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 예배 회복의 전환점 삼아야
“코로나 사태, 예배 회복의 전환점 삼아야”
[인터뷰]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장 서창원 교수
기독일보 장지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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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원장 서창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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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원 교수(총신대 역사신학,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원장)는 청교도와 장로교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귀국해 1991년부터 지금까지 교회를 통한 목회 사역과 신학교를 통한 교수 사역으로 한국교회에 청교도와 장로교 사상을 심는 데 주력해 왔다. 1992년 한국교회의 강단 사역을 위해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을 설립, 영국의 ‘진리의 깃발’지 한국어판을 발행하여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보급을 위해 힘쓰고 있으며 저서로는 ‘땅에서 열어가는 천국’, ‘청교도 신학과 신앙’, ‘조지 휫필드의 생애와 사역’ 등 다수가 있다. 그런 서 교수를 최근 만나, ‘코로나19 사태와 온라인 예배’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아래는 일문일답.
-코로나19로 인한 한국교회 예배의 온라인 전환을 어떻게 보나?
“전통적으로 미디어를 사용해서 복음을 전하는 방식은 개혁주의 입장에서는 부정적인 입장이 많았다. 기독교 TV 채널들이 많은데 주로 보는 사람은 비기독교인들보다 기독교인들이 많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의 소위 ‘돈 잔치’라는 생각이 많았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전통적으로 모이는 교회들의 온라인 전환이 어떤 의미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개혁파 교회들도 이 부분(온라인 예배)을 마냥 부정적인 입장으로만 보지 않고 긍정적인 요소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과거엔 큰 교회, 재력 있는 교회나 방송을 내보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돈과 상관 없이 온라인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사태로 내몰렸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지속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교회라는 것은 성도들의 모임을 말하며 모여야 의미가 있는데 유튜브 앞에서 모이는 것이 성도의 모임이라 할 수 있겠는가? 교회 자체는 단순히 예배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교제’가 중요하다. 그런데 만남 없이 온라인상에서 교제가 절로 이루어질 수는 없기 때문에 권장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부분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밴드, 카톡 등 SNS를 이용해 소그룹 모임을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그것이 성도의 교제를 대신 할 수는 없다. 이유는 성도의 교제는 함께 만나서 기도하고 떡을 떼고 같이 말씀을 듣고 나누는 것이 기본인데 그런 기본 없이 단순히 정보만 주고받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현재교회가 위기 상황임은 틀림없다. 온라인 예배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임시방편으로 허용하고 있는 것 뿐이지 그것이 성경적이라고 적극 내세워 정규예배를 대체할 수 있다고는 볼 수 없다.”
-공예배를 정의한다면.
“공예배는 지교회와 대교회에 소속해 있는 성도들이 다 모이는 것인데, 현재 공예배가 코로나 때문에 다 함께 모일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공예배 자체 개념이 희석되었다. 예전과는 달리 성도들에게 ‘지금은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다. 거리두기로 인해 일정한 수의 교인들만 모인다. 이것이 몇 달째 지속되다보니 신앙생활에서 편리주의가 생긴 것 같다. 예전엔 교회에 나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집에서 온라인 예배를 클릭해 놓고 안 들을 수도 있고, 다른 교회에서 진행하는 것을 듣는 등 예배를 안 나가는 일종의 면책 특권을 가진다. 공예배의 회복이 중요한 부분이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제대로 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는 중요한 정리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새판짜기다. ‘지금 한국교회의 예배가 과연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해 주신 역사적 목적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예배인데, 그 예배가 전 세계적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다 문을 닫았다. 그 과정에서 각 교회들이 그 동안 드렸던 예배가 정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의 올바른 교회 모습이 아니라 인간 중심이 되고 사람들의 흥미꺼리를 권장하며 예배조차도 하나님 하고는 상관없이 사람들끼리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 된 것은 아니었나? 거듭난 교인들의 반응이 예배인데 거듭나지 않은 자들이 교회 안에 많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신 중심적이며 예배자중심으로 변경되다 보니 마태복음 15장에 나오는 예수님 때처럼 헛된 예배가 많았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코로나 사태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란 무엇인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과거 종교개혁자와 청교도들이 우리에게 남겨 준 예배의 균형적 원리를 따라서 다시 예배를 세팅하는 좋은 기회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코로나는 참 교회와 거짓 교회, 참 그리스도인과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을 구분하는 잣대가 되었다.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듯이 거짓 목회자도 존재한다고 본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 자가 아니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이며 여전히 온라인을 통해 또 다른 흥미거리들을 추구할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개혁교회는 교회 전통, 관습에서 끊어내지 못한 것들을 과감히 끊어 버리고 예배다운 예배, 교회다운 교회를 회복하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온라인 성찬식에 대한 생각은.
