들이 그 신성과 불변성을 부여받게 되는 불변적인 진리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플라톤의 계속된 논리에 따라서, 인간 영혼은 “깃털”을 잃었으며, 플라톤이 약간 다른 방향에서 영혼의 “감옥”이나 “무덤”으로 묘사할 수 있었던 “지상의 몸”에 빠져들고 말았다.(Krat 400 b f.). 이런 상황에서 영혼은 지상에서 무엇인가 아름다운 것과 조우한다면 지상에 태어나기 전에 신의 세계에서나 본 아름다움을 기억한다. 그리고 영혼은 “아름다움을 소유한 이를 조망하기 원하는 곳으로 그리움을 가득 안고 급하게 달려갈 것이다.”(Phaidr 251 e). 이처럼 기억(Anamnesis)은 사랑의 열망을, 그리고 아름다운과 연결되어서 몸의 아름다움을 뛰어넘고 아름다움 자체를 향해, 즉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향해 나아가는 에로스를 환기시킨다. 플라톤에 의하면 모든 인식은 에로스에 의해서 견인된 자기 기억에 기인하는데, 자기 기억은 지상에 태어나기 전에 본 존재자들의 진리와 직면해 있는 것이다.
니사의 그레고르는 모세의 생애라는 자기의 저서에서 이러한 플라톤의 사상을 모세와 하나님의 관계로 옮겨 적었다. 하나님을 보게해 달라는 모세의 간구에 대해서(출애굽기 33:18) 이렇게 진술되어 있다. “이러한 것에 대한 경험은, 소위 하나님을 보고 싶다는 소원은 내가 볼 때 그 본성상 아름다움을 지향해야 할 영혼의 분명한 에로스적 구조가 일종의 조건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즉 이 희망은 이미 알고 있는 아름다움으로부터 그 위에 놓여 있는 것을 향해 이끌어간다. 이를 통해서 희망은 아직 은폐되어 있는 것을 향한 열망에 불을 지핀다. 이로써 아름다움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은 원형에 대한 마음이 가득차기를 갈망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각각 나타난 것들을 갈망의 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형벌(epithymia)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담한 간구를 불러오는데, 어떤 거울이나 환영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즐기는 게 아니라 직접적인 대상 안에서 즐긴다... .”40) 그레고르에게는 갈망된 것을 이렇게 확정적으로 바라보는 게 가능하지 않다. 상승은 끝이 없다. 그것은 수없는 단계를 넘어간다. 왜냐하면 니사의 그레고르는 고전 그리스 철학과는 달리 하나님을 무한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상응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상승의 비확정성이다. 물론 여기서 인간은 하나님의 무한성과 비슷하다. 그레고르에 따르면 이것이 유한한 본질 일반에 가능한만큼 호모이오시스 테오는 영혼의 생명과정에 기인한다.
플라톤에게서 에로스가 참된 존재자로 상승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영혼(Seele)이 이 지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불변적인 것을 거듭해서 바라보는 기억이다.(Anamnesis).41) 풀라톤의 경우에 이런 기억이 가능하려면 영혼이 근원적으로 신적인 것, 그리고 불변적인 것과 근사해야 한다는 데에 그 토대가 놓여 있다. 바로 파이드로스에서 이 영혼은 영원한 것이지 어디서 유래한 게 아니라고 서술되었다. 플라톤에게서 영혼이 신적인 것과 근사하다는 표상과, 그래서 영혼이 선재한다는 표상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기독교 신학에게 현저한 난점들이 부각되었는데, 일단 뒤에서 언급하게 될 영혼에 대한 변화 과정의 차이점을 제외하더라도 그렇다.
유스티노스는 트리폰과의 대화에서 자기가 참된 철학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결국 어떻게 플라톤 학설에서 그 동기를 획득했는지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그는 영혼이 신과 유사하다고 본 플라톤의 이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영혼이 그 본질상 하나님과 근사하다면, 유스티노스가 해변의 모래밭에서 만난 늙은 현자가 생각의 물고를 터주었던 것처럼, 영혼은 스스로에게서 이미 하나님에 대한 직관을 소유하는 게 틀림 없다. 그러나 사실상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피조되었으며, 따라서 신적인 본질이 아니다.42) 또한 영혼은 하나님에 대한 직관을 성령에 의해서 선물로 받을 뿐이다.43) 이런 근거에서 유스티노스의 제자인 타티아노스는 영혼을 그 본성상 죽어야 할 존재로 간주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과 하나로 묶여 있는 불가사성을 은총의 선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44)
유스티노스와 타티아노스는 바로 이런 점에서 플라톤이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 플라토니즘의 다른 활동 방식을 향해서, 즉 영지주의를 향해서 방향을 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지주의자들에 따르면, 특히 발렌티누스에 따르면 프뉴마(Pneuma)의 불꽃은 영혼의 본성에 속한다.45) 그는 물론 물질에 빠져든 “정신적인”(psychisch) 영혼과의 연결로부터 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영지주의 학설이 극단적으로 바울주의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바울주의는 선택사상을 일종의 인간론에 대한 기본적 규정이라는 존재론 가운데서 번역함으로써 “육체를 따르는” 삶과 “영을 따르는” 삶을 대립시켰다.(로마서8:4 외). 이에 따라서 두 종류의 인간이, 즉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이 있다는 말이 된다.46)
오리게네스는 인간을 두 영혼으로 구별하지 않고 단순히 육체적인 영혼과 영적인 영혼이라고 보았다. 즉 영지주의의 “극단적인 바울주의”를 반대하고 영혼의 단일성을 주장한 것이다. 이 단일성에 대해서는 플라톤이 이미 선재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여기서 오리게네스는 플라톤과 달리 영혼이 몸에 얽매이게 되는 것은 선재적인 영혼의 죄로 인한 결과이지 프뉴마가 사로 잡히게 될 그 숙명이 아니라고 해석했다.47)
후대에 이르러서 영혼이 옮겨다닌다는 플라톤의 학설만이 아니라 그 영혼의 선재성 표상도 역시 거부되었다. 이에 대한 근거는 다른 자리에서 언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일단 다음과 같은 사실만은 명확히 하고자 한다. 교부들이 플라톤 학설과 논의를 거쳐가는 과정에서 신론과는 달리 인간론에 대해서 아주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48)
