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열풍과 우리 안의 로또
로또 열풍과 우리 안의 로또
제비뽑기라는 어원을 가진 로또는 기존의 복권과는 달리 추첨이나 당첨금 지급방식이 게임처럼 되어 있다. 45개의 숫자 중에서 6개를 구매자가 임의로 적어 넣으면 자동으로 중앙 처리기에 입력되고, 맞추면 당첨자 수만큼 상금을 나누어 갖는다. 1등에 당첨될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벼락을 16번이나 맞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하는데도 13명이나 나왔으니 그야말로 돈벼락을 맞은 셈이다.
그래도 한 사람이 그 엄청난 행운을 차지한 것이 아니고, 1등 13명에게 64억씩 돌아갔다니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 사람들이 있더라. 64억은 이제 행운 축에도 끼지 못한다. 이번 10차 로또 복권의 총 판매액이 2,000억이 넘어, 성인 1인 당 7,500원어치를 구입한 셈이란다. 인생 역전을 꿈꾸다 많게는 천만 원, 적게는 한 달 월급을 날린 사람들은 허탈해하면서도 될 때까지 하겠다는 오기를 부린다고 한다.
최근 열풍도 모자라 광풍이라 표현되는 이 로또 난리는 지난 2002년 6월 온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했던 그 열기를 계승하는 국민 프로젝트로서 전혀 손색이 없었다. 1인당 10만원 구입제한이나 청소년 구입불가 등의 안전장치는 대박의 환상 앞에서 무의미했다. 전국을 돌며 사재기를 하는가 하면, 로사모라는 카페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신림동 고시촌에도 로또 바람이 불었다는데, 한판 승부를 노린다는 점에선 같은 맥락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언론마다 이 문제를 떠들어대느라고 정신이 없었는데, 비록 비판적이기는 했지만 은근히 그 광풍에 동조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SBS는 추첨 상황을 생중계까지 하고 나섰다. 이런 노력 탓에 이 날 시청률이 다른 주말보다 7.1% 높은 24.9%이었다고 하니 정말 축제와 같다. 필자 역시 이런 저런 기회로 이 현상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혔지만, 솔직히 필자라고 왜 마음 속에 나도 한번 해 봐?라는 생각이 없었겠는가.
영화도 사기꾼 이야기가 소재고, 드라마도 전설적 카지노 도박사의 이야기가 시청률 1위다. 이런 문화 상품들도 사람들에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탕을 바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능력이다. 폼나게 살기 위해서 그 정도의 모험은 할만하다고 부추긴다. 어찌 생각해 보면, 그 방법밖에는 없지 않은가? 또 민주적이지 않은가? 누구나 동일한 기회를 갖는 것이니까 말이다. 꿈은 이루어지고, 온 국민은 부자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TV와 문화 매체를 통해서 온종일 우리를 세뇌시키고 있다.
대체 정부는 무얼 하고 있냐고 묻는 것이 무안하다. 이번 로또 복권 사업을 통해서 정부가 얻은 이익은 1000억이 넘는다고 하니 진정한 수혜자는 정부가 아닌가 싶다. 물론 처음 말처럼 공익에 쓴다면 모르겠으나, 이도 그 동안의 전력으로 볼 때 그리 미덥지가 않다.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도 복권 수익으로 지어진 것이라니 그저 부럽다. 정부가 별 별 복권을 다 만들어내면서도 수익을 얼마나 올리는지, 어디에 쓰는지 도대체 알 길이 없다. 다만 새 정부가 곧 들어서니 늘 속았지만, 다시 기대해 볼뿐이다.
복권이 투기가 아니고 본래의 취지대로 일종의 기부가 되게 하려면, 우선 20:80으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를 좁히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돈만 있으면 정말 살기 좋은 나라라는 대한민국에서 단번의 인생역전 기회를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는가? 아파트 투기에 규제를 가하자, 돈 있는 사람들은 금을 사 모으고, 서민들의 가계 빚은 늘어나고, 서민들의 저축률은 사상 유례 없이 저조하다.
한 해 유흥비와 매매춘 산업으로만 24조가 거리에 뿌려지고, 경마, 경륜, 카지노, 복권 등 사행산업에 쏟아 부은 돈이 약 11조에 달하는 동안 우리 사회의 기부금 성적은 점 점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니 답답할 뿐이다. 이번 당첨금도 미국 경제력으로 환산하면 1조 4,000억 원, 역시 세계 최고다. 돈이 없으면 살기가 너무 피곤한 나라, 대한민국 그렇다. 축구 4강이 일등 국민을 만드는 것이 아닐 것이 지금이 이 우스꽝스런 난리는 아직 멀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다 근원적으로 볼 때 이번 로또 광풍은 우리 사회에 정상적인 절차를 통한 욕구나 문제해결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점술이나 주식도 같은 맥락에서 짚을 수 있겠는데, 한탕주의니 대박이니 하는 것이 정상적으로 해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한 탓이다. 학연, 지연, 혈연을 동원해서야 일이 풀리는 비합리적 구조가 전사회적으로 만연하니 누군들 정상적으로 살아 보겠다고 나서겠는가 말이다. 청소년, 대학생들까지 로또 열풍에 가세했다니, 그들이 만들어 갈 대한민국의 미래는 또 어쩔 것인가..
