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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류관을 위한 자제와 정진 고린도전서 9:24-27
은바리라이프
2012. 8. 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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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9:24-27 |
1. 시작하는 말
일부 프로 축구 선수들이 축구 선진국의 명문 구단들에 스카우트되어 뛰는 바람에 막대한 수입도 얻고, 국위도 선양하고, 국가 경제에도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일부 프로 골프 선수들이나 프로 야구 선수들 중에도 그와 같이 막대한 수입도 얻고, 국위도 선양하고, 국가 경제에도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선수들 중에는 남들의 돈이 아닌 자기 돈으로 구제나 장학 사업이나 후진 양성에 힘쓰는바 정말 아름다운 일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K-POP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바람에 해당 가수들이 국제적인 인기와 많은 수입을 얻고, 국위를 선양하고, 문화적 파급 효과와 경제적 파급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결과에 대해 열광하며 환호와 갈채를 보내지만, 그들이 그러한 영광스러운 결과를 얻기까지 얼마나 극기하고 절제하며 훈련을 해 왔는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2. 운동 경기에 비유된 신앙생활
운동 경기에다 목회나 신앙생활을 비유하는 것을 좋아하는 바울 사도는, 본문에서도 운동 경기의 비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경기장에는 운동선수들뿐만 아니라, 역사가들과 시인들이 최근의 새 작품을 낭독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또, 불후의 명성을 가진 조각가들이 승리자들의 상을 조각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사도인 바울이 그 좋은 선교의 기회를 외면할 리가 없었습니다. 인간 구원의 열정에 불타는 바울 사도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운동장에서 선수들이 다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라고 하면서, 교인들도 상을 받도록 그와 같이 달리라고 했습니다. 경기에 참가하거나, 끝까지 인내하며 달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모든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결승점에 일 등으로 들어와야만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믿음의 경주에서 구원받을 사람이 한 명뿐이라거나, 상을 받을 사람이 한 명뿐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경주에서 최고의 상을 위하여 한눈팔지 말고 오로지 결승점만을 바라보고, 온 영과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달리라는 뜻입니다. 최고의 상을 위해 한눈팔지 않고, 오직 결승점만을 바라보며 전심전력을 다하는 것은 인생 경기에 임하는 인간들에게도 요구되는 자세입니다.
그러한 자세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각 교인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그러한 자세뿐만 아니라, 온 영을 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경기에 임하기 전에 선수들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경기에 있어서 승리하기 위해 겨루는 경기자들은 시합을 앞두고 절제하고 극기하며 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헬라의 경기자들은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열 달 동안 혹독한 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기록도 있습니다. “경기에 승리하려는 젊은이는 많이 참아야 하고, 사랑과 술을 끊어야 한다.” 세네카는 “경기자들은 얼굴을 얼마나 많이 맞으며, 또 온몸은 얼마나 많이 맞는가! 그러나 그들은 영광에 대한 갈망 때문에 그 모든 고통을 참는다. 우리들도 모든 것을 이겨 내자. 우리의 상급은 면류관이나 종려가지나, 또는 우리의 이름을 발표하기 위해 조용하라고 하는 나팔수의 나팔 소리가 아니라, 그 후에 얻은 덕과 정신력과 평화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장래가 촉망되던 선수가 주색에 빠지거나, 돈에 대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가 그만 도중에 낙오자가 된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남들처럼 잘 것 다 자고, 놀 것 다 놀고, 즐길 것 다 즐기고, 탐할 것 다 탐하고, 할 짓 못할 짓 다 하고서는 결코 월계관을 쓸 수 없습니다. 한눈파는 경기자는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운동 경기장과 일터와 인생의 경기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극기와 절제입니다. 다음은,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입니다. 그 다음은, 규칙을 지키며 전심전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했다고 해도,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무효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경기에서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냈다 하더라도, 말씀을 지키지 않았으면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헬라의 경기자들이 그토록 힘들고 고통스럽게 훈련하는 목적은 썩을 면류관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무스 경기의 승리자는 솔가지와 잎으로 만든 면류관을 머리에 썼고, 올림픽 경기의 승리자는 월계수의 가지와 잎으로 만든 면류관을 썼습니다. 이런 면류관을 쓰는 것은 경기자에게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지만, 그 가지와 잎들은 이내 썩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이 부여하는 인간의 영광도 잠깐일 뿐입니다.
