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 자료의 성경 권위 도전은 적대적 태도”
세속 자료의 성경 권위 도전은 적대적 태도
김영규 목사
교회의 타락은 당대의 교회가 성경을 어떻게 받아드리는가를 보고 대충 가늠할 수 있다.
성경의 권위는 세속사회가 판단하는 보편적 객관성에 의해서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시대와 그 땅에 내린 영원한 복과 관련되어 있다.
성경 권위는 세속적 기준 위에 있어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이 있는 곳에만 성경의 권위는 그 시대와 그 땅에 자리를 얻기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사회가 최근에 다빈치 코드란 책을 통해서 공격하였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이제 초기 기독교 문헌들을 대표하는 헬라어 문헌들도 아닌 1945년에 발견된 꼽트 언어로 된 영지주의 이단문헌들의 입장을
순수한 원 기독교 뿌리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소위 명망이 있는 대학들이나 정평이 나있는 국제 단체가 주도가 되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극히 우려가 된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비교가 될 수도 없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그런 작업인데도,
범 종교 평화운동을 지지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자들이 마치 이슬람교의 근본주의자들처럼 평가
된다는 것은 학문적 객관성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기독교에 대한 적의적인 태도에서 나온 것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도마복음이 꼽트 문헌들 안에 포함되기 전에 독립적으로 애굽에서 헬라어 문헌(P. Oxy. IV. 654)으로 발견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파피루스 필체는 영지주의 이단들을 비판하였던 교부 이레니우스의 ‘이단론’이라는 동시대적인 파피루스 증거(P. Oxy. III. 405)보다 늦은 필체이다. 더구나 이레니우스 책에서 비판의 근거로 인용이 되고 있는 지금의 복음서들과 사도행전 및 사도들의 서신들이 마치 기독교의 순수한 역사적 문헌들이 아닌 것처럼 다루는 태도란 일본의 정직치 못한 모든 지성인들의 태도와 큰 차이가 없다.
잘 훈련된 파피루스 전문가들에게 있어 어떤 문헌의 파피루스 필체에 대한 감정은 한 눈에 그 연대가 결정이 될 정도로 명확하다.
하지만 기독교 비판 작업에 참여한 외국 학자들은 전문적인 파피루스 학자들과 거리가 먼 자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잘 훈련되고 띄어난 파피루스 전문가들을 외국에서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띄어난 파피루스 학자들이 있었지만 오늘날처럼 많은 파피루스들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파피루스들이 대부분 해독되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옛날에 발굴이 되어 연대가 측정된 파피루스들은 전반적으로 다시 평가해야 할 경우들이 많아졌다.
지금 남아 있는 성경 파피루스들의 연대들도 처음 출판이 되었을 때의 그 측정과 다르게 평가해야 할 것들도 상당수가 있다.
주후 1세기 후반의 가장 오래된 바울 서신들의 책 파피루스(P46 = P.
Beatty II + P. Mich. 222)는 첨가된 초서체의 필체나 내적인 언어 상 증거
들이 그 연대에 있어서 결정적이어서 오히려 날짜가 없는 다른 모든 문헌 파
피루스들의 필체 감정에 있어서 기준이 될 정도로 명확한 시대적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기독교 안에 영지주의 이단들이 영향을 끼치기 전에
이미 존재했던 객관적인 성경들 이외에 다른 곳에서 기독교의 기원과 그 교
리에 대해서 찾으려고 하는 행위 자체는 너무 객관성이 없다.
19세기 후기에서부터 그런 파피루스들이 발견된 이래 계몽시대 이후 교회 안
에 있어 왔던 기독교 문헌들에 대한 비판적 작업들과 책들은 거의 폐기처분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런 정신을 가지고 기독교에 대한
적의적 태도를 가진 것 자체가 무지한 자들의 다수를 내세워 거짓을 참으로
바꾸어 비난하는 폭력적 태도에 가깝다.
지금의 교회 타락과 성경 자체의 권위는 엄밀히 구별이 되어야 한다. 사실
교회는 세속사회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빌미를 스스로 제공
해 왔다. 즉 교회는 성경에서 가르친 대로 그 진리를 지키지 못해 왔다는 것
이다.
종교적 경전이나 신학적 사변의 원저로서도 아니고 세속적 법들보다 우선하
는 신적인 규례나 법도 이전에 성령에 의해서 영감된 무오한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 권위를 얻고 있을 때조차도 실제적으로 그 말씀들
은 교회 안에서 가감이 이루어졌었다.
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세상을 보존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충분히 이
해되지 않았을 때도 신구약 성경은 가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사 지금도 성령에 의해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와 신적인 사실들에 근거하여 그 권위를 얻지 못했을 때도 신구약 성경은 역
시 인간으로부터 가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구약 성경이 그 권위에 있어서 실제적으로 가감이 없는 일은 하나님의 실
체와 그 위격들이 갖는 공통성과 구별성이 충분히 이해되고, 그의 속성들이
분리됨이 없이 이해되며, 그의 영원한 뜻이 충분하고 판명하게 이해되고 있
을 때 겨우 이루어진다.
더구나 이미 창조된 질서들의 차원들과 비약점들, 그 질서들의 최종적인 모
습들, 그리고 그런 모습에까지 그의 무한성이 증명이 되고 그의 편재성이 증
명이 되며 그의 영원성이 증명이 될 때 비로소 신구약 성경의 권위는 가감
이 되지 않는 상태가 될 것이다.
하나님 모를 때 성경 권위도 약화돼
하나님이 더 많이 증거되는 곳에 인간의 궁극적인 복도 거기에 그 만큼 증명
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