3. 조명과 은총
기독교 신학자들이 신과 동등해지는 영혼의 영원성 학설을 거부했다고 해서 플라톤의 인간론을 전적으로 반대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는 곧 영혼의 직접적인 신성을 주장하는 유스티노스의 대안이 결국 플라토니즘적이라는 사실을 뜻한다. 이것은 미래에 완성될 세계에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직관할 수 있다는 것은 정의롭게 산 사람에게 주어진 값으로 보증된다는 명제이다. 이런 명제의 기초는 역시 호모이오시스 테오(homoiosis theo)라는 플라톤의 학설에 있다. 유스티노스에 따르면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는 능력은 인간 영혼의 본성에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은총에 기인한다. 즉 성령의 선물로 받게 되는 은총에 기인한다. 이런 사상은 유스티노스의 대화에서(4,1) 다시금 플라톤 식으로 해석되었다. 말하자면 조명을 통해서 인식에 이른다는 폴라톤의 생각이 화제로 대두된 것이다.49) 조명은 이데아를 인식하기 위해서 애를 써야한다는 플라톤의 생각에 따라서 인식의 순간을 강조하는 것이다.(편지7, 341 cd). 의미 세계에 있는 “예증”을 참작함으로써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도록 온갖 준비를 다 갖춘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결국 인식에 이르지 못한다. 오히려 이 통찰은 에로스로부터 견인되어 참된 것을 모색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그 상승의 마지막 순간에 아름다움에 대한 시야가 그를 “갑자기” 뛰어넘는 식으로(Symp 210 e4) 그에게 이루어진다. 인식 사건은 직관적이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인식은 인간 이성의 본성을 통해서도 언제 어디서나 확실하게 영적인 시야(Schau)를 뜨게 하지 못하며, 뿐만 아니라 이것은 인간의 수고에 의한 결과도 아니다. 인식은 오히려 “갑자기” 주어지는 일종의 시야로서 사람에게 찾아온다. 유스티노스는 이 시야를 “거룩한 영(Pneuma Hagion)으로 선언했다.”50)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기독교으로 하여금 참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게 만드는 이 조명 사건을 세례와 관련시켰다. 이것은 신비 언어라고 할 수 있지만,51) 그 배경에는 조명을 통해서 인식에 도달하려는 플라톤 학설이 놓여 있다. 그리고 역으로 세례 시에 성령이 부여된다는 생각과 조명 표상의 접촉은(히브리서6:4, 10:32, 에베소서5:14 비교) 믿는 자들에게 영이 은총으로 작용한다는 플라토니즘적 해석에 착상될 수 있었다. 오리게네스는 역시 명시적으로 기독교의 신인식론에서처럼 플라토니즘적인 조명 학설은 신의 은총이 작용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간 스스로에게서 발현하지 않는 그 무엇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52) 그는 이런 사상이 플라톤에게 뿌리를 둔 게 아니라 플라톤에 앞서 호세아에 의해서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첨가했다. 기독교인들은 이 사상을 직접 플라톤에게서 가져올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요한복음에서 발견하였다.
오리게네스는 조명 사상이 은총 이해 일반을 위한 핵심 개념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고전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생각은 바로 어거스틴의 은총론에서 분명해진다.53) 어거스틴은 인식에 관한 플라톤 학설을종명과 은총론을 통해서 조직적으로 상호 연계시켰다. 그는 이렇게 해서 세례받은 자에게 성령이 활동함으로써 하나님의 은총이 인간에게 작용한다는 표상을 인간의 삶 일반을 이해하는 데까지 확대했다. 어거스틴은 모든 인식이 신적인 조명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영혼이 진리 자체인 성령의 불빛에서만 사물의 이데아를(res intelligibiles) 인식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De trin. Ⅻ,15,24). 이 이데아는 하나님의 영 안에서, 즉 하나님의 로고스 안에서 원형적으로(urbildlich) 요약되는 것이지인간 영혼에 모사적으로(abbildlich) 각인된 것은 아니다. 영혼이 받아들이는 인상으로부터, 영혼이 지각하는 대상으로부터 일종의 기억이 발생한다.54) 이 기억은 모사적으로, 그러나 잊혀진 채 영혼(mens)에 놓여 있는 영원한 진리에 대한 것이다. 영혼의 방향전환(conversio)이 이러한 admonitio(회상)의 사건에 발생하게 될 때 조명은 신적인 진리의 빛을 통해서 일어난다. admonitio, conversio, inhabitatio Dei(하나님의 임재) 같은 단어의 개념들은 어거스틴의 은총론을 강화시킨다.55)
어거스틴은 모든 것을 창조한 하나님이 역시 “모든 인식을 불러오는 영의 빛”이라는 점에서 플라톤주의자와 일치한다.(De civ. Dei Ⅷ,7). 그렇지만 그는 영혼의 선재적 상태를 기억한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조명 사상을 아남네시스(anamnesis, 想起)론과 떼어놓는다. 어거스틴에게는 이 아남네시스 자리에mens(이성)으로서의 인간 영혼에 놓여있는 부지의 깨달음을, 그리고 모든 경험에 앞서 있는(선험적인) 이 깨달음을 각성시키는(admonitio) 개념이 등장한다. 이 각성은 하나님의 형상성 때문에 영혼과 어울린다. 다른 한편으로 플라톤의 이런 조명론은 어거스틴의 은총론과 연계됨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 영혼에서 활동하신다는 사실과 대단히 깊숙히 연관되었다.
서구 중세기 신학은 이러한 어거스틴의 기초 사상을 단지 부분적으로만 받아들였다. 왜하면 13세기에 기독교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등장함으로써 순수하게 세상적인 인식론 모델을 통해서 자연적 인식의 영역이 진술되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의 조명론은 은혜로운 신인식의 영역에 한정되었다.
4. 플라톤 학설에 대한 기독교의 방향수정과 변형
앞부분에서 이미 기독교 사상이 플라톤 학설을 비판적으로 수용해서 변형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여기서는 이제 이러한 수용과 변형의 과정에서 중요한 점을 다시 한번 요점적으로 설명을 할 텐데, 아마 보충적인 설명이 될 것이다.
