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표류하는 서구 사상과 코로나
[기고] 표류하는 서구 사상과 코로나
기독일보
입력 Mar 30, 2020 01:47 PM PDT
수세기 동안 서구를 지배했던 기독교 유신론은 17세기에 들어 계몽주의의 등장과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자연주의로 대체되었다. 자연주의는 하나님을 부인하며 인간의 이성을 진리에 대한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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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는 신이 아닌 물질만이 영원히 존재하며 존재하는 것의 모든 것이라고 가정한다. 인간을 하나의 복잡한 기계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은 지성과 양심을 가진 존재이기에 다른 물질보다 더 가치있는 존재라고 여긴다.
인간의 역사는 원인과 결과에 의해 발생하는 인과론적 사건의 연속이라 보며 역사의 목적이나 목표 없다고 믿는다. 이러한 자연주의에서 뻗어나온 가지가 유물론과 진화론이다.
인간의 인식을 지배하는 모든 이데올로기가 그렇듯 자연주의는 자체의 모순 특히 인간 역사의 목적과 목표가 없다는 주장으로 인해 곧 허무주의를 낳게 된다. 허무는 곧 멸망을 의미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위대하게 만든 인간이 허무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내버려 둘 리가 만무하다.
이후 서구 사상은 실존주의를 탄생시켜 허무주의의 돌파구를 마련하게 된다. 목적 없는 역사 선상에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물질세계의 연약한 존재가 인간이지만 스스로에게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인간 존재를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구의 무신론적 실존주의는 여전히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죽음이라는 부조리를 도저히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또 다른 돌파구를 찾아 동양의 사상을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동양 범신론은 서구의 사상적 맥락과 구조 자체가 다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범신론의 소용돌이를 지나 자연주의와 범신론이 결합한 형태인 뉴에이지가 등장한다.
자연주의가 이론적으로 인간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면 뉴에이지는 경험적으로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은 이제 신의 자리에 앉아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혼재된 시간을 살아간다. 오늘날 유난히 드라마와 영화에 시간의 이동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다.
서구의 사상은 이러한 흐름 속에 발전되어 왔으며 오늘날은 이 모든 사상이 유효한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울타리에 이 시대 사람들을 가두고 있다. 특히 자연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자 형태인 세속적 인본주의가 오늘날 서구 세계의 정치, 사회, 문화, 종교의 저변을 차지하고 인간의 의식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17세기 이래 서구는 이성 숭배의 세계를 형성해왔다.
그러나 서구 사상은 여전히 표류중이다. 첨단 과학과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형이상학적 질문, 즉 인간은 어디에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고,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여전히 답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첨단 세계로 갈수록 인간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철학과 윤리를 필요로하지만 과학과 기술이라는 형이하학의 발전 속도에 형이상학이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더욱 황폐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과학의 힘을 믿어왔고 거기에 희망을 품어왔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인간은 이성으로 이룩한 거대한 바벨탑이 힘없이 무너질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되었다. 과학의 힘으로 승승장구하던 인간에게 다시 한번 형이상학적 질문을 진지하게 안기는 시점에 놓이게 된 것이다.
과연 이 작은 바이러스 앞에서 인간은 무엇인가? 여전히 자연주의와 허무주의 그리고 실존주의는 스스로가 해답 인양 등장하겠지만 결국 인간은 사상의 물결 위에 표류하는 와중에도 영원한 항구를 바라보도록 되어있다. 이것이 선인에게도 해를 주시고 악인에게도 해를 주시는 하나님의 보편 은총이다.
낮에는 등대의 불을 켜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밤이 되면 등대는 표류하는 자들에게 생명이요 구원이 된다. 우리는 모두 코로나의 깊은 밤을 지나고 있다. 하나님이 반드시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히11:6) 할 시간이다. 교회의 사명이 더욱 명약관화(明若觀火)해졌다.
월드미션대학교 최윤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