“온라인으로 성찬식을 진행하는 것은 형식에 불과하며 그것이 진정한 성찬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온라인으로 하는 성찬식은 결코 실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떡을 떼고 잔을 나누는 책임을 가정에서 누가 할 것인가? 가장에게 그런 권한이 있는가? 목사가 온라인을 통해 축사를 해도 실질적으로 가정에서 가장에게 그러한 권한이 있겠는가?
교회 헌법에는 교회 장로들이 책임이 있는 것인데 가정마다 돌아다니면서 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성찬식을 예전에는 한 주를 정해서 한 달 또는 분기별로 하든지 일년에 두 번을 하는 방식이었다. 성찬식 때는 번거롭더라도, 가령 교인이 5백 명이라면 1백 명씩 모여서 하되, 1부 2부 등으로 나눠서 진행하는 방식으로 했다. 그래야 진정한 성찬식이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온라인으로 성찬식을 진행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다. 주의 떡과 잔을 분별하지 못하고 함부로 먹고 마시는 경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개혁교회는 성찬식을 하기 전에 성도들이 성찬을 받기에 합당한지 검증을 해야 하는데 한국교회는 성도 개인의 양심에 맡기고 성찬식 날을 공지하지만 이것이 위험했던 이유는 성찬에 참여하는 조건이 ‘내가 한 주간 경건하게 살았기 때문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성찬식을 올바르게 진행하도록 사전 검증 작업이 지금까지 안 되었고 온라인은 더더욱 불가능 한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는 계기로 삼고, 일일이 물어보거나 화상 채팅을 통해 미리 성찬을 하기 전에 부교역자들이 체크하는 방법으로 진행해야 한다. 전에는 개인의 양심에 맡겼는데 제대로 된 성찬을 위해 자격자를 점검하는 것으로 온라인을 활용할 수는 있겠다.”
-인쇄술의 발달로 성경이 보급됐던 것처럼 오늘날 교회는 뉴미디어를 어떻게 도입해 활용해야 할까?
“미디어 활용은 분명하다.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가 고민이다. 미디어는 생각할 겨를도 없게 만든다. 상호 소통 부분이 없다. 교감을 이루어야 하는데 성도들의 반응을 알 수가 없다. 일방적으로 떠들고 성도들은 지나간다. 가슴에 남는 이야기 보다는 눈으로 보기 좋고 귀로 듣기 좋은, 그야말로 이제는 성경말씀도 조미료를 쳐야 하는 것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과제다.
학교도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이 되면서 학생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단순한 지식전달이라 하면 굳이 학교를 갈 필요한 없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야 한다. 말씀과 성도의 교제를 생각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본래 90분 강의이지만 50분을 넘기지 말라고도 한다. 사람들의 집중도 문제 때문이다. 강의도 어떻게 보면 강사 혼자서 말하는 것인데 장시간 이것을 듣고 있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교도 마찬가지로 유튜브 설교 영상 자체가 길면 보기 어렵다. 단편 영상으로 바꿔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미디어의 활용이 교회의 영적인 힘을 갉아 먹을 수도 있다. 잘 활용하면 좋겠지만 근본적으로 심령을 변화시키고 눈물로서 회개하게 하는 부분은 미디어로는 역부족이라 생각한다. 미디어의 활용이 목사와 성도간의 관계를 피상적, 사무적, 형식적 관계로 만든다면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은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 목사가 과연 나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위대한 종교개혁자들의 저서를 읽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얼마 전 정부가 정규예배 외 소모임을 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정부와 교회의 관계인데,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지 국가가 아니다. 그럼으로 국가는 어떤 의미로서든지 교회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은 없는 것이다. 교회가 명령을 받는 대상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 뿐 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해도 권고 또는 교회를 설득하고 호소하는 방안으로 진행해야지 명령을 내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권한을 찬탈하는 것이다.