플라톤 학설에 대한 기독교의 가장 초기 비판은 영혼의 신성에 대한 플라톤의 주장에 가해졌는데, 그 때가 2세기이다. 또한 개인의 육체적인 실존과 맞물려서 2세기 후반에 일련의 논문이 힘을 쏟은 기독교인의 부활 희망을 방어하기 위해서 가해졌다. 더욱이 초기 신학자들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 주장된, 일견 성서의 창조신앙과 비슷해 보이는 우주로부터의 유래설이 창조신앙과 다르다는 점을 점차적으로 뚜렷하게 인식해나갔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입장의 차이점은 매우 늦게 출현하게 되는데, 그 시기는 삼위일체론이 형성된 4세기 이후다. 그런데 이런 차이점들은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상이한 이해와 결부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관계는 2세기 창조론이 형성될 때 정리되었다.
성서적 창조 신앙이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와 가깝다는 사실은 이미 헬라-유대 사상에서 주목을 받았으며, 그런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여기서 창조는 Sap 11,17에서나 마찬가지로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에게서도56) 역시 피조물들이 이미 주어진 질료에서 형태를 얻은 것으로 이해되었다.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양식에 대한 최초의 증빙은(2.Macc 7,28) 세상이 “이전에는 없었다”는 점만을 말할 뿐이며,57) 따라서 티마이오스의 생각 대로 앞서 주어진 질료로부터 형태를 입었다는 사상이 제거되지도 않는다. 초기 기독교 호교론자인 유스티노스나 아테나고라스 같은 이들도 여전히 이와 비슷하게 생각했다.58) 특히 유스티아노스의 제자인 타티아노스는 첫 기독교 신학자로서 다음과 같은 자명한 입장을 취했다. 그 질료는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졌다고.59) 타티아노스의 이런 입장은 하나님 곁에 만들어지지 않은 두 번째 존재가 있을 수 없다는 유스티아노스의 명제를 따른 것처럼 보인다.60) 안티오키아의 테오필루스나 리옹의 이레네우스 같은 후대 신학자들은 주권적인 하나님의 의지가 창조의 유일한 근거라는 명제를 창조되지 않은 질표 표상에 대한 거부와 연결시켰다.61) 이것은 금후 善이 필연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낸다는 플라톤의 명제에 반대해서 creatio ex nihilo(무로부터의 창조)라는 교회의 학설이 되었다.62) 플라톤이 코스모스의 생산을 무시간적이라고 수미일관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코스모스의 시초부터 데미우르고스가 활동했다는 티마이오스의 표상이 다만 신화적 이야기의 문학적 형태에 속한다는 사실은 2세기에 아직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 없었다.63) 중개하는 원인도 없이 하나님의 행위인 창조 행위가 직접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64) 신플라토니즘의 가설론과 다른 점이 되었다. 신론과의 조직적인 연관이 바로 이 점에 놓여 있다. 하나님이 창조활동이 직접적이라는 이 기독교 명제는 그 외부를 향한 활동에서 삼위적 위격의 일치를 전제한다.
이미 앞서 언급된 것처럼(각주 27 이하) 기독교의 삼위일체론과 신플라토니즘의 차이는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를 상이하게 규정하는 것과 연계되어 있다. 제일 원리로부터 질료적 코스모스로 단계적인 상승이 이루어진다는 신플라토니즘의 기초개념과는 달리 창조사상은 창조자와 창조가 집적으로 마주한다는 표상을 포함시켰다. 즉 이 두 사이에는 소통의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구약성서의 하나님 이해이다. 이런 이해가 구약성서에 담겨 있다. 창조자와 창조의 맞상대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담긴 자유를 통해서 성격화 된다. 그런데 이것은 삼위일체론이 주장하는 신의 내적 차별화에 손상이 없이, 그리고 신플라토니즘의 입장에 따라서 영혼이 신적인 영역으로부터 가시적인 세계로 내려와 제일 근원과의 단일성을 잃어버린 것으로 간주되는 “타락” 표상과는 다른 뜻에서 그렇다. 제일 근원과의 단일성은 누스(이성)와 함께 함으로써, 그리고 영혼이 누스에 참여하는 단계에 들어감으로써 유지된다. 기독교 교리가 주장하는 “타락”은 신의 내부 영역에서가 아니라 피조 세계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유한하고 무상한 본질이 독립적으로 현존할 수 있도록 그 토대를 놓지도 못한다. 그 현존은 오히려 신의 창조적 의지의 대상이다. 이 대상은 피조물에게 그 현존을 갖게하는 하나님의 뜻에 연루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창조자 하나님의 인격성에도 연루된다. 또한 결과적으로 피조물이 하나님과 일치함으로써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그 의도에도 연루된다. 창조자 하나님의 인격성에는 다른 것에 대해 기울어지는 마음이 속하는데, 이 마음은 플로티노스가 말한 대로 순수 일자라는 사상과 결합될 수 없는 것이다.(앞의 각주 29를 볼 것). 이 경우에는 창조 사상을 전제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 전제는 이미 전술한 대로 아버지를 통해서 아들이 영원히 증거된다는 기독교 교리가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이해 가운데서 창조 행위로 생각되어야만한 것이다. 창조자와 피조물의 상대적 관계가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신적인 생명의 삼위일체적 차별화라는 조건 하에서 볼 때, 창조자의 뜻이 모든 삼위일체론적 위격을 공동으로 묶는다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여기서 신적인 본질의 단일성이 묘사된다. 아버지, 아들, 그리고 영이 나누일 수 없다는 이 단일성은 이 세 위격이 플라톤의 세계 영혼과 달리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적 상대성을 포괄한다.