그러면, 기독교 신앙인은 복권을 사도 되는가? 교회의 권위로 사라 말라 할 사안은 아니나, 성도들이 복권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사회의 만연한 물질주의 풍조의 폐해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복권 제도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할지라도, 현 시점에서 그 긍정적 효과가 발효될 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신앙 때문에 복권을 구입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복권구입 행위를 두고 신앙적으로 판단하기에는 구입자가 처한 개별 상황이 고려되야 한다는 점에서 일괄적으로 적용할 규칙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론적으로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해 오늘의 상황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정직하라고 한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정직이다. 물론 10시에 온 일꾼과 5시에 온 일꾼을 동일하게 쳐서 품삯을 주시는 것은 주인의 은혜요, 감사의 조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고 늦게 나타나는 일꾼이 있다면, 한 달란트를 숨긴 어리석은 종처럼 악하고 게으른 자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물질을 구하되, 정직하게 구하고 일한 만큼 받는 것을 족한 줄로 알아야 한다. 투자한 것보다 너무 많은 불로소득을 노린다는 점에서 복권은 정직하지 못하다.
성경은 하나님과 물질을 함께 섬기지 못한다고 말한다. 소유한 물질로 인해서 주님을 따르지 못한 청년의 이야기는 지금도 여전히 시사적이다. 주님은 다만 일용할 양식을 구하셨다. 풍족한 것이 나쁠 것은 없지만, 풍족해서 하나님과 멀어진 예가 성경에 너무 많으니 물질과 부의 문제를 그저 중립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물론 물질 자체는 중립적이나, 죄성의 한계를 지닌 인간은 물질의 힘을 이길만한 능력이 충분치 않다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혹시라도 신앙인 중에 복권 당첨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문제라면 복권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가늠하려는 사람이다. 간혹 우리가 납득할 수 없는 신비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응답과 은총을 주시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복권을 구입했다는 사람을 보면 한국교회의 물질관이나 축복관이 얼마나 어그러져 있는지 알 수 있다.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우선 책임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있다고 아니 할 수가 없다.
당연한 의무요, 감사의 표현이어야 할 헌금이 하나님의 축복과 직결된다는 가르침이 복권보다 더 무섭다. 어느 새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축복은 곧 물질적 축복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성장주의, 물질주의, 기복주의 등의 잘못된 가치들이 기독교의 물질관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입만 열면 세계 최고요, 세계 제일이라 떠드는 일부 교회가 물질의 풍족함과 하나님의 축복을 동일시한 것은 성장을 주요 목적으로 삼았던 군사정권 시기의 이데올로기와 유사해서 역시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한탕주의를 양산한 공범이다.
세상의 로또를 비판하기 전에 우리 안의 영적 로또를 제거해야 순서일 것이다. 심은 대로 거두고, 일용한 양식에 감사하는 소박한 생활 속에서, 아니 때로 가난하고 힘든 삶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감격에 대해서 교회가 먼저 말하고 실천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 큰 기쁨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보여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의 복이 다시 나눔의 기쁨으로 전환되어 우리 모두의 기쁨이 될 수 있음을 말이다.
최근 목회자의 사례비를 두고 말이 많다. 과거에는 물을 수 없던 것이 토론의 과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보기에 따라 긍정적일 수 있으나, 혹시 논의 과정 자체가 자본주의 논리와 구조의 폐해를 그대로 인정해 버리는 결과를 낳을까 적이 염려된다. 깨끗한 빈자는 없고, 깨끗한 부자만 있다면 둘 중 하나는 분명 깨끗할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와 복권의 20:80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부족으로 인해 내가 풍족해 질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로또가 건전한 기부의 일상 행위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교회가 이 일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아직 기부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회가 사회 복지시설이나 단체에 적극적인 후원을 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무슨 일이든 개교회가 중심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교회의 특성을 생각하면 어려운 일이겠으나, 우리 사회 전반의 수준이 어느 정도 될 때까지만 이라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결국 문제는 문화라고 보는 것이다. 필자로서는 이 또한 문화선교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교회의 문화가 먼저 변화되고, 우리의 선행이 세상에 소문이 나서 그들의 칭송을 받으면 우리의 문화가 바뀐다. 로또 열풍, 광풍을 보면서 인생을 한판에 거는 사람들이 오히려 측은하게 보인다. 그렇게 얻은 부가 있다면 결국 그 부가 그를 파괴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화가 정말 변화되기를 소망한다. 먼저 교회가 말이다.