교회가 행정명령에 순응하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병마의 확산을 막기 위한 거리두기나 방역조치를 충분히 수행하는 차원이지 그 명령이 옳아서 따른 것은 아니다. 다행히 행정명령이 철회되었지만 국가는 어떤 명령도 교회에 내릴 권한은 없는 것이다. 다만 교회도 국가 안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보이는 교회들은 한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국가의 요청에 협력할 사항이 있으면, 성경에 어긋나지 않는 이상은 협력할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교회들이 거리두기와 철저한 방역 조치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임을 가지거나 가지지 말라는 것은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교회가 말씀에 근거해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소그룹 모임은 교제와 신앙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방편이었는데 그것조차도, 단지 행정명령 때문만이 아니라 모이기를 꺼려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 동안 한국교회가 소그룹을 한다 하면서 진정으로 주님의 제자가 되고 주님을 닮아가게 하는 효과를 과연 보았는가? 그냥 교회 생활에 익숙한 사람이 되게 했지 정말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는 것은 역부족이지 않았는지…. 그리고 목사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더 많았지 정말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 되게 했는지 이런 부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코로나는 교회의 본질 회복을 요구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가정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고 한다.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는 또 다른 방편이라고 본다. 코로나가 있기 이전에도 기독교 교육의 센터는 가정이었다.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고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책임지난 자는 교회가 아니라 부모이다. 주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강론할 책임이 부모에게 주어진 것이지 교회에 책임이 있지 않다. 교회는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이다.
코로나 사태로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런데 부모들이 정확히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라면 어려운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정예배에서 말씀을 묵상할 수 있도록 가정예배자료를 주었다. 이것이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오히려 부모의 신앙을 더 강화시키고 부모와 자녀 간의 신앙계승을 더 공고히 하는 좋은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교회는 목사들이 더 바빠야 한다. 요즘은 성도들이 담당 목사들의 말씀만 듣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독교 채널과 유튜브를 통해 능력 있는 설교자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유명한 설교자가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이다. 목양은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때문에 목사들은 자신의 성도들이 가정예배를 잘 드릴 수 있도록 가족을 위해 건강식을 준비하듯, 끊임없이 성경강론을 준비해야 하며 우리 식구들을 책임진다는 의미로 교인들의 수준에 맞게 말씀을 준비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교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
“‘코로나 이후 시대’가 과연 있을까? 백신이 있어도 또 다른 바이러스가 생길 것이기에 코로나19 사태가 종식이 된다고 해도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다. 지금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아닌 ‘위드 코로나’ 시대로서 코로나와 함께 공생할 수 있는 방편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수 조원을 들여 전 세계가 백신 개발을 위해 힘쓴다. 그러나 우리를 영원히 죽이는 죄의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미 만들어 두신 백신이 있지만 이것을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세대가 너무 많다. 교회의 역할은 코로나와 함께 가면서 죄와 허물 문제를 말끔히 씻어 버리는 데 있다.
여전히 코로나 병균으로 죽는 것이 죽는 게 아니다. 믿는 자는 천국으로, 믿지 않는 자는 지옥으로 갈 것이다. 교회가 복음에 더 충실하게 되어서 코로나 사태 이후 여전히 복음에 충실한 교회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믿는 자의 수는 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남은 자들을 주님은 두신다. 진짜 주의 종이라고 한다면 복음에 충실한 교회가 되도록 이끌 것이다. 그게 아니면 소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