피조물의 입장에서는 창조 신앙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되었다. 플라톤 사상에서 일자가 가시적인 세계로 미끌어져 들어간다는 것이 영혼을 고려하여 주장될 수 있었지만, 이제 창조 신앙에 의해서 그 어떤 피조물도 그 본성상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고 말이다. 피조물로서의 피조물은 창조자 하나님과 구별되었다. 피조물은 하나님과의 일치를, 그리고 영원한 생명과의 일치를 다만 은총의 선물로만 받을 수 있다. 이 경우에 인간 영혼의 피조성에는 역시 몸과의 연결도 포함된다. 이 연결은 오리게네스가 주장했듯이 영혼의 “타락”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인간을 육체적이며 영적인 본질로 창조하고, 그래서 그렇게 연결한 하나님의 창조 의지가 표현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몸은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영혼의 “감옥”이나 “무덤”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속한다. 다른 한편으로 영혼은 몸과 연결되어 있는 본질적인 그것인데, 영혼은 그 몸을 생기 있게 한다. 영혼은 플라토니즘의 견해와는 달리 출생과 죽음 사이의 길에서 역사적인 유일회성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에게 속해 있다. 이런 점에서 플라톤이 주장하는 영혼의 선재(Präexistenz)설은 대개의 기독교 사상가들에 의해서 -오리게네스는 제외하고- 거부되었는데, 영혼의 후재(Postexistenz)설에 대한 플라톤의 견해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일종의 후재설도 가르쳤다. 즉 영혼의 불멸성인데, 영혼이 전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러번 거듭해서 체화된다는 의미이다. 재체화론에 따르면 영혼이 다음 생명에서 더 좋은 몸을 얻는지, 아니면 더 나쁜 몸을 얻는지는 인간이 몸으로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에 달려있다. 그러나 영혼이 일련의 재생을 통해서 불분명한 방식으로 많은 다른 영혼이 되며, 또한 그에 앞서 많은 다른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게 인간, 즉 한 개인의 영혼에게 일반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그렇다면 개인에게 주어진 현재의 지상적 현존은 앞서 많은 다른 이들이 벗어놓았다가 새 것으로 갈아입는 일종의 옷보다 약간 나은 것이라는 말인가? 하나님의 창조 의도에서 주어진 영혼과 몸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기독교 교리는 각각의 인간이 살아온 역사에서 그 개인들의 개체성을 다르게 파악하고 판단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또한 이런 연결 가운데서 플라토니즘적인 틀과 다른 각도로 인간의 불사성에 대한 다른 표상을 발전시켰다.
영혼의 전이와 선재에 대한 표상을 거부함으로써 어거스틴은 플라톤의 상기(想起, anamnesis)론을 교정하게 되었다. 모든 경험에 앞서서 스스로, 그러나 본능적으로 사물의 이데아(res intelligibiles)를 알고 있는65) mens(영혼)에 대한 어거스틴의 사상이 이데아에 대한 출생 이전의 직관을 다시 기억한다는 표상에(Menon 81 c-d) 서게 된다. 이 사물의 이데아는 원형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영(Logos) 안에 집약되며, 모사적으로 볼 때는 하나님의 형상성으로 인해서 인간 영혼에 분배된다. 인간 영혼은 자기로부터 이런 것을 획득해낼 수는 없고, 오히려 외부적인 압박을 통해 중재된 자극(admonitio)과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신적인 진리의 빛을 통한 조명을 필요로 한다. 영혼의 선재 표상을 제거하기 위해서 플라톤의 상기론을 수정함으로써 어거스틴의 mens 개념은 인간의 의식에 아 프리오리(a priori)한, 그리고 모든 경험에 앞서 고유하고 분명한 인식을 파악하는 작업에서 후대의 선구가 되었다.66)
어거스틴은 영혼 전이에 대한 표상과 벌여온 기독교 사상의 논쟁을 보다 거대한 체계적인 상관성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영혼 전이에 대한 표상을 거대한 보편성 문제의 한 예로, 요컨데 세계사건의 과정에서 동일한 것의 주기적인 귀환을 받아들이는 한 예로 간주했다. 이렇게 주기적인 귀환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무엇보다도 세계 주기에 대한 헤라클레이토스와 스토아 학설을 통해서 고대의 세계상에 영향을 끼쳤다. 이에 따르면 코스모스는 세계의 끝날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다며, 그리고 사건의 진행 과정이 모든 개체들에게서 반복된다. 이러한 모든 사물의 반복을 어거스틴 이후의 그리스도인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오직 한번 죽으셨기 때문이다.”,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시어 더 이상 죽지 않으신다.”(로마서6:9f.). 그리고 우리도 역시 데살로니가전서 4:17에 따르면 죽은 자의 부활 이후에 “줄곧 주님과 함께 할 것이다.”67) 여기서 어거스틴은 기독교의 구원신앙으로부터 인간 실존의 유일회을 새롭게 의식하게 되었다. 현재를 모든 영원한 것에 대한 결정의 시간으로 가장 첨예하게 생각하는 것과, 그리고 인간의 개체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그 인간의 영원한 무게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이런 인간 샐존의 유일회성과 연결되었다.68) 속죄의 유일회성으로 인해서 일반적으로 사건의 진행이 갖고 있는 유일회성과 새로움이 현실성 이해에서 핵심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데, 이것은 우주의 순환에 따라서 시간을 순환적인 것으로 이해하려는 입장과 반대된다. 이런 순환적 이해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척해버린다.69) 어거스틴은 기독교 계시를 통해서 이런 입장과 반대되는 자리에 섰다. “영혼이 그 이전에는 결코 그렇게 구원받지 못했던 방식으로, 더 이상 곤궁한 상태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구원받는다면, 그 이전에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그 무엇과, 더욱이 강압적인 위대함과, 말하자면 더 이상 놓치면 안되는 영원한 행복과 조우하게 된다. 그러나 순환에서 결코 반복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그 무엇이 영원한 자연에서 생긴다면, 이러한 것을 획득할 수 있다면, 왜 이것이 죽어야할 사물에서는 생길 수 없다는 말인가?”(De civ. Dei Ⅻ,20,3). 구원 사건의 유일회성에서 파생되는 현실성 이해(Wirklichkeitsverständnis) 일반의 역사화는 어거스틴이 호모이시스 테오에 대한 플라톤의 생각을 역사신학적으로 확대한 책의 끝에서 두 번째 절에서 설명되었는데, 말하자면 이는 첫째 아담으로부터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둘째 아담으로 회귀할 수 없는 진보적 역사관에서 인간 역사를 본다는 것이다. 이 둘째 아담은 인간 현실성의 결정적인 형태이다. 어거스틴은 현실성 이해의 역사화를 세계 사건 전체로 연장(延長)시켰다.