그러나 교인들의 극기와 절제,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 그리고 온 영을 다하는 의와 진리와 사랑에는 반드시 썩지 않을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은 경기자들보다 더 극기하고 더 자제하며, 더 노력하고 훈련하고, 온 영을 쏟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앞에 준비된 썩지 않을 면류관은 의의 면류관이요, 생명의 면류관이요, 아름다운 면류관이요, 영화로운 면류관이요,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이 면류관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결코 유형의 세상 것들과 무형의 세상 것들과 자신의 이기적 욕심을 좇아서는 안 됩니다. 오로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마가복음 8:34을 보면,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3. 바울의 사도로서의 자세
바울은 사도로서의 신앙생활을 경기에 비유했습니다. 목표가 없이 갈팡질팡하며 달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의 경주에서 바울 사도의 목표는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제물이 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 권투에 비유하여 헛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바울 사도는 잘 절제하며 수고와 노력을 다했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물론, 선교 사역 및 교회 처리에 헛수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빌립보서 3:13 이하를 보면, 바울 사도는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라고 했습니다. 물욕이나 음욕이나 감투, 좌파나 우파나 중도파, 인간의 사상이나 이념이나 주의, 진보나 보수 등 세상 풍조를 좇는 교인들, 특히 교역자들은 이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어서 바울 사도는 신앙 훈련이라는 면에서 매우 중요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자신을 매우 강하게 쳐서 주님의 뜻과 명령을 따르는 주님의 종다운 종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죄나 불신앙이나 이기적 욕심이나 자기자신의 종노릇을 하며 사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주님의 종노릇하며 사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오래 전 일입니다. 미국의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극동 지역 담당 대리인을 구하는 중에 채용 책임자가 어떤 선교사와 교섭하게 됐습니다. 연 10000불을 제시했는데 선교사가 거절했습니다. 연 25000불을 제시했는데도 거절했습니다. 두 배로 올려 연 50000불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가 또 거절했습니다. 깜짝 놀란 채용 책임자가 물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됐습니까?” 그러자 선교사는 “지불하시려는 대가는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 직업은 너무 작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셨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주님의 종노릇하며 살기 위해 극기하고, 영적 훈련을 계속하는 것은 남에게 전파한 후에 그 자신은 도리어 버림받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크리소스톰(Chrysostom)은 자신이 설교하고, 가르치고, 수천 명을 믿게 했다 할지라도, 그 자신이 규칙대로 달리지 않았다면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헌금이나 공금을 횡령한 목사가 있다면, 그의 사랑하는 자식은 목사의 자식입니까, 도둑놈의 자식입니까?
4. 맺음말
모든 경기자들이 다 경기에 참가하더라도, 최고의 상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경기를 하고 있는 우리의 경우도 다를 바 없으므로, 하나님의 상을 얻기 위해 힘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는 영광을 위해 극기하고 자제하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훈련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주님 안에서 극기하고 절제하며, 노력하고 훈련하는 우리를 위해 썩지 않을 영원한 면류관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 모두 그 영원한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한눈팔지 말고, 주님 안에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달려 가시기 바랍니다.
2. 운동 경기에 비유된 신앙생활
운동 경기에다 목회나 신앙생활을 비유하는 것을 좋아하는 바울 사도는, 본문에서도 운동 경기의 비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 당시의 고린도에서는 이스무스 경기, 에베소에서는 판이오니아 경기 등이 행해졌습니다. 그 중 가장 큰 경기는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경기였습니다.
헬라의 대부분의 도시는 때때로 반목하고, 어떤 때는 전쟁 상태에 있었지만, 올림픽 경기 때가 돌아오면 아무리 싸움이 격렬한 경우에도 한 달간의 휴전이 선포되고, 서로 우정을 나누며 경기를 할 정도로 운동 경기를 중히 여기고 좋아했습니다.
경기장에는 운동선수들뿐만 아니라, 역사가들과 시인들이 최근의 새 작품을 낭독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또, 불후의 명성을 가진 조각가들이 승리자들의 상을 조각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사도인 바울이 그 좋은 선교의 기회를 외면할 리가 없었습니다. 인간 구원의 열정에 불타는 바울 사도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운동장에서 선수들이 다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라고 하면서, 교인들도 상을 받도록 그와 같이 달리라고 했습니다. 경기에 참가하거나, 끝까지 인내하며 달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모든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결승점에 일 등으로 들어와야만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믿음의 경주에서 구원받을 사람이 한 명뿐이라거나, 상을 받을 사람이 한 명뿐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경주에서 최고의 상을 위하여 한눈팔지 말고 오로지 결승점만을 바라보고, 온 영과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달리라는 뜻입니다. 최고의 상을 위해 한눈팔지 않고, 오직 결승점만을 바라보며 전심전력을 다하는 것은 인생 경기에 임하는 인간들에게도 요구되는 자세입니다.