어거스틴이 영혼의 전이와 상반된 의미로 제시한 구원의 유일회성은 더 나아가서 어거스틴이 기독교 신앙과 플라톤 철학의 핵심적인 차이점으로 본 질문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그것은 곧 神的인 로고스의 성육신 문제다. 영원을 시간 안에서 유일회적으로 발생한 사건과 연결시킨다는 것이 고대 철학의 모든 양식에서는 낯설었다. 플라톤주의자들은 물론 -고대 철학의 다른 학파들도 마찬가지인데- 모든 생명체들 중에서 인간만이 코스모스를 관리하는 이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철학은 인류의, 즉 모든 인간의 신적인 이성이 갖고 있는 일종의 성육신을 알고 있었다. 이제 역으로 신적인 로고스와 예수의 일치가 바로 인간이 로고스에 참여할 수 있는 최선의 경우라는 생각이 그리스도의 형태(Gestalt Christi)에 대한 신학적 해석에 접근하게 되었다.70) 그런데 여기서는 성육신 사상을 철학적으로 교육받은 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모든 수고에서 여전히 예수의 역사적 유일회성이 문제였다. 이것은 이미 2세기 때의 문제였다. 그래서 유스티노스는 전체 로고스가 오직 그리스도 안에 나타났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모든 인간들에게 -특히 철학자들에게- 흩어져 있는 로고스의 “기능”, 혹은 “씨앗”에 대한 스토아 학설을 받아들였다.(Apol Ⅱ, 10-13). 이로써 이제 우주론의 변형이 꼼짝 없이 구원사로 접어들게 되었는데, 이 구원사는 어거스틴의 사상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5. 플라톤 사상의 계속적인 작용과 그 현실
플라톤 철학의 영향사는 고대 플라토니즘에서 끝나지 않았다. 서양 사상사에서 플라톤 철학은 예정된 순서처럼 갱신의 역사로 반복되었다. 즉 9세기에는 카렌의 칼 궁정학교 교장이었던 에리우게나(J.S. Eriugena)에 의해서, 12세기에는 샤르트르 학파에 의해서, 특히 샤르트의 티어리(Thierry von Chartres)에 의해서, 15세기에는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를 통해서, 그리고 마르질리오 피치노가 이끌어간 플로렌스의 플라톤 아카데미를 통해서, 17세기에는 케임브리지의 플라톤 철학회에서 차례 대로 갱신되었다. 그런데 플라토니즘이 이렇게 수없이 등장했는데도 플라톤 사상의 영향사는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오히려 쉴라이에르마허가 상이한 플라토니즘 중에서 순수한 플라톤을 재발견하려고 애를 쓴 그 역사가 고려되어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화이트헤드가 말한 대로 전유럽 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에 대한 각주로 보아야 할지 모른다.71)
플라토니즘적 동기가 중세기 기독교 사상에 작동한 영향은 주로 세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첫째는 어거스틴주의를 통해서, 둘째는 맥시무스 컨페서르(Maximus Confessor)와 에리우게나가 僞디오니쉬오스 아레오파기타를 집필하느라 기울인 노력을 통해서, 이런 노력은 늘 갱신되었던 것이지만, 셋째는 12세기에 아라비아어에서 번역된, 그리고 오랫 동안(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기 까지) 아리스토텔레스주의로 간주되었던 작품으로서, 사실상 프로클로스(Proklos)의 stoicheiosis theologikè(신학원론)에 기인한 liber de causis(원인에 관한 책)을 통해서 전개되었다. 1268년 빌헬름 폰 뫼르벡이 이룩한 프로클로스 작품의 번역은 서구에서, 특히 도미니카 신비주의에서 플라토니즘을 향해서 새롭게 방향을 전환하게 된 분기점이 되었다. 뻬뜨라르카(Petrarca)가 이미 1367년에 플라톤과 플라토니즘이 아리스토텔레스를 능가한다고 선언한 이후72) 15세기에 이르러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콜라 학설과 거리를 두고 플라톤을 향한 새로운 방향전환이 이루어졌으며, 비잔틴 스승들에 의해 집필된 플라톤 문헌과 플라톤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로 말미암아 그 방향전환이 날개를 달게 되었다. 물론 13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스콜라주의는 그들의 형이상학적 구조에 담긴 기초 개념에서 플라토니즘에 의해서 각인된 상태에 있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에게로”라는 그들의 역사에서 볼 때 만물의 운동이라는 사상에 해당된다.73) 이 경우에 僞디오니쉬오스 아레오파기타와 liber de causis을 통해서 중재된 신플라토니즘의 기본 사상이 관건이다. 이 기본 사상에 따르면 모든 것이 일자(一者)로부터 파생되며, 질료의 세계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epistrophè(conversio, 회심)을 통해서 깨달아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제 두 번째로, 제일의 신적인 근원에서 이루어지는 작용에 참여한다는 사상이 신플라토니즘의 기본 사상과 연결되었다.74) 이런 사상은 다시금 세 번째로 근원과의 관계에서 작용하는 모사성을 전제한다. 특히 신적인 지성 안에 존재하는 만물의 이상적인 원상과 맺는 관계에서 그렇다. 이러한 사상적 순환 가운데서 네 번째로 회심(epistrophè)을 가능케하는 신적인 원상을 통한 조명은 결국 이 사상에 속하게 된다. 즉 중세기 신학에서 은총론과 신앙의 빛에 대한 어거스틴의 인식론이 포기된 다음에도 여전히 확고하게 고수된 사상이다.
근대 사상에서는 신플라토니즘적인 “단계적 우주”가75) 사라지게 되며, 결과적으로 원인과 작용의 연계도 역시 전자에 후자가 참여한다는 사상에 의해서 사라지게 되었다. 참여 사상은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해서 인간의 영이 하나님의 영과 맺는 관계에 대해서만은 권위적인 입지를 잃지 않았다. 그러나 이와 달리 이데아론과 거기에 연결된 모상 표상은 변화무쌍한 과정을 거침으로써 근대 사상에서도 역시, 즉 모든 질료적 사건이 영원한 자연법칙의 시간적인 모상이라는 근대 자연과학의 지배적인 사상이 대두될 때까지 활발하게 작용했다. 물론 플라톤 사상의 완전히 다른 궤적들도 역시 최소한 근대의 착상에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원천으로 작용했다. 이에 대한 가장 중요한 예는 플라토니즘적 에로스의 변형만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도 프로이트가 시도한 대로 아남네시스論의 변형이 가져온 심리분석임이 분명하다.76)
보다 최근의 개신교 신학에서 플라톤의 원상-모상-사상(Urbild-Abbild-Denken)은 현재까지 그 영향이 지속되고 있다. 이것은 쉴라이에마허가 믿는 자들과의 관계에서 그리스도가 의식한 하나님은 곧 원상성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에 해당된다.77) 물론 칼 바르트의 교회 교의학도 역시 원상-모상 관계를 통해서 그 구조가 짜여졌다. 말하자면 삼위일체 안에 있는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또한 그들의 상호적 관계 사이에, 남자와 여자 사이의 그런 관계에서 짜여진 구조인데, 이 안에서 바르트는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 형상을 바라보았다.78)
현재에도 역시 플라톤 사상의 잠재력은 결코 고갈되지 않았다. 그 사상의 현실(Aktualität)이 아마 참되게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사상보다는 이데아에 대한 엘레아 사상에서 그 효과를 적게 차지하겠지만, 인지학과 동양 종교의 영향으로 인해서 영혼 전이에 대한 사상이 흡인력을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의 영혼론에서는 여전할 것이다. 더욱이 플라톤의 현실은 변증법에서 두드러질 수 있을텐데, 이 변증법은 플라톤의 대화술에 대한 철학적 심의(深意)에서 늘 역사적 근원으로 남아있어야만 한다.79) 플라톤 사상의 핵심적 동기에서 볼 수 있는 현실은 신적인 것에 대한 철학적 명상에서 언급되지 않은 채 인간의 주관성의 초월적 기초로서 수용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고유하게 존재하는 자로서의 선에 대한 소크라테스-플라톤 사상에서도 역시 결정적인 요소이다. 왜냐하면 만물의 기초적 특징이라 할 미래성이 아직 충분하게 고려되지 않은 순간이 이런 사상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이런 사상에서 출현하는 참된 아르케(archè)를 말한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그것으로서의 선은(Phaidon 99 c 5f.) 사물의 본질을 이루는 미래적 기초일지 모르며, 또한 그것의 근원은 미래에 얻게될 그 정체성의 성취와 일치하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동기의 전개는 시간과 존재의 관계를 숙고하는 데, 이로써 플라톤의 엘레아적 유산과의 논의 가운데서 플라톤의 이데아에 대한 소크라테스적인 동기를 현실화하도록 기여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기독교가 플라톤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형식이 가능하게 된다. 신학 사상으로 하여금 하나님 통치의 미래가 모든 현재하는 것들과 이미 존재했던 것들의 운명을 규정하는 기초라고 생각하게 하는 그 과업과의 연관에서 그것이 가능하게 된다.80)
1) 플라톤의 정신적 풍토에 대한 소개는 여전히 크뤼거가 가장 낫다. G. Krüger: Einsicht und Leidenschaft. Das Wesen des platonischen Denkens, 2.Aufl. 1984. 소크라테스에게서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발전 관계에서 플라톤의 가르침이 어떤 역할을 감당했는지에 대해서는 슈텐쩰의 설명이 괜찮다. J. Stenzel: Studien zur Entwicklung der platonischen Dialektik von Sokrates zu Aristoteles(1917), 3.Aufl. 1961. 여기서 매우 중요하게 인용된 문헌들은 특별히 J. Krämer와 K. Kaiser의 작업으로 제시되었다.
2) 수용이라는 단어의 개념은 문학사적인 면에서 볼 때 가다머 해석학의 핵심개념인 영향사에(Wahrheit und Methode, 1960, 283ff., 323) 대해서 논의를 전개한 야우스(H.R. Jauss)에 의해서 문학사 분야에서 핵심으로 부각되었다.(Literaturgeschichte als Provokation der Literaturwissenschaft, 1967, 45ff., Literaturgeschichte als Provokation, 1970, 144-207, 특히 185ff.). 이 경우에 요점은 이해에 이르게되는 생산적인 순간인데, 이 순간은 가다머가 보았지만(위의 책 280쪽) 영향과 영향 연관의 관점 보다는 하위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야우스의 위의 책 49쪽). 확실한 의미에서 이러한 생산적 순간은 분명히 모든 이해 과정에 참여한다. 플라토니즘을 수용한 기독교의 경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믿음의 불빛에서 이루어진 그 변형이 핵심이다.
3) H. Langerbeck: Aufsätze zur Gnosis, 1967, 142. 초기 기독교 신학에서 플라톤과 플라톤 학파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한 판단에 대해서는 다음을 비교할 것. A. Warkotsch: Antike Philosophie im Urteil der Kirchenväter, 1973.
4) 위의 책, H. Langerbeck, 142. 되리(H. Dörrie)에 따르면 (아래 각주를 비교할 것) 오히려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의 공인을 받음으로써 플라톤 학파의 “광범위한 영향력”이 몰락했다.(그의 책31쪽).
5) H. Dörrie: Die Andere Theologie, in: Theologie und Philosophie 56, 1981, 1-46. 되리는 플라토니즘을 ‘후기 고대의 경건을 성취한 종교성의 그릇“이라고 간주했다.(19쪽).
6) E.v. Ivanka: Plato Christianus. Übernahme und Umgestaltung des Platonismus durch die Väter, 1964, 24.
7) 이에 관련해서 다음의 책을 보라. H. Dörrie: Von Plato zum Platonismus. Ein Bruch in der Überlieferung und seine Überwindung, 1976.
8) 다음을 참조할 것. H. Dörrie: Der Platonismus in der Antike 1, 1987, 33-41.
9)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H. Dörrie: Der Platonismus in der Kultur- und Geistesgeschichte der frühen Kaiserzeit, in ders.: Platonica Minora, 1976-210. 되리는 “중기 플라토니즘”이라는 표현을(Der Platonismus in der Antike 1, 1987, 45) 프레히터에 의한 것(K. Praechter, Die Philosophie des Altertums, 1909)으로 돌린다.
10) 이에 대해서 이 책 59쪽 이하를 보라.
11) 삼위일체론에 대해서는 졸저 Systematische Theologie 1, 1988, 283-374, 특히 296ff.와 331f.를 보라.
12) 이 주제에 대해서 크레머가 다루고 있다. H.J. Krämer: Der Ursprung der Geistmetaphisik, 1967, 특히 264-292를 비교할 것. 223-264에서는 이미 그노시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13) J. Stenzel: Studien zur Entwicklung der platonischen Dialektik von Sokrates zu Aristoteles (1917), 3.Aufl. 1961, 8f. H.J. Krämer: Arete bei Platon und Aristoteles, 1959를 비교할 것.
14) J. Stenzel a.a.O. 9. 슈텐쩰은 여기서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엔텔레키 개념(Entelechiebegriff)으로 인도되는 상관을 강조했다.(Phys 246a 13f., Met 1012b 20f., 1050a 21f.).
15) J. Atenzel a.a.O. 10 zu Staat Ⅹ 610 e.
16) Staat 427 d-434 c.
17) J. Stenzel a.a.O. 15, 20ff.