그러한 자세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각 교인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그러한 자세뿐만 아니라, 온 영을 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경기에 임하기 전에 선수들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경기에 있어서 승리하기 위해 겨루는 경기자들은 시합을 앞두고 절제하고 극기하며 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헬라의 경기자들은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열 달 동안 혹독한 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기록도 있습니다. “경기에 승리하려는 젊은이는 많이 참아야 하고, 사랑과 술을 끊어야 한다.” 세네카는 “경기자들은 얼굴을 얼마나 많이 맞으며, 또 온몸은 얼마나 많이 맞는가! 그러나 그들은 영광에 대한 갈망 때문에 그 모든 고통을 참는다. 우리들도 모든 것을 이겨 내자. 우리의 상급은 면류관이나 종려가지나, 또는 우리의 이름을 발표하기 위해 조용하라고 하는 나팔수의 나팔 소리가 아니라, 그 후에 얻은 덕과 정신력과 평화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장래가 촉망되던 선수가 주색에 빠지거나, 돈에 대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가 그만 도중에 낙오자가 된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남들처럼 잘 것 다 자고, 놀 것 다 놀고, 즐길 것 다 즐기고, 탐할 것 다 탐하고, 할 짓 못할 짓 다 하고서는 결코 월계관을 쓸 수 없습니다. 한눈파는 경기자는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운동 경기장과 일터와 인생의 경기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극기와 절제입니다. 다음은,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입니다. 그 다음은, 규칙을 지키며 전심전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했다고 해도,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무효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경기에서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냈다 하더라도, 말씀을 지키지 않았으면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헬라의 경기자들이 그토록 힘들고 고통스럽게 훈련하는 목적은 썩을 면류관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무스 경기의 승리자는 솔가지와 잎으로 만든 면류관을 머리에 썼고, 올림픽 경기의 승리자는 월계수의 가지와 잎으로 만든 면류관을 썼습니다. 이런 면류관을 쓰는 것은 경기자에게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지만, 그 가지와 잎들은 이내 썩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이 부여하는 인간의 영광도 잠깐일 뿐입니다.
그러나 교인들의 극기와 절제,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 그리고 온 영을 다하는 의와 진리와 사랑에는 반드시 썩지 않을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은 경기자들보다 더 극기하고 더 자제하며, 더 노력하고 훈련하고, 온 영을 쏟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앞에 준비된 썩지 않을 면류관은 의의 면류관이요, 생명의 면류관이요, 아름다운 면류관이요, 영화로운 면류관이요,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이 면류관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결코 유형의 세상 것들과 무형의 세상 것들과 자신의 이기적 욕심을 좇아서는 안 됩니다. 오로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마가복음 8:34을 보면,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3. 바울의 사도로서의 자세
바울은 사도로서의 신앙생활을 경기에 비유했습니다. 목표가 없이 갈팡질팡하며 달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의 경주에서 바울 사도의 목표는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제물이 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 권투에 비유하여 헛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바울 사도는 잘 절제하며 수고와 노력을 다했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물론, 선교 사역 및 교회 처리에 헛수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빌립보서 3:13 이하를 보면, 바울 사도는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라고 했습니다. 물욕이나 음욕이나 감투, 좌파나 우파나 중도파, 인간의 사상이나 이념이나 주의, 진보나 보수 등 세상 풍조를 좇는 교인들, 특히 교역자들은 이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어서 바울 사도는 신앙 훈련이라는 면에서 매우 중요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자신을 매우 강하게 쳐서 주님의 뜻과 명령을 따르는 주님의 종다운 종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죄나 불신앙이나 이기적 욕심이나 자기자신의 종노릇을 하며 사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주님의 종노릇하며 사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오래 전 일입니다. 미국의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극동 지역 담당 대리인을 구하는 중에 채용 책임자가 어떤 선교사와 교섭하게 됐습니다. 연 10000불을 제시했는데 선교사가 거절했습니다. 연 25000불을 제시했는데도 거절했습니다. 두 배로 올려 연 50000불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가 또 거절했습니다. 깜짝 놀란 채용 책임자가 물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됐습니까?” 그러자 선교사는 “지불하시려는 대가는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 직업은 너무 작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셨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주님의 종노릇하며 살기 위해 극기하고, 영적 훈련을 계속하는 것은 남에게 전파한 후에 그 자신은 도리어 버림받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크리소스톰(Chrysostom)은 자신이 설교하고, 가르치고, 수천 명을 믿게 했다 할지라도, 그 자신이 규칙대로 달리지 않았다면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헌금이나 공금을 횡령한 목사가 있다면, 그의 사랑하는 자식은 목사의 자식입니까, 도둑놈의 자식입니까?
4. 맺음말
모든 경기자들이 다 경기에 참가하더라도, 최고의 상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경기를 하고 있는 우리의 경우도 다를 바 없으므로, 하나님의 상을 얻기 위해 힘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는 영광을 위해 극기하고 자제하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훈련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주님 안에서 극기하고 절제하며, 노력하고 훈련하는 우리를 위해 썩지 않을 영원한 면류관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 모두 그 영원한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한눈팔지 말고, 주님 안에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달려 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