18) Aristoteles Met 1078 b 30ff., 1040 b 26ff., 1086 a 33f. 또한 철학 사전에서 마인하르트(H. Meinhardt)가 집필한 코리스모스 항목을 비교할 것. Historischen Wörterbuch der Philosophie 1, 1971, 1007 f.
19) 이에 대해서는 바로 위에서 인용한 부분 Phaid 78을 참조할 것.
20) 플라톤 철학의 이러한 복잡한 주제에 다음의 책이 적절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H. Barth: Die Seele in der Philosophie Platons, 1921.
21) 이런 주제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위해서 다음의 책을 참고할 것. K. Gaiser: Platons ungeschriebene Lehre, 1963. 또한 J. Wippern이 편집한 다음의 논쟁집을 비교할 것. Das Problem der ungeschriebenen Lehre Platons, 1972.
22) Phaid 99 c를 비교할 것. 또한 이미 97 b f.에도 언급되었다.
23) H.J. Krämer: Der Ursprung der Geistmetaphysik, 1964.
24) Albinos didasc. 7(163,13), von Praechter: Die Philosophie des Altertums (1970) 12.Aufl. 1926, 542 als Neuerung hervorgehoben.
25) Plotin Enn. Ⅵ,9,2. 또한 Ⅲ,8,9와 Ⅴ,1,4, 그리고 Ⅴ,3,10을 비교할 것. 이 주제에 대한 요점은 다음의 책에서 참조할 것. W. Weierwaltes: Selbsterkenntnis und Erfahrung der Einheit. Plotins Enneade Ⅴ,3,1991, 180f. 자기 자신과 하나를 이루지만 사유하는 자로서는 사유되는 것과 구별되어 있는 누스의 자기 인식에 대해서 106-113, 129쪽 이하에 설명이 나온다.
26)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책에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W. Beierwaltes: Plotin über Ewigkeitund Zeit. Enneade Ⅲ,7, 1967, 50ff., 바이어발테스의 다음 책을 비교할 것. Denken des Einen. Studien zur Neuplatonischen Philosophie und ihrer Wirkungsgeschichte, 1985, 80ff.
27) W. Beierwaltes: Plotin über Ewigkeit und Zeit, 62ff., zu Plotin Enn. Ⅲ,7,11-13.
28) 이런 표상에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W. Beierwaltes: Plotin über Ewigkeit und Zeit, 1967, 63, 243ff.
29) W. Beierwaltes: Selbsterkenntnis und Erfahrung der Einheit, 1991, 137, 또한 135를 비교할 것. 바이어발테tm는 “인격성이 그렇게 동시적이며 무조건적으로 부정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137 n. 98, 또한 Enn. V,3,12에 대한 221쪽을 비교할 것).
30) W. Beierwaltes a.a.O. 131.
31) 바로 이 점에서 기독교 신학의 삼위일체론적 하나님 사상의 고유한 난제가 놓여 있다는 사실, 그리고 니케아 공의회에서 호모우시오스(homoousios)가 극복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필자는 Systematische Theologie 1, 1988, 370에서 강조했다. 308ff., 297ff., 363ff., 368ff.을 비교할 것.
32) 오리게네스에게 소급되는 요한복음 4장24절 해석에 대한 비판에는 누스라는 의미에 담겨 있는 푸뉴마 개념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설명은 위에 인용된 필자의 책 402쪽 이하에 제시되어 있다.
33) 위의 책 309쪽 이하 참조.
34) W. Beierwaltes: Denken des Einen, 1985, 212ff., 344ff. 에리우게나에 대해서는 같은 바이어발테스의 책 Eriugena. Grundzüge seines Denkens, 1994, 256ff.를 비교할 것.
35) Plotin Enn. Ⅴ,1,7,4ff., 다음의 책을 참조할 것. W. Beierwaltes: Denken des Einen, 348f.
36) W. Beierwaltes: Denken des Einen, 368ff., 382ff.
37) 이에 대해서 졸저 Grundzüge der Christologie, 1964, 118f., 202를 보라.
38) 좀더 정확한 내용에 대해서는 졸저 Systematische Theologie 2, 1991, 238ff.를 참조할 것.
39) Irenäus adv. haer. Ⅳ, 38,3. 또한 Ⅴ6,1을 비교할 것.
40) Gregor von Nyssa: Vita Mosis 114,5-14, E. Mühlenberg: Die Unendlichkeit Gottes bei Gregor von Nyssa, 1956, 151.
41) 다음을 참조할 것. Menon 81 c-d, 82 bff., Phaidon 72 e-76 a.
42) Augustin De civ. Dei Ⅹ, 31.
43) Justin dial. 4,2ff. (E.J. Goodspeed: Die ältesten Apologeten, 2.Aufl. 1984, 95ff.).
44) M. Elze: Tatian und seine Theologie, 1960, 90ff., 특히 93.
45) 영지주의의 이원론적 영혼설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할 것. H. Langerbeck: Aufsätze zur Gnosis, 1967, 50ff.
46) W-D. Hauschild: Gottes Geist und der Mensch. Studien zur frühchristlichen Pneumatologie, 1972, 151-165, 특히 160,165.
47) Origenes De princ. Ⅱ,9,6f., Ⅰ,7,4. 또한 P. Kübel: Schuld und Schicksal bei Origenes, Gnostikern und Platonikern, 1973, 88ff., 103ff.
48)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졸고를 참조할 것. Christentum und Platonismus. Die kritische Platonrezeption Augustins in ihrer Bedeutung für das gegenwärtige christliche Denken, in Zeitschrift für Kirchengeschichte 96, 1985, 147-161.
49) Justin dial. 4,1(E.J. Goodspeed: Die ältesten Apologeten, 1914,2.Aufl. 1984, 95). 조명이라는 생각은 exaiphnès라는 단어에 근거하고 있다.
50) W. Schmid: Frühe Apologetik und Platonismus. Ein Beitrag zur Interpretation des Proöms von Justins Dialogus, in Festschrift O. Regenbogen 1952, 163-182, 181.
51) W.-D. Hauschild: Gottes Geist und der Mensch. Studien zur frühchristlichen Pneumatologie, 1972, 30.
52) Origenes Contra Celsum Ⅶ,42(PG 11,1481), Ⅶ,5-11(a.a.O. 1296).
53) R. Lorenz: Gnade und Erkenntnis bei Augustinus, Zeitschrift für Kirchengeschichte 75, 1964, 21-78.
54) admonitio라는 표제어에 대해서는 위에서 인용된 R. Lorenz의 책 47쪽을 참고할 것.
55) 이런 개념들이 병치되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R. Lorenz가 강조한다.(위의 책 58).
56) G. May: Schöpfung aus dem Nichts. Die Entstehung der Lehre von der creatio ex nihilo, 1978, 6-26, zu Philo ff.
57) G. May a.a.O. 7f. 마이는 크세노폰의 Memor. Ⅱ,2,3에 일종의 유비적인 표현방식이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58) Justin Apol. Ⅰ,10,2: Athenag. suppl.22,2. 또한 유스티노스에 대해서 마이의 책(a.a.O. 122ff.)를 비교하고, 아테나고라스에 대해서도 같은 책(139ff.)과 다음의 졸고를 비교할 것. Die Aufnahme des philosophischen Gottesbegriffs als dogmatische Problem der frühchristlichen Theologie(1959), in: Grundfragen systematische Theologie 1, 1967, 296-346, 316f.
59) Tatianor. 5,7. 또한 마이의 책(a.a.O. 151ff.)을 비교할 것.
60) Tatian or. 5,3. Justin dial. 5,4-6. 마이어에 따르면(a.a.O. 153ff.) 타티아노스는 스승의 학설에 근거한 이 귀결을 마르키온과 대립적으로 발전시켰다.
61) 테오필로스의 ad Autol. Ⅰ,4와 Ⅱ,4, Ⅰ,8에 관해서 마이의 책(a.a.O. 159ff.)을 참조 하고, 이레네우스의 adv. haer. Ⅱ,10,4에 관해서는 같은 책(167ff.)을 참조할 것.
62) 이에 대해서는 각주 58에서 인용된 졸고 317쪽의 각주 79를 참고할 것.
63) 마이에 따르면(a.a.O. 4) 아덴의 철학자는 그 당시에 세계의 시간이 시간적이라고 가르쳤다. 플루타크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런 질문의 논쟁에 대해서는 다음을 비교할 것. H. Dörrie: Der Platonismus in der Kulter- und Geistesgeschichte der frühen Kaiserzeit, in ders.: Platonica Minora, 1976, 166-210, 189. 다른 곳에서 플라톤의 주장이 플로티노스에 의해서 해석되었다. 다음을 참조할 것. J. Guitton: Le temps et l'éternité chez Plotin et Saint Augustin(1933) e. ed. 1971, 90.
64) Augustin De civ. Dei Ⅻ,27.
65) Augustin De trin. Ⅻ,15,24(CCL 50, 377-379).
66) 플라톤의 인식이론에 대한 어거스틴의 변형과 더불어서 선험적 인식과 우리 오성의 기능을 받아들이는 분기점으로서 거론되어야 할 것은 당연히 인간에게 공동적으로 분명한 기초 개념(kainai ennoiai)에 대한 스토아 학설이다.(이 책의 4장을 볼 것). 오성의 기능은 칸트의 이성비판에서 근대에 적절한 형태를 획득한 그것이며, 스토아 학설은 키케로를 뛰어넘어 어거스틴이 영혼에 대한 자신의 표상에 적용시킬 수 있었다.
67) Augustin De civ. Dei Ⅻ,14, 또한 Ⅹ,30: “늘 행복이 보장되는 피안적 삶 안에 있는 영혼은 썩게될 몸의 연약성을 주시하고 거기서 피안으로 돌아서야 한다는 사실을 순전하게 믿기만 하면 된다...”.
68) “첫 인간이 피조되기 전에는 그 어떤 인간도 없었다”는 말이 어거스틴의 생각을 잘 드러내 준다.(De civ. Dei Ⅻ,18).
69) 지난 날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를, 고대의 순환적 시간 이해가 모든 역사적 진보 사상을 배척했다고 했다.(최소한 뢰비트까지는 그랬다. K. Löwith: Weltgeschichte und Heilsgeschehen, 1953, 16ff.). 그런데 이제 이런 생각은 비판을 받게 되었다. 예를 들어 다음을 참조하라. H. Cancik: Die Rechtvertigung Gottes durch den “Fortschritt der Zeiten". Zur Differenz jüdisch-christlicher und hellenisch-römischer Zeit-und Geschichtsvorstellungen, in A.Preisl/A. Mohler (Hgg): Die Zeit, 1983, 257-288. 디오도르와 포리비오스 같이 스토아 학파에 의해 영향을 받은 역사학자들의 경우에 역사 내적 진보를 주장하는 것은(Cancik a.a.O. 265ff.) 결국 포괄적이며 코스모스적인 순환에 연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뢰비트의 논점이기도 했다.
70) 아다나시우스의 문헌에는 로고의 성육신이 종종 다루어진다. 라오디게아의 아폴리나리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폴리나리스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E. Mühlenberg: Apollinaris von Laodicaea, 1969.
71) A.N.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1929), Neudruck 1957 (Harper) 63.
72) F. Petrarca: De sui ipsius et multorum ignorantia, 1367(1371년 출판).
73)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M. Seckler: Das Heil in der Geschichte. Geschichtstheologiesches Denken bei Thomas von Aquin, 1964, 특히 28쪽 이하.
74) H. Lyttkens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비론이 신플라토니즘의 참여사상에 의존적이라는 사실을 다음의 책에서 증명했다. The Analogy between God and the World. An Investigation of its Background and Interpretation of its Use by Thomas of Aquino, Uppsala 1952.
75) M. de Gandillac: Nikolaus von Cues. Studien zu seiner Philosophie und philosophischen Weltanschauung (frz. 1942) 1953, 133, 비교. 144 zu Cusanus' De ludo globi (1463) Ⅱ, 236.
76) Y. Brès: La psychologie de Platon (1968), 2. Aufl. 1973.
77) F. Schleiermacher: Der christliche Glaube, 2.Ausg. 1830, 93.
78) 플라톤에 대한 바르트의 입장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J.-L. Leuba: Platonisme et Barthisme, in: Archivio di Filosofia 53, 1985, 153-172.
79) 가담머(H.G. Gadamer)는 이런 방향에서 생각한다. 또한 다음을 비교할 것. R. Bubner: Dialektik als Topik. Bausteine zu einer lebensweltlichen Theorie der Rationalität, 1990.
80) 이에 대해서 졸저를 참조할 것. Metaphysik und Gottesgedanke, 1988, 특히 66쪽 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